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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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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陽 (島潭三峰) 도담삼봉(島潭三峰)  景致가 아름다워 丹陽八景중 으뜸으로 손꼽이는 島潭三峰은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南漢江 한가운데 오뚝하니 서있는 石灰巖 峰우리이다. 傳說에 따르면 男便이 아들을 얻기 위해 妾을 들이자 心痛이난 아내가 새침하게 돌아앉은 모습 이라고 한다. 가운데 峰우리가 男便峰우리,北족이 妻峰, 南쪽이 妾峰인데 妻峰이 男便峰우리와 등을 지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한다. 朝鮮 開昌에 큰 功을 세운 鄭道傳은 自身의 號인 三峰을 이곳에서 취할 程度로 島潭의 景觀을 사랑했으며 李滉을 비롯한 金弘道,金正喜 등이 이곳 絶景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도담삼봉(島潭三峰) 景致가 아름다워 丹陽八景중 으뜸으로 손꼽이는 島潭三峰은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南漢江 한가운데 오뚝하니 서있는 石灰巖 峰..
小白山喜方寺 소백산희방사(小白山喜方寺)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있는절 고운사의 말사(末寺)로 신라선덕여왕 12년에 두운 (杜雲)이 지었다고 한다. 동 종(銅鐘) 이 동종은 원래 조선영조 (英祖) 18년 (1742)에 주조 (鑄造)된 충북 단양 (忠北丹陽) 대흥사 (大興寺)종으로 승장(僧匠)인 해철 (海哲)과 초부 (楚符)등이 제작한 중종 (中鐘)이었으나 대흥사가 폐사되면서 희방사로 옮겨진 것이다. 주조술은 양호하다 할수없으나 균형은 좋은 편이다. 주차료 5.000원 입장료 2.000원 아깝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절이다
安東 (河回마을) 하회마을(河回마을)  重要民俗資料 제122호. 예로부터 儒林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韓國의 代表的 同族부락으로, 國寶를 비롯해 寶物·重要民俗資料·重要無形文化財 등 값진 文化遺産을 간직하고 있어 1984년 1월 民俗保存마을로 指定되었다. 東쪽은 太白山의 地脈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洛東江이 西·南·北 境界를 따라 마을 全體를 太極型으로 감싸 흐른다. 이는 風水地理的으로 山太極水太極을 이루는 吉地로 壬辰倭亂 때는 戰禍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천고택(鵲泉古宅) 이 建物이 지어진 年代는 確實하지 않으며 처음에는 두 채였으나 1934년에 大洪水로 門間채가 쓸려 나가고 지금은 " - "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鵲泉古宅" 이라는 이름은 류도관 (류도관 1823 ~ 1894)의 宅號 에서 따온 것이..
하회탈博物館 하회탈박물관(河回탈)  하회마을에서 만들어져 전해지고 있는 하회탈의 구체적인 탄생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허도령이 탈을 만들어 이어오고 있다는 말이 있다. 하회마을 자체 기록에 따르면 허씨 일가가 안씨가 들어오기 전에 이곳에 살았고 그 후인 조선 전기에 유씨 일파가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에서는  고려 중기 대부터 탈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경배하고자 매년 정월대보름 즈음에 탈놀이를 하며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했다. 일반적으로 한반도에서 행해졌던 탈놀이는 대개 놀이가 끝나면 탈을 다 태우는 것으로 일단락 됐지만 하회탈의 경우에는 다루는 법과 보존에 있어 엄격했으며 함부로 다루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盤若山灌燭寺 반야산관촉사(盤若山灌燭寺)  大韓佛敎曹溪宗 제6敎區 本寺인 마곡사(麻谷寺)의 末寺이다. 968년(光宗 19) 혜명(慧明)에 의해 創建될 때 造成된 石造彌勒像이 發散하는 빛을 좇아 中國에서 명승(名僧) 지안(智眼)이 와 禮拜했다고 하여 灌燭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法堂은 1386년(優王 12) 建立해 1581년(宣祖 14)과 1674년(顯宗 15)에 重修했으며 1735년(英祖 11) 다시 重修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現在 境內에는 觀音殿·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解脫門·顯忠閣 등의 당우가 남아 있으며, 石造菩薩立像(寶物 제218호)과 石燈(寶物제232호)을 비롯해 舍利塔·連和拜禮石·寺跡碑 등이 있다. 빛이 마치 촛불과 같이 빛난다.”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 했다고 한다.  일주문(..
楞伽山來蘇寺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  楞伽山  觀音峯 기슭에 位置한 來蘇寺는 百濟武王 34년 (633)에 혜구두타 스님이 이곳에 절 을세워 素來寺라 하였는데 創建당시에는 大素來寺 小素來寺가 있었으나 大素來寺는 燒失되었고 지금의 來蘇寺는 小素來寺가 남아 傳하는 것이라고 한다. 現存寺刹은 朝鮮祖 仁祖 11년 (1633)에 청민先師에 의하여 重建 되었으며 高宗 2년 (1865년)에 관해先師에 의하여 重修되었고 그後 만허先師가 保手 하였다. 當初의 素來寺를 來蘇寺로 부르게된 緣由는 알수없으나 壬辰倭亂을 前後해서 來蘇寺로 불러온것으로 推定된다. 本 寺刹에는 寶物 291호 大雄寶殿 寶物 277호 高麗銅鍾이 있고 寶物 278호 法華經折本査本은 全州市立博物館에 委託保管 되어있다.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寺刹로 들어가..
母岳山金山寺 모악산금산사(母岳山金山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7敎區의 本寺이다. 1635년에 記錄된 〈금산사사적 金山寺事蹟〉에 의하면 600년(百濟 法王 2)에 創建되었다고 傳한다. 1492년에 씌어진 〈金山寺5層石塔重創期〉에 의하면 過去佛인 迦葉佛 때의 절터를 中興한 것이라 하여 오랜 불연(佛緣)이 있음을 强調하고 있다. 여러 記錄을 綜合해 보면 金山寺는 新羅 景德王 때인 762년에서 766년 사이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重創되어 大刹의 面貌를 갖추게 되었으며 以後로 법상종(法相宗)의 根本道場이 되었다. 진표 以後에 後百濟 甄萱에 의해 部分的인 保守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確實치 않다. 高麗初 1079년에 法相宗의 대종사(大宗師)인 혜덕(慧德)왕사가 住持로 赴任해 간경·법석(法席)을 主管하는 場所인 광교원(廣敎院)..
國立濟州博物館 국립제주박물관(國立濟州博物館)  국립제주박물관(國立濟州博物館)은 大韓民國의 濟州特別自治都 濟州市 三使石路에 있는 國立 博物館이다. 濟州特別自治都 濟州市 건입동에 있는, 濟州 地域의 文化財를 수집(收集)·보존(保存)하고 연구(硏究)·하고. 濟州 地域 출토(出土) 문화재(文化材)의 收集·保存을 通하여 濟州 地域의 歷史와 文化를 展示하고있으며. 濟州島 文化 遺産의 保存·展示·硏究를 위해 地下 1층, 地上 2층으로 지어졌다.  中央홀, 先史·高古室, 耽羅1실 ~ 3실, 朝鮮時代室, 寄贈遺物室, 企劃展示室, 野外展示場으로 區分하여 展示하고 있다. 濟州邑城의 模型, 高山里 發掘 遺跡, 各種 패총(貝塚)과 墳墓遺跡, 삼별초 (三別秒)關聯 遺物, 탐라(耽羅) 關聯 遺物, 濟州木 關聯 資料, 濟州의 生活 遺物 등이 展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