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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國立濟州博物館

(國立濟州博物館)

 

 

국립제주박물관(國立濟州博物館)은 大韓民國의 濟州特別自治都 濟州市 三使石路에 있는 國立 博物館이다. 濟州特別自治都 濟州市 건입동에 있는, 濟州 地域의 文化財를 수집(收集)·보존(保存)하고 연구(硏究)·하고. 濟州 地域 출토(出土) 문화재(文化材)의 收集·保存을 通하여 濟州 地域의 歷史와 文化를 展示하고있으며. 濟州島 文化 遺産의 保存·展示·硏究를 위해 地下 1층, 地上 2층으로 지어졌다.  中央홀, 先史·高古室, 耽羅1실 ~ 3실, 朝鮮時代室, 寄贈遺物室, 企劃展示室, 野外展示場으로 區分하여 展示하고 있다. 濟州邑城의 模型, 高山里 發掘 遺跡, 各種 패총(貝塚)과 墳墓遺跡, 삼별초 (三別秒)關聯 遺物, 탐라(耽羅) 關聯 遺物, 濟州木 關聯 資料, 濟州의 生活 遺物 등이 展示되었고, 野外展示場에는 덕판배, 연자매, 돌하루방 등이 있다.

 

 

 

국립제주박물관

(國立濟州博物館)

 

국립제주박물관(國立濟州博物館)은 大韓民國의 濟州特別自治都 濟州市 三使石路에 있는 國立 博物館이다. 濟州特別自治都 濟州市 건입동에 있는, 濟州 地域의 文化財를 수집(收集)·보존(保存)하고 연구(硏究)·하고. 濟州 地域 출토(出土) 문화재(文化材)의 收集·保存을 通하여 濟州 地域의 歷史와 文化를 展示하고있으며. 濟州島 文化 遺産의 保存·展示·硏究를 위해 地下 1층, 地上 2층으로 지어졌다. 中央홀, 先史·高古室, 耽羅1실 ~ 3실, 朝鮮時代室, 寄贈遺物室, 企劃展示室, 野外展示場으로 區分하여 展示하고 있다. 濟州邑城의 模型, 高山里 發掘 遺跡, 各種 패총(貝塚)과 墳墓遺跡, 삼별초 (三別秒)關聯 遺物, 탐라(耽羅) 關聯 遺物, 濟州木 關聯 資料, 濟州의 生活 遺物 등이 展示되었고, 野外展示場에는 덕판배, 연자매, 돌하루방 등이 있다.

 

 

어서오세요

 

제주의돌담

(濟州石坍)

 

검은색의 현무암(玄武巖)을 얼기설기 쌓아 만든 나직한 돌담은 濟州의 정겨운 풍경(風景)가운데 하나다. 濟州道는 화산섬(火山島)인 까닭에 어디에나 玄武岩이 널려있다. 돌담은 그것들을 깔끔하게 整理하면서도 한편으로는 生活의 一部로 智慧롭게 수용(收用)해낸 濟州사람들만의 독특한 文化要所인 것이다.  濟州의 돌담은 살림집의 담장을 이루어 정겨운 空間인 올래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산과 들이나 무덤가를 두르는 산담이 되기도 하고 밭의 境界를 이루는 밭담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바닷가에 원담을 둘러 물고기를 잡는 데에 利用되기도 한다. 게다가 바람 많은 濟州의 센바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役割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 再現된 돌담은 濟州地域의 傳統돌담인 외담을 가시리마을의 석수쟁이(石手)(돌챙이)들이 겹담 型式으로 쌓은 것이다.  담장 안에는 濟州에서 日常的으로 使用되는 돌로 만든 多樣한 生活用具들을 展示 하였다.

 

 

제주읍성

(濟州邑城)

 

中央홀에는 제주읍성(濟州邑城) 디오라마와 탐라(耽羅)의 開國神話를 表現한 스테인글라스가 製作되어 있다. 濟州邑城은 肅宗28년(1702)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그려진 濟州邑城의 모습과 1990년 以後 제주목(濟州牧) 관아터[官衙址]의 發掘助事를 土臺로 再現해 놓은 것이다. 천政府의 스테인글라스는 濟州의 名山인 한라산(漢拏山), 耽羅 開國神話인 삼성(三姓)신화, 三多島(돌, 바람, 여자)를 表現하였다. 濟州邑城의 모형 관아(館牙)

 

 

삼양동유적

(三陽洞遺蹟)

 

濟州市 三陽洞遺跡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청동기(靑銅期) - 초기철기(初期鐵器)시대의 遺跡이다. 그들은 둥굴게 땅을 파고 그 위에 움집을 지었으며 農事와 사냥 물고기잡이 海産物 채취 (採取)등을 통해 生活하였다. 三陽洞 遺跡 사람들은 입술 아래의 몸통 부분이 불룩한 三陽洞式吐器를 使用했으며 遺跡에서는  多樣한 種類의 刊石器들과 함께 불애 탄 穀食 등이 發見 되었다.  한편 濟州道에서는 生産되지않았던 中國계 遺物로 알려진 옥환,요령삭동검편,유리옥과 각종 鐵器類들이 出土되고 있어 三陽洞 사람들이 韓半島를 비롯한  外部地域과도 活潑히 交流 하였음을 알려준다.

  

 

복신미륵

(福神彌勒)

 

濟州城의 외각 東쪽과 西쪽에 있던 동자복(東資福)서자복(西資福)을 複製한것이다. 彌勒은 來世에 出現한다는 부처로써 民衆들이 가장 崇拜하였던 對象이었다 現世에서 보다나은 未來를 希望하고 고기를 많이 잡고 農事가 잘되어 富者가되고 建康하고 아들을 낳아 子孫을 잇는 등의 所願을 비는 신앙(神仰)의 對象으로서 숭배(崇拜)되었다. 濟州島에서 玄武岩으로 製作된 불상(佛狀)이라는 점에서 土俗的意識과 조형미(造型美)를 엿볼수 있다. 

 

    

삼양동유적망루

(三陽洞遺蹟望樓)

 

望樓는 地上으로부터 높이 올려주던 周邊 監視를 迅速하게 하기위한 건축(建築)구조물(構造物)로서 外部의 侵入으로부터 마을을 보호(保護)하는 시설(施設)이다. 望樓와 關聯된 유구는 韓半島 靑銅器時代의 마을遺跡에서 많이 確認된바 있으며 最近에는 三國時代 遺跡에서도 確認되고 있다. 濟州島에서는 濟州最大의 海岸據点 마을遺跡으로 確認된 (國家事蹟 제416호)을 비롯하여 하귀리,화순리마을 遺跡에서 一部確認되고 있다. 이곳에 復元한 것은 三陽洞遺跡 地區에서 확인(確認)된 것으로 2 x 2 칸 構造이다. 使用된 木製는 遺跡에서 出土된 돌도끼,대팻날,끌등의 석기를 利用하여 架工하였을 것이다. 濟州先史時代 사람들이 2,000년전 生活 모습과 技術力에 대한 이해(異解)를 돕고 우리文化의 소중(所重)함을 널리 알리고자 2001년 현 野外 展示場에 복원(復原)하였다.

 

 

연자매

(硏子邁) 

 

硏子邁는 소나말의 힘 을 利用하여 穀食의 이삭을 벗겨내거나 가루를 내던 道具이다. 옛 濟州사람들은 말(馬)방애 몰고래,몰그랑,이라고도 불렀다. 보리나 조가 主穀式인 濟州에서는 硏子邁가 必須的인 농기구(農器具)였다. 大部分 마을共同으로 製作하고 계(契)를 組織하여 管理運營 하였는데 平均 30여 가구에 1기의 방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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