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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서울歷史博物館

서울

(서울歷史博物館)

 

 

2002년 5월 서울시 鍾路區 新門路 2가 慶熙宮址 內에 開館한 市立博物館이다. 1993년 12월 15일 '서울특별市立博物館'이란 이름으로 着工하여 1997년 12월 31일 竣工하였다. 2001년 9월 29일 '서울歷史博物館'으로 名稱을 變更하였으며, 2002년 5월 21일 開館하였다. 부지 7434㎡, 延面積 2만 130㎡ 3층 規模로 展示室과 視聽覺室·講堂·休憩室·뮤지엄숍·物品保管所·카페테리아 등의 施設을 갖추고 있다.  1층에는 企劃展示室과 寄贈遺物展示室, 뮤지엄 샵 등이 있으며, 3층에는 옛 서울과 서울사람들의 生活, 文化, 서울의 發達 등 서울을 4개의 主題로 나눠 구분 전시한다. 實際 遺物과 模型·디오라마 패널 등 多樣한 道具를 活用하여 展示의 效果를 높여준다. 이 밖에도 옛 道具를 操作할 수 있는 體驗空間과 映像을 通해 情報를 提供받을 수 있는 터치 뮤지엄, 멀티미디어를 通해 展示內容을 綜合해 볼 수 있는 情報검색 코너 등도 運營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歷史博物館)

 

서울歷史博物館은 朝鮮時代를 中心으로 先史時代부터 現代까지 서울의 歷史와 文化를 定理하여 보여주는 都市歷史博物館으로 2002년 5월 21일 開館하였다. 서울歷史博物館은 사라져가는 文化遺産을 收集·保存·硏究·展示·敎育을 通해 서울의 歷史와 文化에 대한 理解를 深化시키고, 市民들의 文化的 正體性을 確立시키는 서울의 代表的인 文化機關으로, 漢城百濟와 朝鮮王祖의 首都로서 政治·經濟·社會·文化의 中心으로 發展해온 서울의 歷史를 展示하고 있다.

 

 

공덕비

(公德碑)

 

수선전도

(首善全圖)

 

세로 83 cm, 가로 65 cm .上.中.下로 이루어진 地圖의 판목(版木)이 高麗大學校 博物館에 所藏되어있고, 이 板木에서 찍은 木版本 地圖는 國立中央圖書館 등 여러곳에 所藏되어 있다. 首善이란 (한서 漢書)  (유림전 儒林傳)에 으뜸 가는 線을 세움은 서울에서 비롯한다. 는 뜻으로 쓰인 낱말로서 서울을 指稱하는 別號로 쓰였다. 1824년에 建立된 경우궁(景祐宮)이 그려져 있고 창의문(彰義門)밖 총융청이 총신영(總新營)으로 표기되어 있어 1830,1840년대에 만든 地圖로 推定되고 있다.

 

금천교

(錦川橋)

 

橋脚을 2개의 홍예(虹霓)로 構成하였는데 물 속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돌로 홍예를 틀었으며 양쪽 교대(橋臺)를 석성(石城)처럼 쌓았다. 中央에 홍예가 모이는 곳에 큼직한 홍예 기석(基石)을 놓아 지복석(地覆石)을 삼았으며, 하마(河馬) 형상의 석수(石獸)를 排置하였다. 또한 홍예 기석상의 간석(間石)에 사자두(獅子頭)를 부조하였으며 교상(橋床) 양변에 이주석(촬柱石)을 놓고, 회란석(廻欄石)을 連結하는 돌난간을 만들었다. 이 다리는 昌慶宮의 옥천교(玉川橋)보다 폭이 넓고 짜임새가 정치(精緻)하며 부재(部材)의 비율이 빈틈없이 잡혀 있어 그 構造가 퍽 아름답다.

 

 

전차

(電車) 

 

空中에 設置한 電線으로부터 電力을 供給받아 地上에  設置된  軌道 위를 다니는 車.

 

 

호패

(戶牌)

 

지금의 身分證明書와 같은 것이다. 그 紀元은 원(元)나라에서 始作되었으며, 韓國은 1354년(恭愍王 3)에 이 制度를 模倣하여 수 ·육군정(水陸軍丁)에 한하여 實施하였으나 잘 施行되지 않고, 朝鮮時代에 들어와 비로소 全國으로 擴大되어 戶籍法의 補助的인 役割을 하였다. 그 目的은 호구(戶口)를 明白히 하여 민정(民丁)의 수를 把握하고, 職業 ·階級을 分明히 하는 한편, 身分을 證明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자태항아리

(白磁胎壺) 

 

朝鮮時代 白瓷 胎항아리로서 외항아리는 전체 높이 30.9㎝, 아가리 지름 21.4㎝, 밑지름 14.1㎝이고, 내항아리는 전체 높이 19.2㎝, 아가리 지름 10.6㎝, 밑지름 8.3㎝이며, 태지석(胎誌石)은 26.6㎝×26.7㎝×4.6㎝이다.胎항아리란 王室의 王子나 王女가 태어났을 때 胎를 담는 항아리를 말하며, 이것과 그 主人公의 이름, 生年月日을 記錄한 胎脂石을 함께 묻는다.외항아리는 아가리가 넓으며 밖으로 살짝 말려있다.짧은 목에 위쪽이 넓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模樣을 하고있다.어깨의 4곳에는 고리를 달았으며, 냄비 뚜껑같이 생긴 뚜껑의 꼭지에 나있는 4개의 구멍과 連結하여 固定하도록 되어있다.白瓷 釉藥으로 全面을 고르게 칠하였으며 光澤이 있다.내항아리는 외항아리와 비슷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가 조금 더 작다.胎脂石은 正四角形 模樣의 검은 돌로, 앞·뒷면에 새겨진 글로 보아 1643년에 製作된 태항아리로 王子 아지(阿只)의 胎를 담은 것으로 1639년에 태어나 1643년에 胎를 묻었음을 알 수 있다.

 

 

교지

(敎旨)

 

지금의 서울市場任命長 官員에게 官爵이나 官職을 내리는 敎旨는 고신(告身), 文과 及第子에게 내리는 敎旨는 홍패(紅牌), 生員. 進士試 合格者에게 내리는 敎旨는 백패(白牌), 죽은 사람에게 官爵을 높여 주는 敎旨는 추증교지(追贈敎旨), 土地와 奴婢를 주는 敎旨는 노비토전사패(奴婢土田賜牌), 향리에게 면역(免役)을 認定하는 敎旨는 향리면역사패(鄕吏免役賜牌)라 하였다. 매우 多樣하게 쓰였으며, 開國初에는 왕지(王旨), 한말에는 칙명(勅命)이라고도 하였다. 敎旨는 國王의 臣下에 대한 權威의 象徵이며, 封建的 官僚政治의 遺産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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