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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釜山博物館

 (釜山博物館)

 

 

부산박물관

(釜山博物館)

 

1978년 開館한 우리 博物館은 傾向 各地의 여타 公立博物館과 比較해 보더라도 결코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時間이 지나면서 施設은 頹落하고 狹小하여 世界都市로 成長해 가는 釜山의 正體性 부각과 市民肯志의 象徵物로는 다소 未洽한 失政이었습니다. 이에 2002년에는 그동안 發掘, 寄贈, 買入 등을 通해 確保된 遺物을 바탕으로 제2관을 新築하여 文化에 대한 市民들의 欲求 充足을 위해 勞力하기도 하였습니다. 博物館에 展示되고 所藏된 遺物들은 先史時代부터 現代에 이르기까지 釜山의 歷史와 文化의 性格을 알려주는 貴重한 資料들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證據物들이며, 앞으로 우리들이 나아갈 길을 계시(啓示)해 줄 智慧 創出의 寶物들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博物館은 우리 고장과 關聯된 傳統文化資料의 收集과 保存, 硏究 및 展示를 通하여 綜合博物館으로서의 技能과 役割을 다하고자 합니다. 市民 滿足의 多樣한 敎育·文化 프로그램도 運營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즐겨 찾는 열린 歷史文化空間이 되도록 勞力하겠습니다. 또한 多角的인 國內外 交流를 活性化하여 東北아시아 最大 港口都市 釜山의 位相에 걸 맞는 博物館이 될 수 있도록 最先을 다하겠습니다. 박물관장

 

 

금관가야

(金官加耶)

 

洛東江 下流地域에 位置한 金海와 釜山地域의 集團들은 河川이나 섬을 單位로 여러地域으로 分理되어 存在하였으나 紀元後 3世紀 候班에 들어오면 작은나라로 統合하거나 聯盟關係를 맺어 金官伽倻로 發展한다.

 

가야에서신라

 

1600년전 4世紀末 始作된 高句麗의 南쪽 征伐 以後 우리나라 南部地域에는 큰 變化가 나타난다. 金官伽倻의 一部를 아루고 있던 釜山地域은 高句麗를 등에 업은 新羅의 影響을 받게되어 迦耶文化가 점차사라지고 新羅文化가 자리잡게 된다 新羅文化의 影響은 토기 鐵器 裝身具 등의 遺物에 뿐만아니라 무덤의 形態에 까지 半影되고 半面에 伽倻文化는 吐器에서 맥으 이어가다가 5세기 候班 以後가되면 거의 자취를 감춘다.

 

 

산골,장골

(散骨,藏骨)

 

統一新羅에는 佛敎의 隆盛으로 무덤을 만드는 風俗도 많이 바뀌는데 가장 큰 變化가 屍身을 태우는 火葬의 登場이다. 火葬한 後 남은 遺骨을 處理하는 方式에는 산골과 정골이 있다. 산골은 火葬 後 埋葬 容器없이 유골을 山,江,바다 드에 뿌리는 것을 말하며 장골은 火葬 後 遺骨을 容器에 담아 땅속에 묻거나 浮屠,石塔안에 奉安 하는 것이다.

 

 

고려청자

(高麗靑磁)

 

靑瓷란 가마에서 구운 後 釉藥의 色租가 푸른 빛을 띠는 陶瓷器의 一種이다. 中國 越州窯의 影響을 받아 統一新羅 末技부터 生産되었고 高麗에 들어와 더욱 發展하였다. 西南海岸 특히 全南康津과 全北 扶安을 中心으로 많이 生産되었다

 

 

불상

(佛像)

 

佛像이란 佛敎敎理에 의해 禮拜對象으로 만들어진 彫刻像으로서 嚴格히 말하자면 부처의 尊像만을 意味하는것이다. 넓은 意味에서는 부처의 상은 물론 菩薩像,天王像,明王像,羅漢像 등 佛敎의 禮拜對象 全體를 가리키는 말로 使用되기도 한다.

 

 

다채백자조선통신사문접시

(多彩白磁朝鮮通信使文)

 

화조도 (化鳥圖)병풍 右側에 깃발과 나팔을 가진 두사람의 通信使와 아침해가 떠오르는 후지산을 그린  접시이다. 通信使와 후지산은 日本의 通信使 관련 遺物의 文樣으로 자주 登場하는 圖案이다. 접시의 뒷면 가장자리에는 靑華 唐草紋이 들러있고 바닥中央에는 富貴長春 (부귀장춘)이라는 명문이 있다. 明治時代 아리타산으로 推定된다.

 

 

韓日 通商條約 締結 記念宴會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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