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母岳山金山寺

(母岳山金山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7敎區의 本寺이다. 1635년에 記錄된 〈금산사사적 金山寺事蹟〉에 의하면 600년(百濟 法王 2)에 創建되었다고 傳한다. 1492년에 씌어진 〈金山寺5層石塔重創期〉에 의하면 過去佛인 迦葉佛 때의 절터를 中興한 것이라 하여 오랜 불연(佛緣)이 있음을 强調하고 있다. 여러 記錄을 綜合해 보면 金山寺는 新羅 景德王 때인 762년에서 766년 사이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重創되어 大刹의 面貌를 갖추게 되었으며 以後로 법상종(法相宗)의 根本道場이 되었다. 진표 以後에 後百濟 甄萱에 의해 部分的인 保守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確實치 않다. 高麗初 1079년에 法相宗의 대종사(大宗師)인 혜덕(慧德)왕사가 住持로 赴任해 간경·법석(法席)을 主管하는 場所인 광교원(廣敎院)을 設立하는 등 創建 이래 가장 큰 規模의 道場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일주문

(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寺刹로 들어가는 첫 번째 關門이다. 원래 지붕을 가진 一般的인 建築物이라고 하면 四方에 네 개의 기둥을 두어 지붕의 荷重을 支撑해야 하는 것이 常式이다. 하지만 一柱門은 한 줄로 나란한 두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支撑하며 서 있는 建築物이다. 一柱門이란 名稱은 바로 이런 建築的인 特徵에서 붙여지게 된 것이다. 佛敎에서는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일심(一心)이라는 意味를 부여한다. 즉 神性한 寺刹에 들어서기 前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眞理의 世界로 向하라는 象徵的인 意味가 담겨 있는 것이다. 一柱門의 境地는 아직 무언가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는 位置이다. 다만 斷乎한 決心과 實踐 意志를 보이면서 求道者로서의 길을 始作하는 段階일 뿐이다. 그러나 分明한 것은 一柱門을 基準으로 衆生이 사는 世上인 세간(世間), 그리고 속계(俗界)와 生死 煩惱에서 解脫한 깨달음의 世界인 출세간(出世間), 즉 진계(眞界)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당간지주

(幢竿支柱)

보물제 28호

 

당간지주 (幢竿支柱)는 寺刹을 象徵하는 깃발이나 掛佛을 세울때 버팀목으로 使用하는 石造物 이다. 이 地主는 높이가 3.5 m 이며 양 地主가 南北으로 상대하여 있다. 基壇石과 간대를 懇待하게 具備하고 있는 國內 唯一의 幢竿支柱 이다. 양 支柱의 角面에 粧飾된 彫刻技法이 峴底하게 두드러지며 韓國 幢竿支柱 가운데 가장 完璧한 型式을 갖추고 있다. 석련대 石鐘 石塔 石燈은 統一新羅時代에서 高麗時代에 걸쳐 만들어진 遺物들인데 이 幢竿支柱는 統一新羅時代 全盛期인 8세기 後半에 建立된것으로 보여진다. 寶物제 28호

 

 

보제루

(普濟樓)

 

보제루 (普濟樓)는 누각 (樓閣)으로 일주문 (一柱門),금강문 (金剛門),사천왕문 (四天王門)에 이어 네번째로 만나는 관문 (關門)이다. 1976년에 전면 5칸 츠면 3칸으로 新築 하였으나 法會空間이 좁아 1998년에 全面 9칸 側面 3칸으로 增築하여 이름을 金山寺 개산 1400주년 記念館 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學術會議 彌勒心線修練會 說法會등을 開催하는 講堂으로 活用하고 있다.

 

 

대적광전

(大寂光殿)

 

우리나라 法堂 가운데 規模가 큰 편에 속하나 1986년 불에 타서 現在는 남아 있지 않다. 장대석기단(長臺石基壇) 위에 세워진 앞면 7칸, 옆면 4칸의 單層팔작지붕 建物이다. 앞면의 7칸에는 모두 빗살 무늬로 粧飾된 두 짝 열개문[分閤門]을 달았는데 中央칸만 出入門이고 나머지는 밑부분에 머름(미닫이 문지방이나 벽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을 設置한 광창(光窓)이다. 옆면은 4칸으로 제일 앞쪽 툇간에 한 짝 出入門을 달아 使用했고 나머지는 灰壁으로 위쪽에 인방(引枋)을 가로질렀다. 空包는 內外二出目이며 다포계 空包構成의 典型에서 벗어나 있다.

     

 

비로자나불

(毘盧舍那佛)

 

비로자나불 (毘盧舍那佛)을 中心으로 左右 2구씩 모두 5구의 佛座像과 그 사이에 菩薩立像 6구를 安置했는데 이러한 佛像의 配置는 매우 독특하다. 그위에는 닫집을 設置했다. 대들보는 둥그스름하게 다듬어졌는데 左右側面 평주(平柱)에서 충량(衝樑)이 3개씩 올라가 대들보에 걸리게 하였다. 충량의 形態가 谷線으로 된 점이 특이하며 建物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나약한 맛을 갖게 한다. 天障은 佛壇 바로 위를 1단 더 높이고 가장자리는 대들보 위 충량 위쪽에 붙여 반자를 꾸며 全體的으로 층급천장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建物內部는 낮고 가득찬 느낌을 주고, 建物外部의 正面관도 낮고 옆으로 길게 展開되어 全體的으로 安定感을 준다. 이 建物은 1705년에 記錄된 〈金山寺史蹟〉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서 그 以後에 建立된 것으로 生角되며 18세기경의 建築으로 推定된다.

 

 

대적광전

(大寂光殿)

 

이 法堂은 水系,設計,說法등 寺院의 重要한 意識을 執行하는 곳이다. 大寂光殿은 본래 大雄大光明殿이였다. 大雄大光明殿 으로 불리던 때에는  이곳에 法身毘盧遮那佛,補身盧舍那佛,化身釋迦牟尼등 三身佛 만을 奉安하였다고 한다.  丁酉再亂때 境內의 모든 全閣이 燒失된 후 仁祖 13년 1635년에 이르러 道場을 再建 하였는데 大雄大光明殿 과 極樂殿,藥師殿에 奉安하고 있던 5如來 6菩薩을 다시 祖上하여 모두 한자리에 奉安하고 現額을 大寂光殿 으로 바꾸었다. 1986년 원인모를 火災로 法堂이 全燒되어 寶物 제476호 指定이 解制되었으나 1990년에 原來의 모습대로 復元 하였다.

 

 

보리수

(菩提樹)

 

初期 佛敎 美術에서는 菩提樹를 부처의 象徵으로 利用하곤 했다.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살아 있는 菩提樹는 BC 3세기에 아소카 王이 보낸 것으로부터 祈願했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南無我彌陀佛)

 

南無阿彌陀佛은,[阿彌陀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라는 뜻이며, 修行의 한 方法으로 阿彌陀 부처님을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되풀이되풀이 외는 염불(念佛)이다. 무릇 佛敎를 믿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력(自力)신앙이고 또 하나는 타력(他力)신앙이다. 自力信仰이란 자며, 타락신앙이란 自力信仰이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고 救濟되려는 데 반하여 佛.菩薩의 힘을 빌어 救濟되고자 하는 信行의 길이다. 대개 自力으로는 힘에 부치니까 他力意地하는 길을 가게 되는데 이 이라는 念佛도 他力信仰을 할 때 외는 念佛이다.

 

 

육각다층석탑

(六角多層石塔)

 

이 塔은 高麗初의 石塔으로 봉천원터에서 옮겨온것이다. 現在의 높이는 2.18m 이며 11층 탑으로 우리나라의 塔이 大部分 花崗岩으로 만든 邦刑塔 인데 비해 이 塔은  점판암 의 육각다층석탑 (六角多層石塔)임이 특색이다.  異色的인 各層의 體感比例가 아름다우며 纖細한 彫刻 技法을 보여준다. 原來 이 塔에는 層마다 塔身이 있었으며 六角의 모서리마다 風景이 달려 장임스러웠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층의 탑신과 11 층 의 屋蓋石만 남아있다. 

 

 

미륵전

(彌勒殿)

 

金山寺 境內에 있는 3층 規模의 佛殿. 國寶 제62호. 彌勒殿은 新羅 法相宗時代에 미륵본존(彌勒本尊)을 奉安한 佛殿으로 寺刹의 中心建物인 금당(金堂)이다. 초창(初創)된 시기나 당시의 建物形態를 明確하게 알 수 없지만 眞表律師가 重創시에 미륵장육불상(彌勒丈六佛像)을 造成해 3층전인 金堂에 奉安했음이 〈三國遺事〉와 〈5층石塔重修期〉(1971년 發見)를 비롯한 〈금산사사적 金山寺事蹟〉(1705년)·〈금산사지 金山寺誌〉(1921년) 등에 기재되어 있다. 또 現在도 소조불상(塑造佛像)의 對坐 아래에 커다란 철제 수미좌(須彌座)가 남아 있어 過去의 장육상대좌임을 推測할 수 있다. 당시의 佛像은 1597년 丁酉再亂 때 建物과 함께 燒失된 후 1627년(仁祖 5) 塑造三尊像을 造成하였다. 現建物은 1601년부터 1635년 사이에 수문에 의해 再建된 뒤 4차례의 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륵전

(彌勒殿)

 

미륵전 (彌勒殿)은 진표율사 (眞表律師)가 미륵장육상 (彌勒丈六像)을 奉安 하기위하여 766년 新羅 惠恭王 2년 에 처음 建立한 法堂이다. 法堂내에는 彌勒佛,法華立菩薩,大妙想菩薩,등 三尊像이 照像되어있다. 彌勒殿은 丁酉再亂에 全燒되었으나 朝鮮 仁祖 13년 1635년에 수문대사가 韓國 唯一의 三層法堂으로 再建 한것이다. 法堂外部 1층과 2층은 正面 5칸 側面 4칸 이고 3층은 正面 3칸 側面 2간인 팔작지붕 타포형식이며 法堂內部는 층이 따로 區分되어있지 않은 통층 이다. 建物 中央의 第一 높은 기둥은 하나가 아니라 몇개의 기둥을 連結하여 만든것이다. 이러한 기둥樣式은 木造塔 樣式에서 飜案된 構造이다. 오랜風雨를 지내는동안 건무의 木材가 썩고 建物이 기울어 1988년부터 1993년까지 5년간 에 걸쳐 文化財管理局의 主管으로 建物을 全面 解體保守하였으며 1990년에 다시 法瓦工事를 하였다. 法堂內部 地下에는 年代未詳의 鐵製連和臺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法堂內部에는 원래 鐵佛이 모셔져 있지 않았을까 推定하고 있다.  항간에는 이 蓮花臺가 솥으로 알려져있으며 솥을 만지는 모든사람은 俗世의  業障을 消滅하고 所願을 成就한다고 傳해오고 있다. 彌勒殿의 터는 원래 龍이 살고 있던 연뭇이었으나 어떤 高僧의 가르침에 따라 참숯으로 연못을 매워 龍을 쫓고 彌勒殿을 建立하였다고 한다.

 

 

노주

(露柱)

 

이 석조 (石造) 建造物은 그 用度를 알수없는 遺物이나 그 形態가 방형의 蓮花臺 처럼 造成된 특이한 石造物임에 着眼하여 露柱라고 부르고 있다. 石造 建造物의 構造는 上,中,下 三檀으로 構成되어 있는데 각 단 마다 眼象과 靴型門 그리고 귀기와 仰蓮,복련,등이 華櫚하고 多樣하게 조각되어 있다. 특히 相對石 위에는 一般 石搭의 相輪部와 類似한 樣式이 彫刻되어 있는데 相輪部가 原型이며 補柱 사이는 間柱 型式인 것이매우 특이하다. 連峰形인 寶珠의 肖像 技法으로 보아 高麗 初期의 作品일것으로 推定하고 있다. 

 

 

석련대

(石蓮臺)

 

연화대 (蓮花臺) 型式으로 彫刻한 佛像의 座臺로 무려 눞이가 1.52 m 둘레가 10 m에 달하는 거대한 蓮花臺 이다. 蓮花臺 全體가 1개의 돌로되어 있으나 여러개의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上,中,下 대의 三段 樣式을 정연히 갖추고 있다. 下臺石의 側面은 10각형이며 8개 면에는 안상을 陰刻하고 그 안에 書畵를 조각 하였으며 2개면에는 師子像을 彫刻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복련관을 각변에 따라 10판을 돌려 옹려하게 表現 하였다. 이와같은 彫刻과 粧飾 이외에도 中代 上代 下代 등에는 安詳과 花紋 連判文등을 粧飾的 倚仗法으로 彫刻하였다. 上代石 윗면 中央 부분에는 두 개의 방형 구멍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 座臺가 石佛 立像을 세우는데 利用되지 않았을까 推定하고 있다. 座臺의 彫刻 守法이 統一新羅時代의 樣式과 類似하나 無秩序한 安詳의 配置와 蓮板內의 사치스러운 彫刻및 粧飾法등 으로 미루어 高麗時代初期 대략 10世紀경의 石造物로 推定하고 있다. 

 

 

감로수

(甘露水)

 

金山寺 절에서 사용하는 맑은물

 

 

범종각

(梵鐘閣)

 

범종각 (梵鐘閣)은 梵鍾,法鼓,木魚,雲版등 佛敎儀式에 使用하는 事物을 保管하는 곳이다. 梵鍾은 地獄에서 온갖苦痛을 받고 있는 衆生들에게 부처님의 法音을 들려주기 위하여 하루중 인시,오시.술시등 모두세번을 친다. 莊嚴하게 울리는 梵鍾소리를 들음으로서 地獄,衆生들은 누대 겁에 걸쳐 알게 모르게 지은 惡業을 깊이 뉘우치고 淸淨하고 純潔한 본래 自身의 마음으로 菩提心을 발하게 되는것이다.

 

     

석등

(石燈)

 

법당 (法堂)앞을 밝히는 등 (燈)불로 인등 (引燈) 장명등(長明燈)이라고도 한다. 이 石燈은 花崗岩으로 만든 높이 3.9 m 의 高麗時代의 作品으로 1922년 大長殿을 以前할때 現 位置로 옮겼다. 方形板石을 地臺石으로 下隊는 原型인데 복면은 으로 粧飾 하였다. 刊石은 八角形이며 각 모서리마다 線을 쳐서 宇宙인 듯이 强調하였다. 上隊는 兩便으로 粧飾하였다. 火舍石과 蓋石은 八角形이며 개석 頂上에는 원대를 두어 相輪部를 받들게 하였다.

 

     

대장전

(大藏殿)

 

대장전 (大藏殿) 은 미륵전 (彌勒殿)을 장엄 (莊嚴)하는 정중 (庭中) 목조탑 (木造塔)으로 미륵전 (彌勒殿)과 함께 일찍이 建立되었다. 丁酉再亂에 燒失된 후 1635년 朝鮮仁祖 13년에 再建되었으며 1922년  彌勒殿 앞에서 現 位置로 以前 하였다. 現在  지붕위에 남아있는 복발과 보주 등 은 朝鮮 仁祖 以前의 木塔 殘影이며 法堂안 에는 釋迦牟尼佛과 上手弟子인 迦葉尊者와 阿難尊者를  奉安하고 있다. 建物은 比較的 短調롭고 小規模 이지만 正中 木塔의 變形建物 로 注目되며 釋迦牟尼佛 後佛光背의  彫刻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부전

(冥府殿)

 

명부전 (冥府殿)은 지장보살 (地藏菩薩) 명부시왕 (冥府十王)을 봉안 (奉安)하고 있으므로 지장전 (地藏殿) 또는 시왕전 (十王殿)이라고도 한다. 1857년 朝鮮 哲宗 8년 만택비구니 스님이 現在의 彌勒殿과 大寂光殿 사이에 再建한것을 1972년 現在의 位置로 옮겼다. 全閣 中央에는 地藏菩薩이 祖上이 되어 있는데 俗世의 惡業으로 苦痛받고 있는 地獄衆生을 啓導 하기 全에는 成佛하지 않겠다는 書院을 세운 代承菩薩 이다. 地藏菩薩을 中心으로 양 옆에는 十分의 大王을 이고 있는 분은 閻羅大王이 祖上이 되어있는데 머리에는 金剛經을 이고 있는 분은 閻羅大王 이다. 

 

 

나한전

(羅漢殿)

 

이 全閣에는 四聖諦를 깊이 깨달아 一體의 無名과 愛着을 여의고 모든 괴로움이 燒滅된 涅槃의 境地에 이른 羅漢을 奉安하고 있다. 羅漢殿은 原來 寂滅寶宮 자리에 있었는데 1996년 方等階段을 聖域化할때 現在의 자리로 옮겨서 새로 지었다. 全閣內에는 옮기기 以前의 羅漢殿에 奉安.

 

 

   

 

'歷 史 旅 行 2 > 宗敎施設 (寺) ' 카테고리의 다른 글

盤若山灌燭寺  (0) 2010.07.19
楞伽山來蘇寺  (0) 2010.07.19
漢美山興國寺  (0) 2010.06.21
三角山津寬寺  (0) 2010.06.21
古靈山普光寺  (0) 2010.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