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三角山津寬寺

 (三角山津寬寺)

 

 

津寬寺는 大韓佛敎曹溪宗 直轄寺刹로  東쪽의 佛巖寺, 西쪽의 津寬寺, 南쪽의 三幕寺 北쪽의 僧伽寺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近郊의 4대 名刹로 손꼽힌 이름난 寺刹이며 또한 水陸道場으로 唯名하다.  道場의 建物은 主法堂인 大雄殿을 中心으로 左側으로 전각(殿閣)이 있으며, 右側에 요사(寮舍)가 配置된  중정형(中庭形) 伽藍이다. 大雄殿 左側으로는 冥府殿을 始作으로 羅漢殿, 七星閣, 獨聖殿이 자리하고 있으며 現在 중정형(中庭形) 伽藍이다. 大雄殿 左側으로는 冥府殿을 始作으로 羅漢殿, 七星閣, 獨聖殿이 자리하고 있으며 現在 서울시 文化財로 指定된 12종 36점의 城堡遺物들이 散材해 있다. 이들 遺物들은 모두 16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製作된 貴重한 作品들이다. 그 외에도 津寬寺에는 近代佛敎의 대강백이신 탄허스님의 親筆을 포함한 많은 聖堡들이  있다.

 

 

 

진관사

(津寬寺)

 

新羅 眞德王 때 元曉가 삼천사(三川寺)와 함께 創建하여 신혈사(神穴寺)라 했다. 高麗 顯宗이 어릴 적에 自身을 王太后의 암살 기도(企圖)로부터 구해준 新穴寺의 승(僧) 津寬의 恩惠에 報答하고자 新穴寺 자리에 大伽藍을 세우고 津寬寺라 했다. 그뒤 1463년(世祖 9) 火災로 燒失된 것을 1470년(成宗 1) 벽운(碧雲)이 重建했다. 以後에도 몇 번의 重修가 있었으며, 6·25戰爭 때 羅漢殿 등 3동만 남기고 모두 불탔다. 1964년 再建을 始作해 現在 大雄殿·冥府殿·羅漢殿·독성각(獨聖閣)·七星閣·홍제루(弘濟樓)·鐘閣·一周門·仙院·대방(大房) 등이 있으며 비구니의 修道道場으로 利用하고 있다.

 

 

대웅전

(大雄殿)

 

津寬寺의 主法堂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다포계 單層建物로 正面 13.6m, 측면 8m의 크기이다. 基壇의 礁石만 元來의 것이고 建物은 1965년에 重創主人 진관스님이 新築한 것으로, 長方形의 花崗岩 基壇 위로 原型礎石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이다. 多包는 龍頭와 어우러져 한껏 主法堂의 威嚴을 보이며, 팔작지붕 위에 깔린 청기와는 뒤의 三角山을 背景으로 한껏 造化를 이룬다. 大雄殿의 外部는 三面에 外壁畵를 莊嚴한 모습으로, 外壁은 심우도와 飛泉으로 丹靑되어 있으며, 語幹에는 扁額과 柱聯 6기가 걸려 있다.

 

편액

(扁額)

 

朝鮮 宣祖의 여덟 번째 아들인 宜昌群 이광(李珖)의 楷書體 글씨로, 華嚴寺 懸板을 그대로 複寫하여 製作한 曹溪寺의 大雄殿 懸板을 다시 復刻한 것이다.

 

 

주련

(柱聯)

 

 

佛身充滿於法界 부처님 온 법계에 가득 차계시니              普顯一切衆生前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시네

隨緣赴感靡不周인연 따라 두루 보살펴 주시되              而恒處此菩提座항상 보리좌를 떠나지 않으시네

廣大願雲恒不盡 광대한 서원 구름같이 다함이 없고          往洋覺海妙難窮넓고 넓은 깨달음의 바다 아득하여 끝이 없네

 

 

수기삼존불

(授記三尊佛)

 

석가여래불좌상

(釋迦如來佛坐像)

 

석가여래불좌상 (釋迦如來佛坐像)대웅전의 釋迦如來는 법화경(法華經)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의 주존불(主尊佛)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단편견(右袒偏肩)에 結跏趺坐를 하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고 있다. 후불탱화(後佛幀畵)는 毘盧遮那喉佛畵로, 삼신불(三身佛)의 주존(主尊)인 毘盧遮那佛은 양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을 입고, 부처와 衆生이 하나라는 意味의 손 模樣인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미륵보살상

(彌勒菩薩像)

 

미륵보살상 (彌勒菩薩像)大雄殿의 彌勒菩薩은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의 한 분으로 釋迦如來의 왼쪽에서 협시(挾侍)를 하고 있다. 彌勒菩薩은 釋迦如來에게 장차 未來에 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菩薩로 미래불(未來佛)을 菩薩形으로 表現한 것으로 손 模樣은 下品中生인(下品中生印)을 결하고 있다. 후불탱화(後佛幀畵)는 盧舍那佛畵로, 毘盧遮那佛처럼 통견(通肩)을 입은 盧舍那佛은 양손을 위로 한 說法하는 모습의 손 模樣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제화갈라보살상

(提華褐羅菩薩像)

 

제화갈라보살상 (提華褐羅菩薩像)大雄殿의 提華褐羅菩薩은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의 한 분으로 釋迦如來의 오른쪽에서 협시(挾侍)를 하고 있다. 釋迦如來가 과거 범지(梵志)로 있을때 머리카락을 깔아 정광불(定光佛)을 지나가게 한 功德으로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는데 提華褐羅菩薩는 과거불(過去佛)의 代表인 精鑛佛이 菩薩로 表現된 경우로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고 있다. 

 

 

신중탱화

(神衆幀畵)

 

三尊佛의 右側 벽에는 1990년에 금어(金魚) 수산(樹山) 임석환(林石煥)이 造成한 오여래탱화(五如來幀畵)를 두고 左側 壁에는 1967년에 造成된 신중탱화(神衆幀畵)와 1934년에 화경(和璟)스님이 그린 현왕탱화(現王幀畵)를 奉安하였다. 현왕탱의 구도는 單純한데, 中央에 현왕(閻羅大王)을 두고 그 아래에 판관(判官)과 녹사(錄事)가 마주한  모습이다. 全體的인 色感은 赤色과 黃色이 鑄造를 이루며, 크기는 가로 63.5㎝, 세로 96㎝이다.

 

 

오여래탱화

(五如來幀畵)

 

三尊佛의 右側 벽에는 1990년에 금어(金魚) 수산(樹山) 임석환(林石煥)이 造成한 오여래탱화(五如來幀畵)를 두고 左側 壁에는 1967년에 造成된 신중탱화(神衆幀畵)와 1934년에 화경(和璟)스님이 그린 현왕탱화(現王幀畵)를 奉安하였다. 현왕탱의 구도는 單純한데, 中央에 현왕(閻羅大王)을 두고 그 아래에 판관(判官)과 녹사(錄事)가 마주한 모습이다. 全體的인 色感은 赤色과 黃色이 鑄造를 이루며, 크기는 가로 63.5㎝, 세로 96㎝이다.

 

 

창호

 

建築窓戶의 살짜임새는 앞면 양칸은 빗살이며 中央에만 솟을빗살꽃살로 짜여져 있고 龍머리를 中央門 양쪽에 彫刻하여 大雄殿을 守護하고 있다.
   

 

명부전

(冥府殿)

 

冥府殿은 大雄殿 左側에 있는 正面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建物에 다포계 斷層木造建物인데, 正面 9.6m, 측면 8m의 크기로 1968년에 진관스님이 세운 것이다. 現在의 建物은 1996년에 다시 新築한 것으로, 낮은 기단 위에 原型礎石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얹은 모습이다. 建物 外部는 3ㆍ4분합의 絞殺門을 두고 三面에 地藏菩薩과 聯關된 般若龍船圖와 地藏菩薩 靈驗圖를 丹靑하였으며, 語幹에는 탄허(呑虛)스님이 쓴 扁額과 柱聯 4기를 걸었다.

 

 

나한전

(羅漢殿)

 

羅漢殿은 大雄殿 左側 築臺 위에 있는 正面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翼工係 木造 斷層建物로 近來에 새로 重創하였다. 建物은 花崗岩으로 만든 基壇위에 原型礎石을 두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 평방 위로 익공을 얹은 모습으로 建物全面에 2.3분합의 교살문이 빗살창무늬로 짜여져 丹粧되었으며 三面의 壁에는 羅漢圖가 丹靑되어있다. 禮書體로 羅漢殿 懸板은 光緖 10년 (光緖10年; 고종21년, 1884년)에 노천(老泉)이 썼다는 記錄이 있으며 기둥마다 4기의 柱聯이 있다.

 

 

無邊無量圓法珠之三昧 무량무변 깊고 원만한 법계의 삼매

正等正覺妙雜華之一宗 위없이 바른 깨달음의 꽃, 일승종지라네
畵雪牛於上乘十六羅漢 상승의 경지에 설우를 그리니 16나한이요

湧火蓮於法界一初如來 법계에 용솟음친 불꽃 연꽃은 가장 첫 여래라.

 

 

나한상

(羅漢像)

 

羅漢殿에는 본존상(本尊像)인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 左右로 각각 8구(軀)씩 16구의 나한상(羅漢像)과 제석상(帝釋像) 1구, 사자상(使者像) 1구, 인왕상(仁王像) 2구 등 모두 20구(軀)의 상이 奉安되어 있다. 材料는 모두 소조로 華櫚하게 彩色되어 있으며, 각 상은 크지 않은 아담한 크기로 높이 47~53㎝의 소형상 (小形像)이다. 이들 羅漢들은 여러 가지 지물(持物)을 들고 각각 特徵的인 자세를 취하는 등 自由롭게 表現되었으며, 각 羅漢들의 얼굴表定과 姿勢는 매우 事實的일 뿐만 아니라 解學的으로 描寫되어서 佛敎 彫刻이 갖는 嚴格하고 規格的인 모습을 탈피하고 肖像 彫刻과 같은 個性的이고 豁達한 面毛를 보여주고 있다.
     

 

독성전

(獨聖殿)

 

독성전(獨聖殿)은 홀로 천태산(天台山)에서 修道하면서 부처님이 涅槃하신 후 모든 衆生들을 制度하고자 하는 아라한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시고 있는 전각(殿閣)으로, 우리나라에서는 朝鮮 後期에 산신(山神) 및 칠성(七星)과 함께 삼성각(三聖閣)에 봉안하거나 따로 독성전(獨聖殿)에 奉安하여 信仰하였다. 那畔尊者를 모신 全閣은 독성각(獨聖閣)으로 一般化되어 있으나 津寬寺에서는 ‘독성전(獨聖殿)’으로 格上되어 있다.

      

 

칠성각

(七星閣)

 

七星閣은 伽藍의 西쪽 끝에 있는 正面 3칸(4.8m), 側面 1(4m)칸의 맞배지붕을 한 민도리집 型式으로 朝鮮祖 末에 重創한 建物이다. 花崗岩으로 造成된 낮은 基壇 위에 마름모꼴의 礎石을 두고 그 위로 四角기둥을 올린 모습으로 獨聖殿과 같이 공포 없이 서까래를 利用하여 지붕을 올린 모습이다. 建物 外部는 全面에 2·4분합의 띠살문을 두고, 側後面 壁體는 아래가 邦畵場, 위가 深碧으로 構成되었다. 七星閣은 바로 옆의 獨聖殿과 함께 1907년에 지어진 것으로 推定되며 또한 全書體로 쓴 懸板도 建立 당시의 것으로 推定된다.建物 內部는 後佛壁에 맞닿은 불단(佛壇) 위에 朝鮮後期에 造成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과 1910년에 造成된 칠성도(七星圖), 그리고 영정(影幀)을 奉安하였다. 津寬寺 七星閣과 獨聖殿은 신중단(神衆壇=寺刹에서 護法神衆을 모셔두는 단)에 속하는 建築物로서는 서울 市內에 現存하는 建物 중 現在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建立聯隊가 가장 오래됐다.  또한 19세기 候班~20세기 초 서울 · 京畿 地域 寺刹 建物들에게서 特徵的으로 나타나는 建築方式으로 左.右.後面 등 3면의 벽을 벽돌로 마감하는 화방벽(火防壁)이 設置되는 등 建物들이 創建될 당시의 時代的, 地域的 特性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 文化財資料 제 33호로 指定되었다  ,

  

 

나가원

(那迦院)

 

那迦院은 大雄殿 右側에 있는 正面 7칸, 側面 3칸의 팔작지붕 建物로, 1972년에 津寬스님이 新築한 것이다. 建物은 콘크리트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圓形礎石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 建物全面 3칸에 툇마루를 두어 妖邪채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사채이지만 建物 外部는 동자도와 花卉도 같은 丹靑이 칠해져 丹精한 멋이 느껴지며, 語幹에는 懸板을 비롯하여 주련 8기가 걸려 있다. 建物 內部는 정면 3칸은 大衆房으로, 그리고 左右 2칸은 요사채와 宗務所로 構成되어 있는데,  大衆房에는 1972년에 造成된 석조관음보살좌상 (石造觀音菩薩坐像)과 1973년에 造成된  아미타후불홍탱(阿彌陀後佛紅幀)이 奉安되어 있다. 那迦院의 懸板과 柱聯 또한 탄허스님의 親筆이다  

 

 

細推今舊事堪忍 貴賤同歸一土邱   고금의 사바사계 일 살펴보았더니 귀한 이나 천한 이나 모두 흙으로 돌아갔네
   梁武玉堂塵已沒 石崇金谷水空海   양무제의 화려한 궁궐도 이미 티끌이 되었고 석숭의 금곡도 빈 바다의 물거품이 되었네
       光陰乍曉仍還夕 草木春卽到秋   시간은 잠깐 새벽이었다가 곧 저녁이 되어버리고 초목은 겨우 봄인 듯 싶더니 문득 가을이네
處世若無毫末善 死歸何物答冥候   세상살이 털끝만큼도 좋은 일 없으니 죽으면 어떤 물건으로 염라대왕에게 답하랴.

 

 

동정각

(動靜閣)

 

建物은 階段席이 있는 假構式 基壇 위에 원형礎石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 四眠이 開放되어 있으며, 기둥에는 洛陽閣이 粧飾되어 있다. 建物 外部는 語幹에 近代 佛敎係의 대강백(大講伯) 탄허(呑虛)스님이 쓴 동정각(動靜閣)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으며, 기둥 外部로 주련(柱聯)이 있다. 建物 內部는 津寬寺의 범음을 전달하는 범종(梵鐘)이 걸려 있는데, 1974년에 造成된 것으로 높이 160㎝, 구경 91㎝, 300관의 大型梵鍾이다 .

 

 

홍제루

(弘濟樓)

 

境內로 들어가기 前 初入에 있는 樓閣으로 正面 3칸, 側面 2칸의 2층 樓閣型式의 建物로서 1층은 石柱기둥으로 構成되었고 2층은 팔작지붕의 木造建物로 1977년에 津寬스님이 新築한 建物이다. 절에 進入하는 出入口로 境內에 들어서려면 樓閣아래의 中央 階段通路를 利用해야 하는데, 建物 1층은 石柱를 세워 下部構造가 드러나 있으며, 石柱에는「大宗臺侍主費」가 새겨져 있어 朝鮮後期 津寬寺의 歷史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외 石柱 左右로는 木造로 만든 出入口가 있으며, 出入口에는 四天王門을 대신한 듯 人王像이 丹靑되어 있다. 이외 2층은 現在 講堂으로 使用되는데, 內部는 우물마루를 깔아 寺刹을 參拜하고 集會를 할 수 있는 空間을 마련하였으며, 外部는 鷄子欄干을 둘러 津寬寺를 찾는 參拜客들의 休息處로도 使用되고 있다.

 

 

慈光照處蓮花出  자비광명이 비추는 곳에 연꽃이 피고               慧眼觀時地獄空  지혜의 눈이 열리니 지옥도 본래 없네

 

又況大悲神呪力  또한 다시 대비신주의 힘으로                         衆生成佛刹那中  중생을 찰나 중에 성불시켜 주시도다

 

普濟人天難思量  널리 인천을 제도함이 사량키 어려움이라          招憑諸佛大悲力  제불의 대비력을 불러 의지함이요

 

衆生不盡業茫茫  중생의 업이 아득하고 아득하여 끝이 없음이여   世界無邊塵擾擾  가없는 중생계는 어지러이 일어나는 먼지와 같음이여.

 

 

 

 

'歷 史 旅 行 2 > 宗敎施設 (寺) ' 카테고리의 다른 글

母岳山金山寺  (0) 2010.07.18
漢美山興國寺  (0) 2010.06.21
古靈山普光寺  (0) 2010.05.22
龍門山龍門寺  (0) 2010.05.15
泰華山麻谷寺  (0) 201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