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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龍門山龍門寺

 (龍門山龍門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6敎區 本山인 孤雲寺의 末寺이다. 이 절은 870년(경문왕 10) 두운조사(杜雲祖師)가 創建했다. 〈사적기 寺蹟記〉에 의하면 936년 太祖가 直接 重建했고, 1165년(毅宗 19) 王命으로 重修했다고 한다. 1171년(明宗 1) 太子의 胎를 一周門 밖 慈悲峯頭에 묻은 다음 절 이름을 龍門山 창기사(昌基寺)라고 바꾸었고, 1179년부터 15년간에 걸쳐 大大的인 佛寺가 이루어졌다. 1478년(成宗 9) 世宗大王의 妃인 昭憲王后(昭憲王后)의 胎室을 奉安하고, 절 이름을 成佛山 龍門寺라고 다시 바꾸었다. 1783년(正祖 7) 문효세자(文孝世子)의 胎室을 이곳에 쓰고 成佛山을 小白山으로 고쳤다. 1835년(憲宗 1) 火災로 燒失된 것을 역파(櫟坡)대사가 상민(尙敏)·부열(富悅) 등과 함께 重建했다. 現存 唐虞로는 普光明殿·大雄殿·應香閣(凝香閣)·應眞閣·冥府殿·應眞殿·回轉門·梵鍾樓 등이 있다. 重要文化財로는 大雄殿(寶物 제145호)·윤장대(輪藏臺:寶物 제684호)·龍門寺校誌(寶物 제729호)가 있고, 康熙23년(康熙二十三年) 名文이 있는 大莊全木刻佛撑(寶物 제989호) 등이 있다.


 

 

일주문

(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寺刹로 들어가는 첫 번째 關門이다. 원래 지붕을 가진 一般的인 建築物이라고 하면 四方에 네 개의 기둥을 두어 지붕의 하중을 支撑해야 하는 것이 常式이다. 하지만 一周門은 한 줄로 나란한 두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支撑하며 서 있는 建築物이다 龍門寺는 新羅 神德王 2년(913) 大慶大師가 創建하였다고 傳하며, 一說에는 敬順王(927~935在位)이 親히 行次하여 創寺 하였다고 한다. 高麗 優王 4년(1378) 至賤大師가 凱風 敬天寺의 大藏經을 옮겨 奉安하였고 朝鮮 太祖 4년(1395) 早雁和尙이 重創하였다. 世宗 29년(1447) 首陽大君이 모후 昭憲王后 沈氏를 위하여 寶殿을 다시 지었고 英祖 3년(1457) 王命으로 重修하였다. 

 

 

 

입구에있는 출렁다리

 

은행나무

(銀杏木)

 

龍門寺의 銀杏나무는 天然記念物 30호로 指定 되었고 나이가 1.100살 程度로 推定되며 높이 67 m 뿌리부분 둘레 15.2 m 이다. 우리나라銀杏 나무가운데 나이나 높이에 있어서 最高의 높은 記錄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아래에 혹이 있는것이 特徵이다. 이 나무는 統一新羅 敬順王의 아들인 麻衣太子 가 나라를 잃은 舌音을 안고 金剛山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傳說과 義湘大師가 짚고다니던 지팡이를 꽃아놓은것이 자라서 나무가되었다는 傳說이 傳해진다. 朝鮮世宗때 堂上官 (정3품)이라는 品階를 받을만큼 重 히여겨져 오랜 歲月동안 祖上들의 觀心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生物學的 資料로서 가치가 높아 天然記念物로 指定保護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동관음보살좌상

(金銅冠音寶薩座像)

 

2000년 3월 24일 京畿道有形文化財 제172호로 指定되었다. 龍門寺의 관음전(觀音殿)에 奉安되어 있는 佛像이다. 龍門寺는 新羅 神德王 2년(913) 大驚大師가 創建하였다고 傳하며, 首陽大君이 1447년(世宗 29)에 모후(母后)인 소헌왕후(昭憲王后)를 위해 佛像 2구와 菩薩像 8구를 奉安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6·25戰爭 때 절이 모두 불타버려 이 佛像이 本來의 龍門寺 菩薩像인지 아닌지 確認할 可能性이 없을 뿐더러, 以後 어디서 어떻게 이곳에 奉安되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記錄이 남아 있지 않다. 金銅觀音菩薩像 典型的인 高麗後期의 彫刻樣式을 繼承한 15세기 初의 優秀한 作品으로 全體的으로 堂堂하면서도 華櫚한 貴族的인 雰圍氣를 갖추고 있다. 觀音普薩은 慈悲로서 衆生을 救濟하는 菩薩로 손에 寶甁이나 연꽃을 들며 머리에는 阿彌陀佛이 새겨진 寶冠을 쓰는것이 一般的인 모습이다  높이가 73 cm 인 이 菩薩像은 慈悲로운 表情을 나타내고 있다.

 

 

대웅전

(大雄殿)

 

成宗 11년(1480) 처안스님이 重修한 뒤 高宗 30년(1893) 鳳聲 大師가 重創하였으나, 純宗元年(1907) 義兵의 根據地로 使用되자 日本軍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重建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大雄殿, 御室閣, 爐殿, 七星閣, 記念閣, 寮舍등을 重建하였으며, 1982년부터 지금까지 大雄殿, 三性閣, 梵鍾閣, 地藏殿, 觀音殿, 寮舍채, 一株門, 茶園 등을 새로 重建하고 佛舍利塔, 彌勒佛을 造成하였다. 境內에는 권근이 지은 寶物 제531호 逞志國事浮屠 및 碑와 地方有形文化財 제172호 金銅冠蔭補薩坐像, 天然記念物 제 30호 銀杏나무가 있다.

 

 

 

天然記念物 제 30호 銀杏나무 

 

은행나무

(銀杏木)

 

天然記念物 제30호. 面積 258m2. 數量 1그루. 1962년 12월 3일 지정. 推定壽齡 1100년. 指定事由 노거수. 용문사 소유. 나무높이 62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 가지퍼짐은 동쪽 14.1m, 서쪽 13m, 남쪽 12m, 북쪽 16.4m이다. 龍門寺 境內에 있는 이 銀杏나무는 암나무이며, 줄기 아랫부분에 큰혹이 나 있는 것이 特徵이다. 韓國의 나무 중 가장 키가 크며, 우람하고 당당한 威嚴을 風氣는 代表的인 名木이라 할 수 있다. 이 나무는 新羅 경순왕(敬順王)의 世子였던 麻衣太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金剛山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또 新羅의 高僧 義湘大師(義湘大師)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가 자라는 동안 많은 戰爭과 火災가 있었으나 이 나무만은 그 화를 面했다고 한다. 사천왕전(四天王殿)이 불탄 뒤부터는 이 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그 變故를 알렸다고 할 程度로 神靈스런 나무로 認識되어 崇拜의 對象이 되고 있다. 조선 세종(世宗) 때는 정삼품(正三品)보다 더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下士받은 명목(名木)이다.

 

 

범종각

(梵鍾閣)

 

寺刹에서 梵鍾이 있는 곳을 말하며  梵鍾閣은 一般的으로 不二門과 同一線上에 位置하는데 그 까닭을 不二門과 關係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梵鍾閣에서는 범천(梵天)의 鐘소리가 흘러나온다. 힌두교의 創造神인 梵天은 하늘에서 不二門으로 들어오는 求道者를 歡迎하고 그가 不二의 境地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하늘의 音樂을 演奏한다. 이 梵天의 소리는 더 나아가 아직 不二門에 이르지 못한 求道者에게 勇氣를 북돋우어 주고 一周門 바깥에서 苦痛 받는 衆生들의 煩惱를 씻어주는 부처의 소리인 것이다. 이 梵鍾閣에는 때로 梵鍾만이 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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