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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內延山寶鏡寺

(內延山寶鏡寺)

 

 

天王門·一周門 등이 있다. 重要文化財로는 圓眞國師碑 (寶物 제252호)와 寶鏡사부도(寶物 제430호)가 있으며, 이밖에 11기의 浮屠가 있다. 大韓佛敎曹溪宗 제11敎區의 本社인 佛國寺의 末寺이다. 四溟大師의 金堂記文에 의하면 西域僧 摩謄과 法蘭이 中國에 가져온 八面鏡을 第子인 日照禪師가 黃海를 건너 解東 땅에 가져와 宗南山 아래에 있는 연못 속에 묻고 메운 다음 절을 지어 寶鏡寺라고 했다 한다. 745년(景德王 4)에는 哲敏이 重創하고, 1214년에는 圓眞國師가 僧房 4동과 正門 등을 重收했다. 1677년에는 道仁이 重創을 始作하여 三尊佛像과 靈山殿의 後佛幀畵를 製作했다. 1725년(英祖 1)에는 性熙와 寬信이 冥府殿을 移建했다. 現存 당우로는 大雄殿· 大寂光殿 ·靈山殿·八相殿· 冥府殿· 山神閣

 

보경사

(寶鏡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1敎區의 本社인 佛國寺의 末寺이다. 四溟大師의 金堂記文에 의하면 西域僧 摩謄과 法蘭이 中國에 가져온 八面鏡을 第子인 日照禪師가 黃海를 건너 解東 땅에 가져와 宗南山 아래에 있는 연못 속에 묻고 메운 다음 절을 지어 寶鏡寺라고 했다 한다. 745년(景德王 4)에는 哲敏이 重創하고, 1214년에는 圓眞國師가 僧房 4동과 正門 등을 重收했다. 1677년에는 道仁이 重創을 始作하여 三尊佛像과 靈山殿의 後佛幀畵를 製作했다. 1725년(英祖 1)에는 性熙와 寬信이 冥府殿을 移建했다. 現存 당우로는 大雄殿· 大寂光殿 ·靈山殿·八相殿· 冥府殿· 山神閣· .天王門· .一主門 등이 있다. 重要文化財로는 圓眞國師碑 (寶物 제252호)와 寶鏡사부도(寶物 제430호)가 있으며, 이밖에 11기의 부도가 있다

 

천왕문

(天王門)

 

寺刹의 門. 一周門 다음에 있다. 一周門을 지나 깨달음을 渴求하며 길을 가는 求道者에게 다다라야할 부처의 世界는 눈에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가야할 길만이 앞에 놓인 狀況 앞에서 求道者들은 쉽게 葛藤을 겪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天王門 이다.

 

오층석탑

(五層石塔)

 

寶鏡 五層石塔은 高麗時代 5층 石搭으로 높이는 약 5 m 이다. 寂光殿 앞에 있기 때문에 金堂塔으로 불린다. 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紀)에 의하면 道人,各人,文苑등이 高麗 顯宗(1023)에 建立 하였다고 傳한다. 慶尙北道 有形文化財 제 203호

 

적광전

(寂光殿)

 

이 建物은 主尊인 毘盧子那佛과 左右에 文殊普薩과 普賢普薩의 三尊佛을 모신 寂光殿으로 創建年代는 알수없고 1678년 肅宗 3년에 重建한 것이며 그 후 몇차례 重修가 있었다. 正面 3칸 側面 2칸의 5량(樑) 架多包 집으로 朝鮮中期 寺刹建築의 特徵을 比較的 잘 간직하고 있다. 寶鏡寺 境內의 現存 建物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것이며 특히 鑄出돌형이 靑玉 으로 만들져 있다.

 

대웅전

(大雄殿)

 

이 建物은 朝鮮 肅宗 3년 (1678)에 새로 지었고 그 후 몇차례 保修하였다. 現在의 建物에는 1932년의 代代的인 重修에 의한 樣式的 特徵이 주로 남아 있다. 正面 3칸 側面 2 칸의 八作집으로 앞의 칸은 通칸으로 處理하였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基壇은 花崗石으로 된 長臺石을 3 단으로 쌓고 가장자리로 덮개돌을 둘렀으며 윗쪽면은 1978년에 벽돌을 깔아 고친 것이다. 부처를 모신 佛壇은 고주에 意志하여 設置하고 三存佛像을 모셨으며 上部에는 낙얀으로 華櫚하게 粧飾한 寶盖 를 設置 하였다.

 

팔상전

(八相殿)

 

八相殿은 釋迦世尊의 一代生涯를 時期的으로 여덟가지로 나누어 그것을 八幅畵面으로 그려 모신 殿閣 이다. 이 八相殿에는 釋迦牟尼佛을 가운데 主尊으로 모시고 왼쪽에는 彌勒普薩바른쪽에는 提華가羅普薩을 모시고 兩周邊에 八相幀畵를 配列하였다. 이 殿閣은 朝鮮肅宗 3 年 (1618년)에 志聰 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산령각

(山靈閣)

 

山靈閣은 內延山 山神과 十方法界의 山神을 奉安한 殿閣인데 山神은 寶鏡寺 境內를 守護하고 佛法과 善行을 行하는 사람을 守護하는 善神이다. 이 殿閣은 원래 여기서 北쪽 으로 100 m 山麓에 있던 것을 1914년 현 場所로 移建 하였다.

 

원진각

(圓眞閣)

 

이 殿閣은 堂寺 創建主 智明法師의 영탱과 원진國師의 等像을 모시고 그밖에 西山大師 四溟大師와 堂寺에서 修道와 敎化를 하시다가 入寂하신 大德스님들의 眞影을 모신 殿閣이다. 이 殿閣의 建立은 朝鮮 肅宗 3 年에 學悅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원진국사비

(圓眞國師碑)

 

이 碑는 高麗  高宗 11 年 (1224)에 만들어진 圓眞國師 承逈 (1187 ` 1221)의 塔 碑이다 그는 俗性이 申氏이며 자는 永廻로 曦陽山  鳳巖寺  洞純寺 에게 나아가 僧侶가 되었고 金山寺  戒檀 으로부터 具足戒를 받았으며 僧科 에서 上上品 으로 合格 하였다. 그後 知訥 로부터 佛法을 배웠고 高宗 2 年 (1215) 大禪師에 任命되어 寶鏡寺에 머물렀다. 그는 楞嚴經에 能하였으며 世上을 떠난 後에 國師로 追從 되었다. 塔의 크기는 183 cm  너비 104 cm 두께 17 cm 로 龍모양 의 비머리 가없고 碑石의 위쪽 양끝을 귀접이한것과 둘레에 독특한 唐草文 文樣의 粧飾을 쓴것이 特徵이다. 碑身 에는 上段에 圓眞國師碑 라는 除厄이 있고 碑文은 斷定한 楷書體로 쓰여져 있다. 李公老가 지었고 글씨는 金孝印이 섰다.

 

영산전

(靈山殿)

 

 

靈山殿은 釋迦世尊이 生存에 계실때 印度 靈取山이란 데서 弟子들에게 說法을 많이 하셨는데 약 (約)하여 靈山이라고도한다. 이 靈山殿에는 가운데 釋迦世尊 左右에 사자(獅子)를 탄 문수보살 (文殊菩薩)과 코끼리 를탄 보현보살(菩賢菩薩)을 모시고 그 左右로  16아라한 (阿羅漢)을 配列하였다. 일명(一名) 십육나한전(十六羅漢殿)이라고도 한다. 주(註): 아라한(阿羅漢)이란 小僧 義敎法을 修行하여 道를 깨달은 성자(聖子)를 말한다.

 

명부전

(冥府殿)

 

冥府殿은 사람이 죽으면 그 靈魂이 다음생(次生)을 받기전에 이 世上에 있을때 行한 善惡간의 行爲를 審判받아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데 그 審判하는 官府를 形像化 한것 으로서 中央에 地藏普薩 左右에 道明尊者  無毒鬼王 그리고 十代王 을 모신 殿閣이다. 一名  十王殿  地藏澱 이라고도 한다. 이 建物은 肅宗 3 年 (1678)에 建立 하였다.

 

보경사탱자나무

(寶鏡寺)

 

이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년으로 推定된다. 높이 6 m 밑부분 둘레 97 cm 가슴높이둘레 60 cm 로서 ,나무 模樣은 圓形 이고 樹勢는 매우 旺盛하다. 京畿道 江華郡 江華면 甲官理와 思氣里에 各各 1 그루 씩 (天然記念物 78호 79호)이 더 있으나 이 나무들에는 미치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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