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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盤若山灌燭寺

(盤若山灌燭寺)

 

 

大韓佛敎曹溪宗 제6敎區 本寺인 마곡사(麻谷寺)의 末寺이다. 968년(光宗 19) 혜명(慧明)에 의해 創建될 때 造成된 石造彌勒像이 發散하는 빛을 좇아 中國에서 명승(名僧) 지안(智眼)이 와 禮拜했다고 하여 灌燭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法堂은 1386년(優王 12) 建立해 1581년(宣祖 14)과 1674년(顯宗 15)에 重修했으며 1735년(英祖 11) 다시 重修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現在 境內에는 觀音殿·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解脫門·顯忠閣 등의 당우가 남아 있으며, 石造菩薩立像(寶物 제218호)과 石燈(寶物제232호)을 비롯해 舍利塔·連和拜禮石·寺跡碑 등이 있다. 빛이 마치 촛불과 같이 빛난다.”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 했다고 한다.

 

 

 

일주문

(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寺刹로 들어가는 첫 번째 關門이다. 원래 지붕을 가진 一般的인 建築物이라고 하면 四方에 네 개의 기둥을 두어 지붕의 하중을 支撑해야 하는 것이 常式이다. 하지만 一柱門은 한 줄로 나란한 두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支撑하며 서 있는 建築物이다. 一柱門이란 名稱은 바로 이런 建築的인 특징에서 붙여지게 된 것이다. 佛敎에서는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일심(一心)이라는 意味를 扶餘한다. 즉 神性한 寺刹에 들어서기 前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眞理의 世界로 向하라는 象徵的인 意味가 담겨 있는 것이다. 一柱門의 瓊脂는 아직 무언가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는 位置이다. 다만 短狐한 決心과 實踐 意志를 보이면서 求道者로서의 길을 始作하는 段階일 뿐이다. 그러나 分明한 것은 一柱門을 基準으로 中生이 사는 世上인 세간(世間), 그리고 속계(俗界)와 生死 煩惱에서 解脫한 깨달음의 世界인 출세간(出世間), 즉 진계(眞界)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대웅보전

(大雄寶殿)

 

娑婆世界의 敎主인 釋迦牟尼 부처님을 奉安한 全閣으로 格을 높여 대웅보전 (大雄寶殿)이라고 하며 恒常 寺刹의 中心에 位置합니다. 釋迦牟尼佛을 中心에 두고 左右로 大慈大悲 觀世音 菩薩, 大成者母 觀世音 菩薩님은 夾侍菩薩로 奉安되었습니다.喉佛撑畵의 主佛은 釋迦牟尼佛.左右로 阿彌陀佛 藥師如來佛과 그 繪像임 大雄殿의 中心에 佛像을 安置하고 있는 佛壇을  須彌端이라고 하는데 이는 佛敎의 世界觀에서 그 中心에 位置한 須彌山 꼭대기에 부처님이 앉아 慈悲와 智慧의 빛을 발하고 있음을 象徵한다.

 

 

삼세불

(三世佛)

 

釋迦牟尼 부처님을 中心으로 양 옆에 藥師如來부처님과 阿彌陀부처님이 모셔져 있읍니다. 이대에 부처님들은 空間的으로 三世界를 代表하므로 三世佛이라고도 부름니다.

 

 

석조미륵보살입상

(石造彌勒普薩立像)

 

東洋 最大의 石佛로 高麗光宗 18년 (967)에 慧命大師가 建立하였다. 높이는 24.5 m 灌燭寺 境內에는 恩津彌勒으로 더 많이 알려진 高麗時代의 거대한 石造彌勒菩薩立像이 造成되어 있다. 우리나라 最大의 石佛로 알려진 菩薩立像의 造成에 대해서는 朝鮮 英祖 19년에 (1743)에 세워진 寺跡碑에 잘나타나 있다.

 

 

윤장대

(輪藏臺)

 

윤장대 (輪藏臺)란 佛敎慶典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다아 돌릴수 있게 만든것으로 輪藏臺를 한번돌리면 慶典을 읽은것과 같은 功德이 있다고 한다. 輪藏臺를 세운 理由는 부처님 法이 四方에 널리 퍼지라는 意味와 우리나라에 地勢를 고르게해 亂離가 없고 비바람이 順調로워 豊年이들고 太平聖代를 이루어 달라는 念願이 들어 있다. 이에 灌燭寺에서는 寺刹을 찿아오는 많은 분들이 自身의 삶을 한번 되돌라보고 希望하는 所願을 이루어 달라는 念願이 담겨져 있다.

 

 

석등

(石燈)

 

石燈이란 어두운 衆生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眞理로 佛性을 밝혀주는 燈인데 처음에는 實用的 性格이 强했으나 後代에는 佛典이나 塔 앞에 設置하는 粧飾的인 建造物로 變했다. 正四角形의 下臺石 옆면에는 안상을 3개씩 새겼다. 기둥돌은 둥근형태의 상,중,하 3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火舍石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네 기둥이 빈약한 반면 화창이 매우 넓다. 1.2층 지붕 돌의 네 귀에 귀곷이 큼직하게 서있어 경괘한 느낌을 준다. 全體的으로 원과 4각.8각이 混合되어 構成되었으며 安定感이 약간 不足하나 全體的으로 크고 莊重함 感을주고 있다. 또한 火舍石의 기둥이 가늘어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形態의 장대함과 修法의 雄壯함이 高麗時代 第一가는 傑作으로 評價된다. 寺跡碑에 의하면 佛像이 968년 (高麗光宗19)에 造成되었다고 記錄되어있어 造成年代를 알수있는 高麗時代 石燈이 代表作이다. 寶物 제232호

 

 

은진미륵

(恩津彌勒)

 

忠淸南道 論山市 恩津面 灌燭寺에 있는 石造彌勒菩薩立像 東洋 最大의 石佛로 高麗光宗 18년 (967)에 慧命大師가 建立하였다. 높이는 24.5 m 高麗 初期의 石造菩薩立像. 寶物 제218호. 거불(巨佛)로 예로부터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佛像이다.〈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권18 恩津造와 1744년(英祖 20)에 세워진 사적비(寺蹟碑)를 보아 光宗年間(950~975)에 僧侶 慧命이 造成한 佛像임을 알 수 있다. 상의 크기에 비해 불신(佛身)의 表現은 疏忽하여 어깨가 좁고 가슴이나 허리의 구분이 별로 없는 圓筒形이다. 천의(天衣)의 表現이나 옷주름도 매우 單純하다. 이마 위에 늘어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나 두 귀의 가운데로 걸쳐 있는 보발(寶髮)의 表現, 허리 밑으로 늘어진 앞치마처럼 생긴 둥근 옷자락의 表現 등은 高麗初 菩薩像들에서 共通的으로 보이는 特徵들이다. 이러한 特徵은 江陵 신복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神福寺址石造毘盧遮那佛像)이나 연산의 개태사석조삼존불(開泰寺石造三尊佛)의 夾侍菩薩像과 같은 高麗 初期의 佛像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灌燭寺 佛像은 보다 圖式化된 面을 보여준다. 높은 圓筒形의 관(아마도 金屬管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짐) 위에 다시 四角形의 이중 보개(寶蓋)를 얹고 있는 것이라든지 蓮花가지를 들고 있는 수인(手印) 등은 도상(圖像)면에서도 매우 특이한 要所이다. 보개는 中國의 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로, 아마도 상을 保護한다는 의미 또는 상의 偉容을 强調하기 위한 義徒로 製作된 것이 아닌가 한다.

 

 

5층석탑

(五層石塔)

 

灌燭寺 五層石塔은 拜禮石과 石燈 사이에 位置하고 있으며 基壇은 상, 하 2층 기단이나 1층 기단은 땅속에 묻혀 있다. 地臺石은 살필 수 없고 1층 基壇의 免席에는 눈썹모양의 紋樣이 彫刻되어 있다. 地臺石 위에는 1층 閘石이 位置하고 있고, 그 위에 2층 基壇을 두었다. 2층 기단에는 탱주가 3개 彫刻되어 있다. 基壇部와 塔身部 사이에는 평평한 돌이 끼워있고, 그 상면에 옥신 괴임이 彫刻되어 있다. 옥신의 양 측면에는 우주가 彫刻되어 있고, 屋蓋石(기와 지붕모양의 덮개 돌)의 받침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相輪部(탑의 가장 頂上部를 指稱하는 말)는 大部分이 缺失되어 確實한 形狀을 把握하기가 어렵다. 全體的인 構圖로 보아 5층 石塔으로 推定되지만, 現在는 4층만이 남아 있다. 石塔의 全體 높이는 343cm이다.

 

 

배례석

(拜禮石)

 

부처님께 예(禮)를 올리던 곳에 놓은 直四角形의 받침돌 (臺石)로 바닥에서 2단의 직각 괴임을 새기고 그 四方의 面石에는 안상을 새겼다. 윗면에는 가운데 커다란 연꽃을 中心으로 左右에 그보다작은 연꽃 두 송이를 돋을 새김 하였다. 연꽃은 단판 8옆 이며 中央에는 커다란 둥근자 圓坐가 있고 그 안에는 가운데 1개와 그 주위에 8개의 자방이 연주문 처럼 돌려져 있는데 陰刻으로 새겼다. 연꽃의 잎 끝이 뾰족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의 연곷잎을 뾰족하게 돋음 새김 하였다. 製作年代에 대한 이설이 많으나 製作技法으로 보아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과 같은 時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生角되어진다.

 

 

석 문

(石門)

 

寺刹로 들어가는 階段 맨 위쪽에 세워진 石門으로 寺刹에 들어가기 위한 門이라는 뜻의 해탈문 (解脫門)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門 入口의 양쪽 돌기둥은 너비 48 cm인 直四角形의 돌을 양쪽기둥으로 세웟고 윗면 천장에는 길게 다듬은 돌 5개를 가로로 걸쳐 얹어 4각형의 천정을 이루어 마치터널의 모습과 비슷하고 天障石을 除外하고는 모두 石材를 다듬어 벽돌 쌓은 型式으로 쌓았으며 入口의 양옆으로도 벽을 連結하고 境內를 保護하는 石壁의 模樣을 내었다. 이 石門은 寺刹의 中門 役割을 하는것으로 다른 寺刹에서 由來를 찿아볼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門이다. 製作 築造 年代에 관한記錄은 없으나 高麗時代에 造成한 石造彌勒菩薩立像과는 關聯이 없는 後代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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