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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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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立中央博物館 (高麗靑瓷)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고려청자 (高麗靑瓷)  상감 (象嵌)청자는 자기의 바탕흙 (胎土)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種類의 흙을 메워 넣는 技法으로 粧飾한 靑瓷이다. 다른 材料로 메워서 꾸미는 技法은 나전칠기 (螺鈿漆器)나 金屬工藝의 입사 (入絲)技法에서 볼수있는데 이를 陶瓷器에 應用한것은 高麗丈人의 創意的인 發想에서 나온것이다. 이미 9 세기말 10 세기 初로 여겨지는 象嵌技法의 陶瓷器 彫刻이 發見되어 12 세기 中葉에 이르면서 象嵌靑瓷가 本格的으로 流行하게 된다. 象嵌 技法은 世界 陶瓷器 歷史에서 高麗가 이룬 뛰어난 業績으로 비색 靑瓷 釉藥과 더불어 高麗靑瓷의 特徵이 되고 있다.
漢美山興國寺 한미산흥국사 (漢美山興國寺)  興國寺의 創建은 지금으로부터 1300여 年前 전인 西紀 661년(新羅文武王 元年)에 當代 最高의 高僧인 元曉스님께서 北漢山 元曉庵에서 修行하시던 중 北西쪽에서 祥瑞로운 氣運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고 山 을 내려와 이곳에 이르시게 되었고 서기를 발하고 계신 石彫 약사여래(藥師如來)부처님을 보신 元曉스님께서 因緣道場이라 생각하여 본전(本殿)에 藥師부처님을 모시고 '祥瑞로운 빛이 일어난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排出될 것이다' 하시며 절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 하고 오늘의 興國寺를 創建하셨습니다.  일주문(一柱門) 一柱門은 절의 入口에 세워진 門으로 하나의 기둥으로 지워진 것처럼 보이기에 一柱門이라 합니다.一柱門은 부처님의 道場인 절과 오탁악세의 世上을 區分하는 分岐點 役割을 ..
三角山津寬寺 삼각산진관사 (三角山津寬寺)  津寬寺는 大韓佛敎曹溪宗 直轄寺刹로  東쪽의 佛巖寺, 西쪽의 津寬寺, 南쪽의 三幕寺 北쪽의 僧伽寺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近郊의 4대 名刹로 손꼽힌 이름난 寺刹이며 또한 水陸道場으로 唯名하다.  道場의 建物은 主法堂인 大雄殿을 中心으로 左側으로 전각(殿閣)이 있으며, 右側에 요사(寮舍)가 配置된  중정형(中庭形) 伽藍이다. 大雄殿 左側으로는 冥府殿을 始作으로 羅漢殿, 七星閣, 獨聖殿이 자리하고 있으며 現在 중정형(中庭形) 伽藍이다. 大雄殿 左側으로는 冥府殿을 始作으로 羅漢殿, 七星閣, 獨聖殿이 자리하고 있으며 現在 서울시 文化財로 指定된 12종 36점의 城堡遺物들이 散材해 있다. 이들 遺物들은 모두 16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製作된 貴重한 作品들이다. 그 외에도 津寬寺에는 ..
悳浦鎭敎育博物館 덕포진교육박물관(悳浦鎭敎育博物館)  悳浦鎭敎育博物館은 前職敎師 出身인 夫婦가 設立한 곳입니다. 여러敎育資料와 오래된 農器具 生活必需品 등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珍貴한 것들이 展示되어 있읍니다. 엄마.아빠 어렸을적에 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敎室에서는 受業을 알리는 작은鐘이 매달려 있고 中央에는 나무나 갈탄을 때던 난로와 추운날 도시락을 난로위에 올려나 더운 밥을 먹을수 있었고 삐걱거리는 倚子와 冊床 風琴 등이 놓여져 있읍니다.  아이들은 옛날 부모님이 배웠던 敎科書나 冊걸상을 비롯해 우리네 옛 祖上들의 슬기와 智慧가 배어있는 物件들을 直接눈으로 볼수있으며 어른들은 바쁜日常으로 잊고 있던 어린時節을 한번 回想해 봄직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엄청 發展했음을 느낌니다. 교실 (敎室) 初等學校 4학년 3반  太極旗는..
金浦 (德浦鎭) 덕포진(德浦鎭)  史蹟 제292호 西海로부터 江華灣을 거쳐 서울로 進入하는 魚口인 孫乭港에 天海의 要塞를 利用한 軍事의 要衝地이고 壬辰倭亂의 쓰라린 體驗을 겪은 朝鮮 宣祖때 創設된 것으로 推定된다. 朝鮮조 肅宗 8 年 (1682)3 月까지 월곳진이 主鎭이었으나 그 後 德浦鎭을 主鎭으로 昇格하여 永宗과 안흥진을 館長하게 하였고  肅宗 20년 통진현이 都護府로 昇格되면서 德浦鎭도 江華道로부터 通津으로부터 그 隸屬이 變更되었읍니다. 그 후 英祖 36 年 (1760)에는 德浦鎭에 從三品의 水軍僉使가 水軍 316 名을 指揮했으며 府에서 전속 수영거리 南쪽으로 15 리에 이르렀읍니다. 덕포진전시관(德浦鎭展示館) 德浦鎭展示館 에는 重砲와 小包의 實物을 보실수 있으며 德浦鎭 砲臺 展示狀況 및 砲臺模型圖 등도 再現되어있..
雲峴宮(高宗.明成后家禮)2010 운현궁 (雲峴宮)고종 . 명성후 가례(高宗.明成后嘉禮)  明成后의 揀擇 課程은 다음과 같이 進行되었다. 1866년 1월 1일에 大王大妃께서 傳敎를 내려 全國의 12 ~ 17세 閨秀에게 禁婚令을 내렸다. 그리고 1월 16일에 別宮을 雲峴宮으로 하라는 敎止를 내리고 雲峴宮을 修理하라는 傳敎를 내렸다. 別宮인 雲峴宮에서 치러진 親迎儀는 王이 親히 王妃의 居所인 雲峴宮에 납시어 王妃를 昌德宮으로 모셔가는 意識으로 嘉禮의 六禮중 가장 重要한 意識이다. 한편 1866년 2월 25일에 昌德宮 重熙當에서 初揀擇을 行하였는데 이 初揀擇에서는 閔致綠의 딸 閔紫英을 포함한 5명의 閨秀가 揀擇되었고 2월 29일에 再揀擇에서 閔紫英을 포함한 3명이 揀擇되었다. 3월 7일에 " 閔致祿의 딸 閔紫英을 朝鮮第 26 代 王의 妃로 맞..
古靈山普光寺 고령산보광사(古靈山普光寺)  普光寺는 坡州市 廣灘面 영장리 13번지 古靈山에 자리한 大韓佛敎曹溪宗 第 25敎區 本寺 奉先寺의 末寺이다. 寺의 創建및 大體的인 沿革에 대해서는 이 절의 梵鐘閣에에 있는  梵鍾의 名文을 通해 어느 程度 살필수 있다. 이 梵鐘은 朝鮮時代인 1634年  (仁祖 12年)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 名問은 절의 歷史에 관한 가장 오래된 記錄이기도 하다. 그것에 의하면 절은 新羅時代인 894年  (眞成王 8年) 王命에 따라 道詵國士가 裨補寺刹의 하나로 創建되었다고 한다. 일주문(一柱門) 一柱門은 寺刹로 들어가는 첫 번째 關門이다. 元來 지붕을 가진 一般的인 建築物이라고 하면 四方에 네 개의 기둥을 두어 지붕의 下重을 支撑해야 하는 것이 常識이다. 하지만 解脫門은 한 줄로 나란한 두개의 기..
龍門山龍門寺 용문산용문사 (龍門山龍門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6敎區 本山인 孤雲寺의 末寺이다. 이 절은 870년(경문왕 10) 두운조사(杜雲祖師)가 創建했다. 〈사적기 寺蹟記〉에 의하면 936년 太祖가 直接 重建했고, 1165년(毅宗 19) 王命으로 重修했다고 한다. 1171년(明宗 1) 太子의 胎를 一周門 밖 慈悲峯頭에 묻은 다음 절 이름을 龍門山 창기사(昌基寺)라고 바꾸었고, 1179년부터 15년간에 걸쳐 大大的인 佛寺가 이루어졌다. 1478년(成宗 9) 世宗大王의 妃인 昭憲王后(昭憲王后)의 胎室을 奉安하고, 절 이름을 成佛山 龍門寺라고 다시 바꾸었다. 1783년(正祖 7) 문효세자(文孝世子)의 胎室을 이곳에 쓰고 成佛山을 小白山으로 고쳤다. 1835년(憲宗 1) 火災로 燒失된 것을 역파(櫟坡)대사가 상민(尙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