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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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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山大華嚴寺 지리산대화엄사(智異山大華嚴寺)  華嚴寺는 544년에 연기 (緣起) 조사께서 創建 하였읍니다. 緣起조사는 華嚴經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智異山 자락 황두골에 全閣 두 채의 작은절을 지었읍니다. 절의 이름을 華嚴經에서 따서 華嚴寺라 했읍니다. 華嚴經은 부처님의 世界,깨달음의 世界를 記錄한 慶典이니 華嚴寺가 곧 부처님의 世界이고 깨달음의 聖地라는 뜻일 것입니다. 新羅가 三國統一을 이룬後 에는 義湘大師께서 華嚴寺를 華嚴宗의 願刹로 삼아 머물고 新羅 景德王 때 이르러 8가람 81庵子의 大寺刹이 되었읍니다. 이 처럼 華嚴寺는 桎梏의 歷史 앞에 비켜서지 않았읍니다 때때로 復興쇄락의 時期가 反復되었지만 智異山의 은근함을 닮은 佛法의 脈을 이어오고 있읍니다. 보제루(普濟樓) 普濟樓는 有形文化財 제 49호로 指定..
曹溪山仙巖寺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   仙巖寺 는 湖南의 名山 曹溪山 에 자리잡은 韓國的인 절의 옛모습을 가장 잘 保存한 千年 古刹로 國內의 代表的인 名刹가운데 하나이다.  高麗선종 11년에 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이 이곳 대각암 (大覺庵)에서 수도하면서 산이름을 曹溪山 이라하고 寺院을 크게 중창함과 아울러 高麗佛敎의 여러 思想을 禪敎로 融合하여 겸수(兼修)토록 하였다. 일주문(一柱門)  降仙樓  를지나 仙巖寺  境內로 들어서는 門으로 단층맞배 지붕의 다포식 建物이다. 이 일주문 (一柱門)은 누문(樓門)인 강선루 (降仙樓)를 지나 처음 들어서게 되는 門으로 1719년에 세워진 것이다 曹溪文 創建 上樑文 에 의하면 원래의 建物 은 火災로 인해 없어지고 1540년에 다시 세워으나 丙子胡亂으로 被害를 당하였다가 ..
樂安 (邑城) 낙안읍성(樂安邑城)  이 邑城은 高麗後期에 倭寇의 잦은 侵入이 있어 朝鮮太祖 6 年 (1397)에 흙으로 쌓았다. 世宗實錄에 의하면 世宗 6 年 (1424)부터 여러해에 걸쳐 돌로 쌓아 城의 規模를 넓혔다고 한다. 邑城 全體 模樣은 장방향이며 길이는 1,410 m 이다. 東,西,南쪽 3 곳에는 城안의 큰 도로와 서로 連結門이 있고 敵의 攻擊을 效果的으로 防禦하기 위한 4 군 대 치성이 城밖으로 突出되어 있다. 城안에는 90 여 家口의 民家 들이 있는데 普通 1 家口당 2 ~ 3 개의 초가집과 마당,텃밭으로 構成 되어있다.  초가집들은 3 칸 程度의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農器具등을 保管하거나 외양간으로 兼用하는 헛간재와 재래 변소로 利用 하는 잿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現代化 물결애 따라 傳統的 ..
曹溪山松廣寺 조계산송광사(曹溪山松廣寺)  曹溪山 北西쪽 자락에 자리잡은 松廣寺는 우리나라 三寶寺刹의 하나인 승보종찰(僧寶宗刹)의 根本道場으로서 韓國佛敎와 歷史를 함께해온 宥恕 깊은 古刹이다. 松廣寺는 新羅末 혜린 (慧璘)先師에 의해 創建되어 松廣山 吉祥紗라 하였다. 高麗中期의 高僧 普照國師 지눌스님이 9년 동안의 重創佛寺를 通해 절의 規模를 擴張하고 定慧結使를 通하여 韓國 佛敎의 새로운 傳統을 確立한 根本道場으로 參禪을 重要視하는 宣宗寺刹로서 탈바꿈하게 되었다. 조계문(曹溪門) 조계문 (曹溪門)은 松廣寺의 첫 關門으로 일주문 (一柱門)이라고도 부른다. 이 一柱門은 新羅末에 처음 세운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으며 現在의 曹溪門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것으로 보인다. 階段 左右..
水落山 鶴林寺 수락산학림사(水落山鶴林寺)   水落山 鶴林寺는 거금(距金) 1300  年前 新羅 문무왕 (文武王) 671 년에 원효대사 (元曉大師)께서 創建하여 구후 고려공민왕 (高麗恭愍王)때는 나옹화상 (懦翁和尙)께서 일신중수하여 祈禱와 수도도량(修道道場)으로 그 혜명 (慧命)을 이어왔으나 不幸스럽게도  조선선조(朝鮮宣祖) 30년 西紀 1597년 丁酉再亂으로 燒失되었던 것을 인조 (仁祖) 2년 서기 1624년 무공화상 (無空和尙)께서 重修 하였다.  本 鶴林寺는 마치 학(鶴)이 알을 품고있는 학지포란 (鶴之抱卵) 형국이므로 鶴林寺라 명명 (命名)하였다. 특히 이곳은 나한도량 (羅漢道場)으로 有名하며 造山初期에 奉安한 藥師如來佛이 모셔져 이곳에서 祈禱를 奉行하면 모든所願이 成就된다는 靈驗한  도량(道場)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歷史博物館 서울역사박물관(서울歷史博物館)  2002년 5월 서울시 鍾路區 新門路 2가 慶熙宮址 內에 開館한 市立博物館이다. 1993년 12월 15일 '서울특별市立博物館'이란 이름으로 着工하여 1997년 12월 31일 竣工하였다. 2001년 9월 29일 '서울歷史博物館'으로 名稱을 變更하였으며, 2002년 5월 21일 開館하였다. 부지 7434㎡, 延面積 2만 130㎡ 3층 規模로 展示室과 視聽覺室·講堂·休憩室·뮤지엄숍·物品保管所·카페테리아 등의 施設을 갖추고 있다.  1층에는 企劃展示室과 寄贈遺物展示室, 뮤지엄 샵 등이 있으며, 3층에는 옛 서울과 서울사람들의 生活, 文化, 서울의 發達 등 서울을 4개의 主題로 나눠 구분 전시한다. 實際 遺物과 模型·디오라마 패널 등 多樣한 道具를 活用하여 展示의 效果를 높여준다...
芬皇寺 분황사(芬皇寺)  분황사(芬皇寺)는 慶尙北道 慶州市 救荒洞에 있는 寺刹이다. 大韓佛敎曹溪宗 所屬으로 제11교구 本寺인 佛國寺의 末寺로 編成되어 있다. 善德女王 3년인 634년에 세워진 것으로 《三國史記》에 記錄되어 있다. 佛敎가 크게 中興했던 新羅의 全盛期와 함께 한 寺刹이며 新羅 高僧인 元曉와 煮醬이 거쳐가기도 했다. 元曉는 이 곳에서 著述 活動을 하여 많은 著作을 남겼고, 元曉 死亡 後에 아들인 薛聰이 遺骸로 像을 만들어 이 곳에 奉安했다. 元曉의 뼈를 부수어 만들었다는 이 苦像은 高麗 時代까지 芬皇寺에 남아 있었다. 6세기에 먼저 지어진 皇龍寺와는 담을 맞대도록 바로 옆에 建築되어 皇龍寺址와 잇닿아 있다. 慶州 新羅 遺跡地의 中心部에 位置하여 瞻星臺와 內佛王陵이 바로 서쪽에, 善德女王과 眞平王의 陵..
鳳尾山神勒寺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신륵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7 여주목불우조(驪州牧佛宇條)에 의하면 신륵사는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벽사는 고려시대에 경내의 동쪽 언덕에 벽돌로 된 다층전탑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절이 대찰(大刹)이 된 것은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이 입적할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난 뒤부터이다. 1379년(우왕 5) 각신(覺信)·각주(覺珠) 등이 절의 북쪽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나옹의 초상화를 모신 선각진당(先覺眞堂)을 세우면서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