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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歷 史 物

樂安 (邑城)

(樂安邑城)

 

 

이 邑城은 高麗後期에 倭寇의 잦은 侵入이 있어 朝鮮太祖 6 年 (1397)에 흙으로 쌓았다. 世宗實錄에 의하면 世宗 6 年 (1424)부터 여러해에 걸쳐 돌로 쌓아 城의 規模를 넓혔다고 한다. 邑城 全體 模樣은 장방향이며 길이는 1,410 m 이다. 東,西,南쪽 3 곳에는 城안의 큰 도로와 서로 連結門이 있고 敵의 攻擊을 效果的으로 防禦하기 위한 4 군 대 치성이 城밖으로 突出되어 있다. 城안에는 90 여 家口의 民家 들이 있는데 普通 1 家口당 2 ~ 3 개의 초가집과 마당,텃밭으로 構成 되어있다.  초가집들은 3 칸 程度의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農器具등을 保管하거나 외양간으로 兼用하는 헛간재와 재래 변소로 利用 하는 잿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現代化 물결애 따라 傳統的 인 마을 모습이 變形되기 始作 하였고 城의 一部가 漸進的으로 崩壞 消失됨에 따라 1983년 史蹟 제302호로 指定하고 邑城의 綜合的인 保全事業을 始作하였다. 특히 百姓들이 살던 초가집들 가운데 保本價値가 가장 높은 9 동은 重要民俗資料로 指定하였고 일부 變形되거나 낡은 집 들은 保完,修理 하였다.官廳址에서는 官衙와 客舍 周邊의 담장,원대,三門등을 發掘 復元하고 城郭과 門樓등을 保完 하였다.

 

옥사지

(獄舍地)

 

옛날 고을내의 罪囚들을 收容하였던 建物 獄 址로서 다른 邑城과 다른점은 官衙와 멀리떨어진 곳에 위치한 점이 다름을 알수있다. 옥사 周邊의 蓮池는 죄수의 脫走를 막아주는 效果가 있었을 것으로 推測 할수가 있다.

 

옥사

(獄舍)

 

우리나라 監獄제는 멀리 부여에서 부터 비롯하였으며 그 名稱은 牢獄 호은 囹圄라 하였다. 또한 高麗末에는 地方에 設置된것을 市獄 이라 하기도 했다. 잠글쇠는 現代式 입니다.

 

罪人들을 실어 날으는 수레.

 

임경업장군비각

(林慶業將軍碑閣)

 

朝鮮 仁祖 6 年 (1628) 4月 1日  建立한 林慶業將軍의 善政碑는 仁祖 4 년 (1626) 林慶業將軍이 樂安郡守로 奉職하면서 善政을 베풀었을 뿐만아니라 丁卯胡亂때에도 큰 功을 세운것을 기리기 위해 軍民이 세운 것이다. 每年陰力 正月 보름에 祭祀를 지내고 있다.

 

노거수

 

이나무의 樹齡은 약 400 年으로 推定 한다. 

 

동 헌

(東軒)

 

이 建物은 朝鮮王祖때 地方官廳으로 監司, 兵使 , 水使,  守令등이 地方行政과 訟事를 다루던 곳으로 東쪽은 守令이 西족방은 管理들이 使用 하던것이다. 左側에 있는 建物은 內衙로서 守令의 안채로 使用 하던 建物로 內東軒 이라고도 한다. 當初 建立 年代나 頹落한 年代는 記錄에 없어 알수없으나 文憲을 參考하고 옛 터의 發掘調査와 專門家의 考證을 거쳐 1990년 復元 하였다.

 

내동헌

(內東軒)

 

建物은 內衙로서 守令의 안채로 使用하던 建物로 內東軒 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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