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歷 史 物

丹陽 (島潭三峰)

(島潭三峰)

 

 

景致가 아름다워 丹陽八景중 으뜸으로 손꼽이는 島潭三峰은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南漢江 한가운데 오뚝하니 서있는 石灰巖 峰우리이다. 傳說에 따르면 男便이 아들을 얻기 위해 妾을 들이자 心痛이난 아내가 새침하게 돌아앉은 모습 이라고 한다. 가운데 峰우리가 男便峰우리,北족이 妻峰, 南쪽이 妾峰인데 妻峰이 男便峰우리와 등을 지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한다. 朝鮮 開昌에 큰 功을 세운 鄭道傳은 自身의 號인 三峰을 이곳에서 취할 程度로 島潭의 景觀을 사랑했으며 李滉을 비롯한 金弘道,金正喜 등이 이곳 絶景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도담삼봉

(島潭三峰)

 

景致가 아름다워 丹陽八景중 으뜸으로 손꼽이는 島潭三峰은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南漢江 한가운데 오뚝하니 서있는 石灰巖 峰우리이다. 傳說에 따르면 男便이 아들을 얻기 위해 妾을 들이자 心痛이난 아내가 새침하게 돌아앉은 모습 이라고 한다. 가운데 峰우리가 男便峰우리,北족이 妻峰, 南쪽이 妾峰인데 妻峰이 男便峰우리와 등을 지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한다. 朝鮮 開昌에 큰 功을 세운 鄭道傳은 自身의 號인 三峰을 이곳에서 취할 程度로 島潭의 景觀을 사랑했으며 李滉을 비롯한 金弘道,金正喜 등이 이곳 絶景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삼도정

(三道亭)

 

男便峰은 三道亭이라고 불리는 六角亭子를 멋들어지게 쓰고 있어 더욱 그윽한 韻致를 자아낸다.

 

단양팔경제1경

(丹陽八景第1景)

 

丹陽八景 중에서도 제1경으로 손꼽히는 島潭三峰은 일찍이 朝鮮 開國公臣이었던 鄭道傳의 幼年 時節을 함께해 준 훌륭한 벗이자 退溪 李滉 先生의 詩心을 흔들어 놓은 名勝地이기도 하다. 원래 江原道 旌善郡의 三峰山이 洪水 때 떠내려와 지금의 島潭三峰이 되었다고 傳해지는데 여기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傳해진다. 당시 旌善郡에서는 丹陽까지 흘러들어온 三峰에 대한 稅金을 不當하게 要求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어린 小年이었던 鄭道傳이 技知를 發揮해“우리가 三峰을 旌善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被害를 보고 있어 아무 所用이 없는 峰우리에 稅金을 낼 理由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主張하여 稅金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鄭道傳은 號를 三峰이라고 지을 程度로 島潭三峰에 各別한 愛情을 보였다. 세 개의 커다란 峰우리가 丹陽까지 흘러들어온 깊은 事緣을 알 수 없지만 八道江山에 더욱 아름다운 風光을 더하고자 했던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단양팔경제1경

(丹陽八景第1景)

 

南漢江의 푸른 물결을 비단삼아 두르고 있는 島潭三峰의 모습이 더욱 神祕로우면서도 蠱惑的으로 보인다. 島潭三峰은 당당한 風采가 돋보이는 男便峰을 中心으로 아담한 模樣새의 妻峰과 妾峰이 양옆을 지키고 있는데 특히, 男便峰은 三道亭이라고 불리는 六角亭子를 멋들어지게 쓰고 있어 더욱 그윽한 韻致를 자아낸다.  島潭三峰에서는 風光을 感想하는 즐거움 말고도 또 하나 신 바람나는 볼거리가 있는데 바로 노래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音樂噴水臺이다. 누구라도 原하는 曲을 選擇해서 멋지게 노래를 부르면 거기에 맞춰 물줄기가 이리저리 춤을 춘다. 때로는 어느 詩人의 珠玉같은 詩 句節이 되어주고, 때로는 八道를 遊覽하는 墨客들의 그림이 되어 주기도하며, 마음의 餘裕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쉼표로 남는 島潭三峰. 그 恍忽한 風光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고 싶다.

 

 

三峰을 만난 退溪 李滉

한수아름다움을 적어 노래했다.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爲泊仙事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정도전

(鄭道傳)

 

鄭道傳 (1342년 ~ 1398년 8월 26일)은 高麗 末, 朝鮮初의 儒學者 이자 政治家이다. 자는 宗之. 號는 三峯, 시호는 文憲 이다. 아버지는 刑部尙書 염의先生 정운경이고 어머니는 우연의 딸 영천 우씨이다. 本官은 奉化 이다. 朝鮮 建國의 一等 功臣이자 最高 權力者였던 그는 朝鮮의 理念的 바탕을 마련하고 모든 體制를 整備 하였다. 信德王后 康씨 소생 방석 등을 世子로 推戴 하였다가 李芳遠과의 王位 다툼에 의한 1398년 제1차 王子의 亂 때 李芳遠에게 殺害되었다.

 

삼봉집

(三峯集)

 

高麗末 急進派 新進士大夫의 代表的인 三峯 鄭道傳의 文集이다. 新進官僚로서 屬望받던 鄭道傳은 李仁任등 친원파 大臣들에 反對하다 全羅道로 流配되었다. 풀려난 後에는 여러곳을 떠돌다 우왕 9 년 咸興에 있던 東北面道指揮者 李成桂를 찾아가 幕僚가 되었다. 이때에 因緣으로 李成桂의 側近이된 鄭道傳은 李成桂가 威化島 回軍으로 實權을 잡은 以後 舊勢力 除去와 土地制度 改革을 主導하여 朝鮮王朝 開創의 名分을 確保하는데 決定的 功을 세웠다.

 

 

'歷 史 旅 行 2 > 歷 史 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南原 (廣寒樓)  (0) 2010.12.17
樂安 (邑城)  (0) 2010.12.16
安東 (河回마을)  (0) 2010.08.07
金浦 (德浦鎭)  (0) 2010.06.19
雲峴宮(高宗.明成后家禮)2010  (0) 2010.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