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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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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土民俗館 향토민속관(鄕土民俗館)  日常生活用具. 生業道具.김영숙기증 遺物室 등이 있으며 漢藥房用具,漁業渡口,山間地域의 사냥道具 順으로 展示되어 있다. 또한 유네스코 世界無形文化財 인 江陵端午祭 와 江陵農樂이 재미있는  디오라마로 展示되어 있다. 江陵地域의 生活遺物들이 展示되어있는 鄕土民俗館은 지나간 追憶과 그 時代의 生活 體驗을 맛볼수 있는 場所이다. 떼배 隣近海岸에서 海草를 採取하거나 고기를 잡는데 使用하는 原始的인 形態의 배이다. 日程한 굵기의 通나무를 나무로 꿰어 結構 하였다. 배를 使用하지 않을때에는 解體시켜 말리고 다음해 봄에 다시 엮어서 使用하였다. 강원반(江原盤) 裳板의 네 귀는 부드럽게 돌려졌으며 변죽은 통판이다. 반각에는 네모,복숭아,둥근원,가위무늬등을 섰다. 가장큰 특징은 凹凸揷入式簇臺 이다. ..
五臺山月精寺 오대산월정사(五臺山月精寺)  五臺山의 中心寺刹인 月精寺는 地藏律士에 의해 新羅善德女王 643년 創建되었다. 中國 五臺山에서 文殊菩薩을 親見한 地藏律士는 歸國하여 文殊菩薩이 常住하는 五臺山에 들어와 草幕을 짓고 머물면서 文殊菩薩을 다시 親見 되기를 發源하며 修行 精進 하였다. 그 뒤로 神效居士와 梵日國師의 弟子였던 禪衣스님이 地藏律士가 草家를 지었던 터에 다시 庵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以後로 오랫동안 荒廢한채 남아있다가 다시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庵子를 짓고 살면서 비로서 절의 模樣새를 갖추게 되었고 차츰 規模가 커졌다. 지금의 月精寺는 탄허스님이 1964년 寂光殿을 重建하고 그 뒤로 만화스님과  현해스님 그리고 現住地  정념스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重建하여 이룩한 것이다. 일주문(一柱門) 절의 입구..
國立中央博物館 (檀園金弘道)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단원 김홍도 (檀園金弘道)  사람들의 日常生活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風俗 場面이 우리나라 繪畵에 처음으로 나타난것은 高句麗 무덤壁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一般的으로 風俗畵라고 하면 18세기 무렵에 本格的으로 流行한 그림을 말한다. 그 당시에 風俗畵는 人氣가가 매우 높아서 임금도 즐겨 感想하였다. 朝鮮時代의 代表的인 風俗畵家는 金弘道와 申潤福이다. 金弘道는 대장간,秋收光景,書堂,씨름등 삼의 이모저모를 익살스럽고 정겹게 表現하였다.  그의 風俗畵는 마치 우리가 그 現場에 함께있는 듯한 생생한 感動을 傳 해준다. 風俗畵는 당시 사람들의 옷차림 살아가는 모습등을 실감나게 描寫하여 宣祖들이 生活相을 엿볼수 있는 좋은 資料이다. 풍속화 (風俗畵) 김홍도(金弘道) 朝鮮英祖때의 ..
國立中央博物館 (外奎章閣儀軌)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145년 외규장각의궤의귀환(外奎章閣儀軌145年歸還)  ※ 의궤(儀軌)는 『"國家 典禮의 따라야할 基本"』 意味로 國家와 王室이 開催하는 行事의 全過程을 記錄하여 冊으로 編纂 하므로서 훗날 行事때 참고한 代表的인 國家 記錄物 이다.   1866년 프랑스는 天主敎 彈壓事件을 口實로 병인양요 (丙寅洋擾)를 일으키고 江華島를 占領 하였다. 그러나 朝鮮軍의 奮戰으로 手勢에 몰린 프랑스軍은 大量의 銀塊와 外奎章閣에 保管되어있던 儀軌를 비롯한 189종 340여冊 기타 資料등을 掠奪하고 江華島 長寧殿,外奎章閣등 모든 官野에 불을 지르고 退却 하였다. 過去속에 묻혀졌던 外奎章閣 儀軌는 在佛學者 박병선 博士에 의해 그 存在와 行方이 알려졌다. 以後 國內 學術團體와 政府가 中心이되어 儀軌의 ..
國立中央博物館 (中國)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중 국  (中國)  예기란 中國古代 貴族들이 宗廟와 宮室등에서  儀式을 擧行할때 使用한 道具이다. 使用者의 地位,身分,權力에 따라 嚴格한 制限을 두어 使用하였으며 玉,靑銅,木材등으로 만들어졌다. 玉禮器는 原始社會 末技 氏族社會의 出演 당시부터 使用되었다. 新石器時代에 生産性이 높아지면서 점차 精神的인 世界에 關心을 가지게 되어 呪術的인 意味를 띠는 벽,종,규,장 등을 製作 使用하였는데 이러한 玉禮器는 裝身具 役割도 兼하였다. 靑銅禮器는 下隊 기의 形成과 함께 出演 하였으며 上主時代 以後 政治權力의 象徵物이 되었다. 種類는 쥐기,食器,주기,수기,樂器 가 있다. 禮器에 의하면 身分階級에 따라 靑銅器의 賣場數量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 記錄은 허난성 산시성등지의 王 諸侯무덤에서 出..
國立中央博物館 (掛佛)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괘 불(掛 佛)  掛佛이란 野外에서 베풀어지는 法會에 걸어 使用한 부처 그림을 말한다. 큰 재 (齋)나 初八日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날에는 法堂 안에서 法會를 열지 못하고 法堂 밖에서 걸어 놓고 法會를 베푼것이다.  來蘇寺 掛佛은 1700년 6월에 그려진 영산회상도 (靈山會上圖)로 規模로는 높이 996 cm 폭 915 cm로 正四角形에 가깝다. 이 掛佛은 釋迦牟尼부처를 中心으로 左右對稱구도로 그려져 있는데 登場 人物 7명이 모두 적혀 있다. 이 圖像은 당시에 刊行된 靈山會 관련 儀式集 거불 (擧佛)면에 거명된 이름과 一致하여 圖像的으로 佛敎意識集과 密接한 關聯性을 보인다. 色彩는 빨간색과 녹색을 鑄造色으로 하고 푸른색 系統의 色彩를 多樣한 채도로 使用하여 畵面이 밝고 가..
國立中央博物館 (佛陀)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불 타(佛陀)  原始佛敎時代에는 부처라고 하면 곧 釋迦牟尼를 意味했고, 그의 弟子들에게 부처란 오직 釋迦牟尼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大乘佛敎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佛陀觀)에는 많은 變化가 있었다. 釋迦牟尼의 입멸(入滅) 후 그의 弟子들은 부처는 오랜 修行의 과보(果報)로 얻은 덕상(德相), 즉 身體的 特徵인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추고 精神的인 德性인 10력(十力)·4무외(四無畏)·3념주(三念住)·18불공법(十八不共法) 등을 成就했다고 보았다. 大乘佛敎의 初期까지 이러한 부처의 本體, 즉 불신(佛身)은 생신(生身)과 법신(法身)이 結合된 것이라고 보았다. 生神은 釋迦牟尼의 肉身을 말하는 것으로 색신(色身)이라고도 하며, 法身은 부처의 本性이자 그가 얻은 진리(法)..
國立中央博物館 (朝鮮白瓷)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조선백자(朝鮮白瓷) 朝鮮의 仁 과 禮 예를 담다. 白瓷항아리 朝鮮의 인(仁)과 예 (禮)를담다. 는 白瓷항아리를 主材로 朝鮮時代의 性格과 特旨을 照明하고자 磨鍊하였읍니다, 白瓷항아리는 單純한 貯藏容器 以上으로 거기에는 朝鮮時代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읍니다. 性理學을 社會秩序의 根本으로 삼은 朝鮮은 모든王室 儀禮를 法度와 節次에 따라試行 하였고 거기에 使用하는 그릇 또한 法式에 맞게 만들어 使用하였읍니다. 그 중 特殊한 쓰임새를 目的으로 만들어진 태 (胎) 항아리와 명기 (明器) 용준 (龍樽)은 朝鮮 王室의 陶瓷文化의 特性과 美意識을 알려주는 좋은資料 입니다. 이번展示를 통해 白瓷항아리의 造型的 아름다움 너머에 存在하는 歷史的 價値와 意味를 發見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