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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 (佛陀)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佛陀)

 

 

原始佛敎時代에는 부처라고 하면 곧 釋迦牟尼를 意味했고, 그의 弟子들에게 부처란 오직 釋迦牟尼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大乘佛敎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佛陀觀)에는 많은 變化가 있었다. 釋迦牟尼의 입멸(入滅) 후 그의 弟子들은 부처는 오랜 修行의 과보(果報)로 얻은 덕상(德相), 즉 身體的 特徵인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추고 精神的인 德性인 10력(十力)·4무외(四無畏)·3념주(三念住)·18불공법(十八不共法) 등을 成就했다고 보았다. 大乘佛敎의 初期까지 이러한 부처의 本體, 즉 불신(佛身)은 생신(生身)과 법신(法身)이 結合된 것이라고 보았다. 生神은 釋迦牟尼의 肉身을 말하는 것으로 색신(色身)이라고도 하며, 法身은 부처의 本性이자 그가 얻은 진리(法)를 말한다. 이와 같은 2신설(二身說)은 大乘佛敎의 敎理가 發展함에 따라 법신불(法身佛)·보신불(報身佛)·화신불(化身佛)의 3신설(三身說)로 전개되었다. 法身佛은 위의 法身思想이 發展된 것으로 恒久不變하는 眞理 그 自體로서의 부처를 말한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元來 이 像은 부처가 太子였을 때 人生의 無相함을 느끼고 出家하여, 衆生救濟라는 큰 뜻을 품고 苦惱하는 태자사유상(太子思惟像)에서 由來한 것이다. 印度에서는 3세기경 간다라와 마투라 彫刻에 나타나며, 佛座像의 양협시상에서 점차單獨像으로 發展한 것으로 보인다. 中國의 경우는 5세기 後半 윈강[雲岡] 石窟에서 이미 나타나지만 6세기 候班 北齊時代에 가장 盛行했으며, 銘文을 通해 주로 太子師有像으로 製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우리나라와 日本의 半跏思惟像은 彌勒菩薩로 推定하고있다. 釋迦牟尼 以後에 나타날 彌勒佛이 지금 彌勒菩薩로서 太子思惟像型의 姿勢를 취하는 것은 自然스러운 圖像이며, 新羅에서는 畵廊을 彌勒과 連結시켜 흔히 미륵보살반가상(彌勒菩薩半跏像)이라고 불렀다. 三國時代인 6세기 後半부터 遊行하기 始作하여 統一新羅 初期까지 많은 半跏思惟像이 金銅 또는 石造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당시의 信仰傾向을 斷片的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代表的인 豫로는 國立中央博物館에 있는 國寶 제78호와 國寶 제83호의 金銅彌勒菩薩半跏像을 비롯하여 奉化에서 出土된 半跏思惟像을 들 수 있다. 이 半跏思惟像은 日本에도 傳해져 아스카[飛鳥] 시대와 하쿠호[白鳳] 시대에 많이 製作되었는데, 특히 고우류 사[廣隆寺]에 있는 木造半跏思惟像은 國寶 제83호의 半跏思惟像과 거의 같은 形態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많은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진 점이나 당시 三國과 日本 간의 交流關契를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 製作된 상으로 推定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