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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曹溪山松廣寺

(曹溪山松廣寺)

 

 

曹溪山 北西쪽 자락에 자리잡은 松廣寺는 우리나라 三寶寺刹의 하나인 승보종찰(僧寶宗刹)의 根本道場으로서 韓國佛敎와 歷史를 함께해온 宥恕 깊은 古刹이다. 松廣寺는 新羅末 혜린 (慧璘)先師에 의해 創建되어 松廣山 吉祥紗라 하였다. 高麗中期의 高僧 普照國師 지눌스님이 9년 동안의 重創佛寺를 通해 절의 規模를 擴張하고 定慧結使를 通하여 韓國 佛敎의 새로운 傳統을 確立한 根本道場으로 參禪을 重要視하는 宣宗寺刹로서 탈바꿈하게 되었다.

 

조계문

(曹溪門)

 

조계문 (曹溪門)은 松廣寺의 첫 關門으로 일주문 (一柱門)이라고도 부른다. 이 一柱門은 新羅末에 처음 세운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으며 現在의 曹溪門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것으로 보인다. 階段 左右에 세운 돌짐승은 그形態가 모호하여 師子같기도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다. 一柱門을 들어서는것은 世俗의 煩惱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眞理의 世界로 들어선 것이니 可能한 行動과 마음가짐을 敬虔히 해야한다.

 

승보종찰

(僧寶宗刹)

 

佛敎에서는 귀하고 값진 세가지 보배 불(佛),법(法).승(僧)을 삼보(三寶)라한다. 韓國佛敎에서는 이 三寶를 象徵하는삼보사찰(三寶寺刹)이 있으니 梁山 通度寺,陜川 海印寺,順天 松廣寺 이다. 通度寺는 부처님의 辰申舍利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佛寶寺刹)海印寺는 八萬大藏經의 經板을모시고 있어 법보사찰(法寶寺刹) 松廣寺는 韓國佛敎의승맥 (僧脈)을 잇고있어 승보사찰 (僧寶寺刹)이라고한다. 韓國佛敎의 承脈을 잇는다는것은 普照國師의 定慧結使 根本道場으로서 또 普照國師를 포함한 16國師를 排出한 修行道場으로서 이를 이어 現代의 효봉,취봉,구산,일각선사등 많은 스님들의 修行으로서 韓國佛敎의 傳統을 면면히 繼承해 오고있기 때문이다.

 

승보전

(僧寶殿)

 

僧寶寺刹인 松廣寺를 象徵하는 僧寶殿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說法하시던 莊嚴한 모습을 再現하여 부처님과 10대 弟子, 16 羅漢을 비롯한 1250 名義 스님을 모신 全閣이다. 이 建物은 韓國戰爭 당시 燒失된 大雄殿을 松廣寺 7차 重創당시에 補元하면서 지어졌으나 松廣寺 8차重創때 現在의 大雄寶殿을 지으면서 지금의 位置로 옮긴것이다.

 

지장전

(地藏殿)

 

地藏殿은 地藏菩薩을 主佛로 모신 全閣으로 地藏菩薩의 左右에는 道明尊者와 武督鬼王이 섰고 그 左右로 시왕(十王)이 모셔져 있고 天道際와 49 재 靈歌天道등 各種際를 지내는곳이다. 地藏菩薩은 地獄에 떨어진 衆生들을 모두 救濟하겠다고 원을 세운 報祀로 삭발한 모습이다. 十王은 人間이 살아있을 당시 지은 罪의 敬重을 가리는 열분을 가리키며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四十九日 까지는 7 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 1년 (小祥) 2년 (大祥)때에 차례로 各王에게 가서 生前에 지은 善惡業의 審判을 받는다고 한다.

 

인욕선인

(忍慾仙人)

 

옛날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실때 많은 仙女들이 부처님을 恭敬하고 따르므로 이를 시기한 가리왕 (歌利王)이 부처님을 칼로 사지를자르고 온몸을 난도질을 하였을때 부처님께서는 그 苦痛을 참으시며 말씀하기를 " 나라는생각 남이란 생각 오래산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다 " 하시었다.

 

일월비비추

 

방울비비추비녀비비추라고도 함. 꽃은 6 ~ 7월에 자주빛 개화 열매는 10월에 익음.  한국,일본에 분포.

 

약사전

(藥師殿)

 

藥師殿은 松廣寺 경내 (境內)에서 가장 規模작은 법당(法堂)으로 衆生들의 모든 疾病을 고쳐주는 부처님인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建物의 形態로보아 朝鮮中期인 17세기 무렵 건립(建立)한 建物로 推定된다.

 

영산전

(靈山殿) 

 

이 建物은 영취산에 居住하며 法華經을 설하고 있는 釋迦牟尼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寶物 1368호로 指定되어 있는 喉佛撑인 靈神回翔의 說法하는 場面을 模寫한 영산대회탱 (靈山大會撑)과 釋迦牟尼부처님의 生涯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 (八相탱)이 있다. 지금의 建物은 조선 인조(仁祖) 17년 1639년에 創建 되었다.

 

성보박물관

(聖寶博物館)

 

聖堡博物館은 1997년 竣工 開館 하였으며 地上 2층 構造로 松廣寺에는 드문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으며 약 70여평의 展示室을 갖추고 있다. 現在 國寶 3점 寶物 19점등 총 6천여점의 佛敎文化財를 保有하고 있으며 韓國代表的인 專門佛敎 博物館이다.

 

비사리구시

 

절에서 국재를 모실때 寺刹로 모여든 大衆들을 위해 밥을 貯藏했던 木造容器이다.

 

관음전

(觀音殿)

 

觀音殿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하여 1903년 高宗皇帝의 聖壽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扁額을 내린 皇室 祈禱處로서 建築되었으나 1957년 옛 觀音殿을 解體하면서 觀世音菩薩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있다. 觀世音菩薩 左右에 그려진 太陽과 달이 高宗皇帝와 明成皇后를 象徵하고 있고 內部壁畵에 文臣들이 허리를 굽히고 佛壇을 向해서 있다. 또한 內外壁에는 花鳥圖,山水畵 등이 그려져 一般 寺刹의 壁畵와 뚜렷한 差異를 보이는 것이 松廣寺 觀音殿의 特徵이다. 

 

침계루

(枕溪樓)

 

溪谷을 베계삼은 樓閣이란 뜻의 이름의 松廣寺 의 枕溪樓 기둥아래로 시내물이 흐르고있다. 큰 붓에 먹을 듬뿍 찍어 世上의 온갖 티끌 쓸어버리듯 한 숨에 휘둘렀다. 침(枕)자를 쓰고 豪放한 起運을 이어 계(溪)자를 쓴다. 三水邊의 점 하나 먼저 찍고 붓을 살짝 들어 다음 점으로 連結하면서 큰 波濤가 몰아치듯 단숨에 계자를 써 내려가고는 숨을 멈추는 듯 마는 듯 마지막 점을 가다가 中間을 약간 휘어서 앉혔다. 마지막 루(樓)자 에서는 그야말로 면면부절(綿綿不絶) 휘휘 내둘러 획과 획 사이의 空間을 혹은 좁게 혹은 넓게 巧妙하게 어울려 가면서 마음따라 움직이는 붓 놀림이 방일하고 豪快하다. 특히 계집녀(女)의 마지막 획을 휘둘러 왼편 변의 나무목(木)까지 휘감아 끝 맺음을 한 것은 가히 놀랍다. 世上의 日常的 槪念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듯 破格的이며 豪放한 기운이 하늘까지 닿을 듯한 大梵 독특한 結句이다. 그러면서도 全體的으로 하나도 語塞하지 않는 章法에 놀라울 뿐이다.   [대동문화] 묵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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