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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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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峰山(洛山寺) 낙산사 (洛山寺) 길에서 길을 묻다 大韓佛敎曹溪宗 第3敎區 本社인 신흥사(神興寺)의 末寺로서 海邊에 位置하며 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힌다. 洛山은 산스크리트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由來한 말이며 觀世音菩薩이 恒常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觀音祈禱 道場의 하나인 洛山寺는 671년(文武王 11) 의상(義湘)이 創建했다고 傳한다. 洛山寺 創建 以後 이 절과 關聯된 〈三國遺事〉의 記錄으로는 원효(元曉), 조신(調信), 私掘産婆의 開山祖 범일(梵日)의 이야기 등이 傳하고 있다. 이 절은 858년 梵日에 의해 重建된 後 여러 차례 불타 重建이 거듭되었으나 6·25戰爭 때 完全히 燒失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復舊해서 원통보전(圓通寶殿)·종각(鐘閣)·일주문(一柱門)·선당(禪堂)·승..
白巖山 (古佛叢林白羊寺) 고불총림백양사 (古佛叢林白羊寺) 白羊寺는 1400여년전 百濟 武王 33년(632년)에 戾還 朝使가 創建한 考察로 湖南佛敎의 搖籃이다. 大韓佛敎 曹溪宗 제18敎區 本寺이며 5대 總淋 중 한 곳인 白羊寺는 白頭大簡이 南으로 치달려와 南原, 淳昌 一帶를 거쳐 長星 地域으로 뻗어 내려온 蘆嶺山脈의 白庵山 自落에 位置하고 있다. 創建 당시 白巖寺로 命名됐으며 高麗 德宗 3년(1034년) 中椽先師가 重創하면서 淨土寺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뒤에 朝鮮時代에 이르러 朝鮮 宣祖7년 換陽先師가 白羊寺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이어 1917넌 慢巖 大宗師가 重建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일주문 (一柱門) 一柱門은 산문(山門)이니 여기부터는 절 안이다. 俗世와 佛界의 境界 役割을 하는 象徵物로 一柱門을 넘어서는 瞬間부터 온갖 煩惱와 ..
內藏山 (內藏寺) 내장사 (內藏寺) 內藏寺는 636년 (百濟無王 37년) 영은조사(靈隱祖師)가 百濟人의 信仰的 願刹로서 약 50여동의 全閣을 세우고 영은사(靈隱寺)로 創建 하였다. 1098년 (高麗 肅宗 3년) 행안(幸安)先師가 全閣과 堂宇를 지으며 重創하였고 1557년 (朝鮮 明宗 12년) 犧牧(희목)大師가 靈隱寺 자리에 法堂과 當務를 새로 建立하여 重創하고 山眼에 無窮無盡한 寶物이 숨어 있다 하여 절 이름을 내장사(內藏寺)라 하였다. 일주문 (一柱門) 一柱門은 산문(山門)이니 여기부터는 절 안이다. 俗世와 佛戒의 境界 役割을 하는 象徵物로 一柱門을 넘어서는 瞬間부터 온갖 煩惱와 妄想 混亂한 生角을 여의고 깨달음의 一念으로 들어선다는 것을 意味한다.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 이 問安에 들어서면서 밖에서의 ..
冠岳山 三幕寺 삼막사 (三幕寺) 삼막사(三幕寺)는 지금부터 1300여년전 新羅 문무왕(文武王)에 원효(元曉)의상(義湘) 聖人이 이 庵子를 지어 精進한것이 三幕寺의 根本이며 三成山 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 後 도선국사 (道詵國師) 827 ~898가 佛像을 모셔 관음사(觀音寺)로 부르다 寺刹이 隆盛해지자 中國 소주의 三幕寺를 닮아 三幕寺로 부르다가 언제 부터인가 三幕으로 忠穆王 4년 懶翁大師와 印度僧侶 指孔이 이곳으로오니 仙風이 無學大師에 의하여 東쪽에 佛巖寺 西쪽에 津寬寺 北쪽에 僧伽寺와 秘寶 寺刹로 그 役割을 하였다. 以後 太宗때 大重唱이 있었으며 壬辰倭亂시 倭寇가 侵犯하여 放火하였으나 法堂建物이 타지않아 倭寇가 參會하고 떠났다고 傳해진다. 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경기도무형문화재 112호 이 塔은 三幕寺..
淸溪山 淸溪寺 청계사 (淸溪寺) 淸溪山에 자리잡은 이 절은 一周問과 天王門이 없는 特異한 新羅時代에 建立되어 高麗 忠烈王 10년 (1284)에 크게 중창(重創)되었다고 전한다. 朝鮮時代 燕山君이 都城내 있는 절을 閉鎖했을때 봉은사 (奉恩寺) 를 代身하여 禪宗의 本山으로 定해졌던 遺書 깊은 절이다. 現在 절의 모습은 1955년 以後 歷代 주지스님들의 重修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全體規模와 伽藍의 配置는 朝鮮時代에 틀이 잡힌것으로 보인다. 절안에는 極樂寶殿과 七星閣,鳳凰閣,三聖閣,寮舍등의 建物이 있으며 極樂寶殿은 二翼工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石製의 架工과 木材의 稚木이 精巧하며 華櫚한 丹靑이 돋보인다. 또한 지붕에는 鷲頭,龍頭,利水등 高級의 裝飾物을 올려 全體的으로 매우 華櫚하고 高級스럽게 지어진 建物임을 알수있다. 우담바라 ..
蓮華山玉泉寺 연화산옥천사 (蓮華山玉泉寺) 연화산(蓮華山)玉泉寺는 義湘大師가 당(唐)나라 지엄법사 (智儼法師)에게서 華嚴學을 工夫하고 돌아와 華嚴을 講論하기위해 670년(新羅文武王10)에 創建한 절이다. 절의 이름은 大雄殿 左側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 샘 (玉泉)이 있다는 것에서 由來하였다. 지금은 비록 하동 쌍계사(雙磎寺)의 말사(末寺) 이지만 당시에는 화엄종찰(華嚴宗刹)로 指定된 華嚴 10대 寺刹 중에 하나였다. 천왕문 (天王門) 寺刹의 門. 一周門 다음에 있다. 一周門을 지나 깨달음을 渴求하며 길을 가는 求道者에게 다다라야할 부처의 世界는 눈에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가야할 길만이 앞에 놓인 狀況 앞에서 求道者들은 쉽게 葛藤을 겪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천왕문(天王門)이다..
掛榜山燈明洛迦寺 괘방산등명낙가사 (掛榜山燈明洛迦寺) 燈明洛迦寺는 新羅 善德女王 때의 자장律師가 北쪽의 高句麗와 東쪽의 倭寇가 侵犯하여 邊防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부처님의 舍利를 모시고 절을 創建하였다고 傳해진다. 創建 당시 이름은 수다사 (水多寺)였고 新羅 末期 병화(兵火)로 燒失되어 高麗 初期에 重創하여 이름을 등명사 (燈明寺)로 改稱하였다. 그 後 朝鮮 中期에 다시 폐사(廢寺)되었다가 1956년 경덕 (景德) 스님에 의해 重創되었다. 그 뒤 경덕 (景德) 스님은 1977년 영산전(靈山殿)을 建立하였고, 1982년에 主旨로 부임한 청우 (淸宇) 스님이 梵鍾閣, 三城閣, 各種 修練法會를 할 수 있는 大型 妖邪채, 極樂殿, 藥師殿을 建立하였다. 괘방산등명낙가사 (掛榜山燈明洛伽寺) 燈明洛迦寺는 ..
靈鷲山通度寺 영축산통도사 (靈鷲山通度寺) 通度寺는 부처님의 眞身舍利와 금란가사(金欄袈裟-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삼보 가운데 가장 으뜸인 佛寶寺刹의 位置를 갖게 되었다. 通度寺를 韓國佛敎의 으뜸인 불지종찰(佛之宗刹)이요,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하는 理由가 여기에 있다. 특히 釋迦牟尼 부처님의 眞身舍利를 모신 舍利塔이 있는 제1寂滅寶宮이기에 大雄殿에는 佛像이 없는 寺刹로 有名하다. 通度寺 大雄殿은 實弟로 부처님이 살아 숨 쉬고 계시는 空間이기 때문에 다른 寺刹의 大雄殿과는 다른 宗敎的 象徵性을 갖게 된다. 따라서 정자형(丁字形) 法堂 四面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데, 東쪽은 대웅전(大雄殿), 西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南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北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