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60) 썸네일형 리스트형 掛榜山燈明洛迦寺 괘방산등명낙가사(掛榜山燈明洛迦寺) 燈明洛迦寺는 新羅 善德女王 때의 자장律師가 北쪽의 高句麗와 東쪽의 倭寇가 侵犯하여 邊防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부처님의 舍利를 모시고 절을 創建하였다고 傳해진다. 創建 당시 이름은 수다사 (水多寺)였고 新羅 末期 병화(兵火)로 燒失되어 高麗 初期에 重創하여 이름을 등명사 (燈明寺)로 改稱하였다. 그 後 朝鮮 中期에 다시 폐사(廢寺)되었다가 1956년 경덕 (景德) 스님에 의해 重創되었다. 그 뒤 경덕 (景德) 스님은 1977년 영산전(靈山殿)을 建立하였고, 1982년에 主旨로 부임한 청우 (淸宇) 스님이 梵鍾閣, 三城閣, 各種 修練法會를 할 수 있는 大型 妖邪채, 極樂殿, 藥師殿을 建立하였다. 괘방산등명낙가사(掛榜山燈明洛伽寺) 燈明洛迦寺는.. 靈鷲山通度寺 영축산통도사 (靈鷲山通度寺) 通度寺는 부처님의 眞身舍利와 금란가사(金欄袈裟-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삼보 가운데 가장 으뜸인 佛寶寺刹의 位置를 갖게 되었다. 通度寺를 韓國佛敎의 으뜸인 불지종찰(佛之宗刹)이요,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하는 理由가 여기에 있다. 특히 釋迦牟尼 부처님의 眞身舍利를 모신 舍利塔이 있는 제1寂滅寶宮이기에 大雄殿에는 佛像이 없는 寺刹로 有名하다. 通度寺 大雄殿은 實弟로 부처님이 살아 숨 쉬고 계시는 空間이기 때문에 다른 寺刹의 大雄殿과는 다른 宗敎的 象徵性을 갖게 된다. 따라서 정자형(丁字形) 法堂 四面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데, 東쪽은 대웅전(大雄殿), 西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南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北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 雪嶽山新興寺 설악산신흥사(雪嶽山新興寺) 이 伽藍은 신라(新羅) 眞德女王 6년(서기652)에 慈藏律師가 創建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이 이름은 佛敎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意味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敎化 할 代償的 國土라는 意味와 政治的 形態의 國家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처음 香城寺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存續하다가 孝昭王 7년(西紀 698)에 火災로 燒失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香城塔寺이 現在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香城寺의 歷史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반달가슴곰 天然記念物 제 329호로 指定 곰과의 하나 몸빛은 光澤이 있는 검은색이며, 앞가슴에 반달 .. 五臺山月精寺 오대산월정사(五臺山月精寺) 五臺山의 中心寺刹인 月精寺는 地藏律士에 의해 新羅善德女王 643년 創建되었다. 中國 五臺山에서 文殊菩薩을 親見한 地藏律士는 歸國하여 文殊菩薩이 常住하는 五臺山에 들어와 草幕을 짓고 머물면서 文殊菩薩을 다시 親見 되기를 發源하며 修行 精進 하였다. 그 뒤로 神效居士와 梵日國師의 弟子였던 禪衣스님이 地藏律士가 草家를 지었던 터에 다시 庵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以後로 오랫동안 荒廢한채 남아있다가 다시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庵子를 짓고 살면서 비로서 절의 模樣새를 갖추게 되었고 차츰 規模가 커졌다. 지금의 月精寺는 탄허스님이 1964년 寂光殿을 重建하고 그 뒤로 만화스님과 현해스님 그리고 現住地 정념스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重建하여 이룩한 것이다. 일주문(一柱門) 절의 입구.. 長芝山龍巖寺 장지산용암사(長芝山龍巖寺) 이 佛像은 天然岩盤을 몸체로 삼아 그 위에 목,머리,갓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놓은 2구 (軀)의 巨大한 佛像이다 왼쪽의 佛像은 원형의 갓을 쓰고있고 (圓笠佛)오른쪽의 佛像은 四角形의 갓을 쓰고 (方笠佛)있는데 傳하는 말에 따르면 각각 남상 (男像)과 여상 (女像)이라고 傳한다. 巨大한 自然石을 그대로 利用해 威壓感이 느껴지나 身體 각 부위의 彫刻 修法이 뛰어난 作品이다. 全體 높이가 17.4 m 로 우리나라 雙石佛立像中 最高의 規模이며 彫刻 修法에 있어 安東 磨崖石佛의 特徵을 잘보여주고 있다. 高麗 宣宗과 關聯한 기자전설 (祇子傳說)이 傳해지고 있어 지금도 傳說과 關聯하여 많은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동자상과칠층석탑에관한 유래童子像七層石塔由來 口傳에 의하면 故 李.. 智異山大華嚴寺 지리산대화엄사(智異山大華嚴寺) 華嚴寺는 544년에 연기 (緣起) 조사께서 創建 하였읍니다. 緣起조사는 華嚴經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智異山 자락 황두골에 全閣 두 채의 작은절을 지었읍니다. 절의 이름을 華嚴經에서 따서 華嚴寺라 했읍니다. 華嚴經은 부처님의 世界,깨달음의 世界를 記錄한 慶典이니 華嚴寺가 곧 부처님의 世界이고 깨달음의 聖地라는 뜻일 것입니다. 新羅가 三國統一을 이룬後 에는 義湘大師께서 華嚴寺를 華嚴宗의 願刹로 삼아 머물고 新羅 景德王 때 이르러 8가람 81庵子의 大寺刹이 되었읍니다. 이 처럼 華嚴寺는 桎梏의 歷史 앞에 비켜서지 않았읍니다 때때로 復興쇄락의 時期가 反復되었지만 智異山의 은근함을 닮은 佛法의 脈을 이어오고 있읍니다. 보제루(普濟樓) 普濟樓는 有形文化財 제 49호로 指定.. 曹溪山仙巖寺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 仙巖寺 는 湖南의 名山 曹溪山 에 자리잡은 韓國的인 절의 옛모습을 가장 잘 保存한 千年 古刹로 國內의 代表的인 名刹가운데 하나이다. 高麗선종 11년에 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이 이곳 대각암 (大覺庵)에서 수도하면서 산이름을 曹溪山 이라하고 寺院을 크게 중창함과 아울러 高麗佛敎의 여러 思想을 禪敎로 融合하여 겸수(兼修)토록 하였다. 일주문(一柱門) 降仙樓 를지나 仙巖寺 境內로 들어서는 門으로 단층맞배 지붕의 다포식 建物이다. 이 일주문 (一柱門)은 누문(樓門)인 강선루 (降仙樓)를 지나 처음 들어서게 되는 門으로 1719년에 세워진 것이다 曹溪文 創建 上樑文 에 의하면 원래의 建物 은 火災로 인해 없어지고 1540년에 다시 세워으나 丙子胡亂으로 被害를 당하였다가 .. 曹溪山松廣寺 조계산송광사(曹溪山松廣寺) 曹溪山 北西쪽 자락에 자리잡은 松廣寺는 우리나라 三寶寺刹의 하나인 승보종찰(僧寶宗刹)의 根本道場으로서 韓國佛敎와 歷史를 함께해온 宥恕 깊은 古刹이다. 松廣寺는 新羅末 혜린 (慧璘)先師에 의해 創建되어 松廣山 吉祥紗라 하였다. 高麗中期의 高僧 普照國師 지눌스님이 9년 동안의 重創佛寺를 通해 절의 規模를 擴張하고 定慧結使를 通하여 韓國 佛敎의 새로운 傳統을 確立한 根本道場으로 參禪을 重要視하는 宣宗寺刹로서 탈바꿈하게 되었다. 조계문(曹溪門) 조계문 (曹溪門)은 松廣寺의 첫 關門으로 일주문 (一柱門)이라고도 부른다. 이 一柱門은 新羅末에 처음 세운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으며 現在의 曹溪門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것으로 보인다. 階段 左右..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