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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掛榜山燈明洛迦寺

(掛榜山燈明洛迦寺)

 

 

燈明洛迦寺는 新羅 善德女王 때의 자장律師가 北쪽의 高句麗와 東쪽의 倭寇가 侵犯하여 邊防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부처님의 舍利를 모시고 절을 創建하였다고 傳해진다. 創建 당시 이름은 수다사 (水多寺)였고 新羅 末期 병화(兵火)로 燒失되어 高麗 初期에 重創하여 이름을 등명사 (燈明寺)로 改稱하였다. 그 後 朝鮮 中期에 다시 폐사(廢寺)되었다가 1956년  경덕 (景德) 스님에 의해 重創되었다. 그 뒤 경덕 (景德)  스님은 1977년 영산전(靈山殿)을 建立하였고, 1982년에 主旨로 부임한 청우 (淸宇) 스님이 梵鍾閣, 三城閣, 各種 修練法會를 할 수 있는 大型 妖邪채, 極樂殿, 藥師殿을 建立하였다.
 

 

 

괘방산등명낙가사

(掛榜山燈明洛伽寺)

 

燈明洛迦寺는 新羅 善德女王 때의 자장律師가 北쪽의 高句麗와 東쪽의 倭寇가 侵犯하여 邊防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부처님의 舍利를 모시고 절을 創建하였다고 傳해진다. 創建 당시 이름은 수다사 (水多寺)였고 新羅 末期 병화(兵火)로 燒失되어 高麗 初期에 重創하여 이름을 등명사 (燈明寺)로 改稱하였다. 그 後 朝鮮 中期에 다시 폐사(廢寺)되었다가 1956년 경덕 (景德) 스님에 의해 重創되었다. 그 뒤 경덕 (景德) 스님은 1977년 영산전(靈山殿)을 建立하였고, 1982년에 主旨로 부임한 청우 (淸宇) 스님이 梵鍾閣, 三城閣, 各種 修練法會를 할 수 있는 大型 妖邪채, 極樂殿, 藥師殿을 建立하였다.

 

 

오층석탑

(五層石塔)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江原道 有形文化財 37호로 指定되어 있는 五層石塔이 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創建 당시인 善德女王 때 세워진 塔이라고 하나 樣式상으로 보면 高麗 初期 塔으로 推定된다. 2단으로 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연꽃 잎을 彫刻한 四角形의 복련석(覆蓮石)을 덮고, 그 위에 아무런 彫刻이 없는 네모난 돌을 올려놓았으며, 그 위에 다시 四角形의 앙련석(仰蓮石)을 올려놓았다.

 

 

영산전

(靈山殿)

 

靈山殿 中央에는 釋迦牟尼佛과 提和竭羅菩薩· 彌勒菩薩을 奉安하고 그 主位에 靑銅釋迦如來坐像과 觀世音菩薩立像, 地藏菩薩立像이 있다.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

 

中央에는 釋迦牟尼佛과 提和竭羅菩薩·彌勒菩薩을 奉安하고 그 主位에 靑銅釋迦如來坐像과 觀世音菩薩立像, 地藏菩薩立像이 있다.

 

 

자장율사

(慈藏律師)

 

通度寺를 創建한 慈藏律師는 新羅 진골 (眞骨)出身으로 俗名은 선종랑 (善宗郞)이며 法號를 자장 (慈藏)이라 했다. 嚴格한 개율로서 修行에 專念 하던 慈藏律師는 636년 唐나라로 儒學을 떠나 文殊菩薩 주처인 五臺山에 머물렀다. 여기서 文殊菩薩의 現身을 만나 釋迦牟尼 眞身舍利의 가사등을 받은 慈藏律師는 643년 善德女王의 要請으로 歸國 하였다. 歸國後 新羅 最高 僧職인 大國統에 任命된 慈藏律師는 大大的인 佛敎 整備에 나서 佛敎를 統治 理念으로서 國力의 伸張과 國論의 統一을 꾀하고 佛敎의 土着化에 公憲하였다.  이러한 慈藏律師의 思想的 求心点은 바로 三國統一의 念願이 담긴 皇龍寺 9층 木塔과 戒律根本道場인 通度寺 金剛戒壇에 眞身舍利를 나누어 奉安함으로써 新羅 社會와 모든 佛敎勢力을 糾合할수 있었다. 豫 로부터 通度寺와 新羅最大의 巨刹 皇龍寺를 兄弟 寺刹이라 하는 理由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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