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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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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月山普提庵 남해보리암 (南海菩提庵) 菩提庵은 누가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다. 朝鮮 肅宗 20년(1694)에 쓴 『菩提庵重修記』에 따르면 普照國師가 세운 뒤 丁酉再亂으로 불탄 것을 宣祖 40년(1607)에 僧侶 新撰이 고쳐 지었고, 孝宗 1년(1650) 스님들이 힘을 모아 다시 지었다고 한다. 菩提庵이라고도 하는 이 庵子는 1983년 住持 성묵스님이 現 法堂을 復元하였다. 法堂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粧飾하여 만든 공포는 새 부리 模樣으로 粧飾한 익공 樣式으로 꾸몄다. 이곳은 壬辰倭亂 때 充壯公 金德齡 將軍의 婦人 흥양 李氏가 殉節한 곳이기도 한데 壬辰倭亂 당시 흥양 李氏는 倭賊에게 쫓기자, 絶壁에서 몸을 던져 殉節하였다. ..
三神山雙磎寺 삼신산쌍계사 (三神山雙磎寺) 新羅 聖德王 23년(724) 義湘의 弟子 삼법이 創建하였고 이 후 文聖王 2년(840) 眞鑑禪師가 重創하여 大伽藍을 이루었으며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仁祖 10년(1632) 벽암스님에 의해 重建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첫 關門인 一周門을 지나면 金剛門 天王門 八榮樓 大雄殿 三成閣이 축을 이루며 차려로 配置되어 있다. 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층단이 繼續되고 中間中間에 다른 建物들이 非對稱的으로 들어서 있다. 八榮樓 앞 에는 雙磎寺 9층石塔이 있고 大雄殿의 왼편에는 冥府殿이 位置한다. 대비 삼법 두 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 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와서 '지리산 곡설리 갈화처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범의 인도를 받아 이곳에 절을 지어 조사를 奉安하였다 한다...
泰華山光德寺 태화산광덕사 (泰華山光德寺) 大韓佛敎 曹溪宗 제6敎區 本寺인 마곡사(麻谷寺)의 末寺이다. 麻谷寺는 그 산너머 南쪽에 자리한다. 652년(眞德女王 6) 자장(慈藏)이 唐나라에서 가져온 불치(佛齒) 1과와 사리 10과, 금은자(金銀字) 《華嚴經》 《法華經》 《은중경(恩重經)》 각 2부 등을 僧侶 진산(珍山)에게 주어 새 도량(道場)을 연 것이 그 始作이라고 한다. 1464년(世祖 10) 世祖가 이 곳에 擧動하였을 때 한계회(韓繼禧)에게 命하여 전지(傳旨)를 써 내렸는데, 위전(位田)를 바치고 각종 요역(徭役)을 免除한다는 內用이었다. 그 뒤 28방(房)에 附屬庵子가 약 89개, 9개의금당(金堂), 80칸의 만장각(萬藏閣), 3층으로 된 천불전(千佛殿)은 佛敎徒의 구경거리가 될 程度로 繁昌하여, 京畿 ·忠淸 ..
太祖山覺願寺 태조산각원사 (太祖山覺願寺) 忠淸南道 天安市 안서동에 자리한 覺願寺는 主旨스님이신 경해법인(境海法印) 큰 스님의 願力으로 1975년 創建되어 大韓佛敎曹溪宗 제1敎區에 該當하는 直轄敎區에 登錄된 사찰(寺刹)이다.경해법인 큰스님께서는 오랫동안 敎學과 수행정진과정(修行精進科定)에서 각연 김영조(覺然 金永祚 부인 정정자)거사의 施主로 1977년5월9일 南北統一 紀元을 위해 청동대불(阿彌陀佛)을 太祖山 中峯에 봉안(奉安)하고, 아래의 大作佛寺를 통해 覺願寺는 太祖山의 風光과 僧伽의 調和속에 祈禱道場으로서그 연륜(年輪)을 더해가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를 탐구(探究)하고 修行精進과 불교대학(佛敎大學) 運營을 通해 信徒의 체계적 (體係的)敎育과 社會奉仕活動을 통한 포교(布敎)등 佛敎문화창..
伽倻山海印寺 해인사 (海印寺) 海印寺는 新羅時代에 그 도도한 華嚴宗의 精神的인 基盤을 擴充하고 宣揚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伽藍이다. 華嚴宗의 근본 慶典인 華嚴經은 4세기 무렵에 中央아시아에서 成立된 代僧 慶典의 最高峯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東洋文化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慶典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句節이 나오는데, 海印寺 이름은 바로 이 '海印三昧'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사 (海印寺) 新羅伽倻山海印寺선안주원벽기 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伽倻山海印寺固積〉에 의하면, 신림(神林)의 弟子인 순응(順應)이 766년(惠空왕 2) 中國에 건너가서 法을 傳授받고 歸國한 뒤 802년(애장왕 3) 伽倻山에 海印寺를 創建하다가 갑자기 죽자 이정(利貞)이 그의..
頂竹山傳燈寺 전등사 (傳燈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교구 本寺인 曹溪寺의 末寺이다. 중창기문(重創記文)에는 381년(小獸林王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創建한 절로, 1266년(원종 7)에 重創된 이래 3, 4차례의 重修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記錄에 의하면 現存하는 우리나라 寺刹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確實하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創建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1282년(忠烈王 8) 忠烈王의 비인 정화公主가 僧侶 인기(印奇)를 中國 宋나라에 보내 大藏經을 가져오게 하고, 이 大藏經과 함께 옥등(玉燈)을 이 절에 獻納한 後로 傳燈寺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現在 이 옥등은 傳하지 않고 있다. 1337(忠肅王 6), 1341년(忠惠王 2)에 각각 重修되었다고 하나 당시 傳燈寺의 歷史..
俗離山法住寺 법주사 (法住寺) 553년(眞興王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創建했으며, 法住寺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佛經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說話에서 由來된 것이다. 776년(惠恭王 12)에 金山寺를 創建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重創했고 그의 弟子 영심(永深) 등에 의해 彌勒信仰 의 衆心道場이 되었다. 그후 法住寺는 王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重修를 거쳐 60여 개의 建物과 70여 개의 庵子를 갖춘 大刹이 되었다. 高麗 肅宗이 1101년 그의 아우 大覺國師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僧侶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規模를 짐작할 수 있으며, 朝鮮時代에 太祖와 世祖도 이곳에서 法會를 열었다고 傳한다. 壬辰倭亂으로 모든 全閣이 消失된 것을 1624년(仁祖 ..
飛龍山長安寺 비룡산장안사 (飛龍山長安寺) 天上의 定氣 서린 곳에 비룡(飛龍)이 꿈틀거리는 長安寺. 千年 新羅에 鶴이 춤을 추듯 뭇 峰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飛龍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頂上 가까이에 長安寺가 있다. 新羅가 三國을 統一한 뒤 國泰民安을 念願하여 全國 세 곳의 名山에 長安寺를 세웠는데, 金剛山 長安寺, 梁山 長安寺, 그리고 國土의 中間인 이곳 龍宮面 龍宮理 飛龍山 長安寺가 그 하나이다. 1300여년의 오랜 歷史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古刹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의 장안사(長安寺)는 허물어질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로 全國을 行脚하던 중 이곳 長安寺의 빼어난 山勢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