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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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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凰山浮石寺 부석사 (浮石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6교구 本社인 고운사(孤雲寺)의 末寺이다. 〈三國史記〉·〈三國遺事〉에 의하면 義湘大師가 新羅 文武王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創建하고 華嚴宗을 널리 傳했다고 한다.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義湘과 선묘, 浮石寺 創建에 관한 說話가 자세히 적혀 있다. 高麗時代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浮石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義湘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華嚴宗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名稱에서 由來된 것이다. 義湘 以後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新羅 武烈王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高僧들이 排出되었다. 晩年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大藏經을 印刷했는데..
德崇山修德寺 덕숭산수덕사 (德崇山修德寺) 文獻에 나타난 百濟 寺刹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寺) 등 12개 寺刹이 傳하지만 修德寺만이 唯一하게 오늘날까지 그 命脈을 維持하고 있다. 百濟寺刹인 修德寺의 創建에 관한 正確한 文獻 記錄은 現在 남아있지 않으나, 學界에서는 代替的으로 百濟 위덕왕(威德王 ,554~597) 在位시에 創建된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또한 修德寺 境內 옛 절터에서 發見된 百濟瓦當은 百濟時代 창건설을 傍證할 수 있는 資料이다. 文獻에 修德寺가 最初로 登場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百濟의 高僧 혜현(惠現)이 修德寺에서 主席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
雪岳山洛山寺 낙산사 (洛山寺) 大韓佛敎曹溪宗 제3敎區 本社인 신흥사(神興寺)의 末寺로서 海邊에 位置하며 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힌다. 洛山은 산스크리트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由來한 말이며 觀世音菩薩이 항상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觀音祈禱 道場의 하나인 洛山寺는 671년(文武王 11) 의상(義湘)이 創建했다고 傳한다. 洛山寺 創建 以後 이 절과 關聯된 〈三國遺事〉의 記錄으로는 원효(元曉), 조신(調信), 사굴산파의 개산조 범일(梵日)의 이야기 등이 傳하고 있다. 이 절은 858년 범일에 의해 重建된 後 여러 차례 불타 重建이 거듭되었으나 6·25戰爭 때 完全히 消失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復舊해서 원통보전(圓通寶殿)·종각(鐘閣)·일주문(一柱門)·선당(禪堂)·승당(僧堂)·객실(客..
馬耳山塔寺 진안마이산 (馬耳山) 마이산(馬耳山)은 암마이봉(686.0m)과 숫마이봉(679.9m)으로 構成되어 있으며 두 山봉우리가 서 있는 模樣이 말의 귀 모양을 하고 있어 馬耳山으로 命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馬耳山 산봉과 유사한 역암으로 된 塔 모양 또는 돔상의 地形은 馬耳山 東南쪽 약 2㎞ 地点에까지 10여 個所가 分布하는데 광대봉, 마두봉, 관암봉, 비룡대, 나옹암 등이 줄지어 있다. 馬耳山은 白堊紀의 馬耳山 역암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산체는 탑처럼 우뚝 솟은 模樣을 이루는 것이 特徵이다. 그리고 그의 風化 表面에는 수 많은 풍화혈(tafoni)이 發達하고 있어 學術的인 價値도 매우 크며, 빙정의 쐐기작용에 의하여 生成된 것이다. 한편 馬耳山 부근에는 鎭安 平地理의 이팝나무(天然記念物 제214호)와 馬耳..
南漢山惺佛寺 남한산성불사 (南漢山) 南漢山 기슭에 위치한 曹溪宗 成佛寺(佛寺·주지 학명 스님)는 제9교구本寺 桐華寺의 末寺로, 代表的인 祈禱處이자 나눔布敎 道場이다.成佛寺는 과거 丙子胡亂 당시 南漢山城을 지키다 죽어간 무수한 軍事들의 넋을 기리고 極樂往生을 祈願하고자, 1976년 5월1일 現 住持 스님인 學名 스님이 원력을 내어 創建했다. 이 때문인지 一周門을 들어선 瞬間부터 남다른 祈禱道場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음을 斟酌할 수 있다. 大雄殿과 앞마당의 雙塔을 비롯해 藥師殿과 彌勒殿, 冥府殿 등 6개의 前脚과 藥師摩耶佛 등 곳곳에 祈禱處인 까닭이다. 지난해 10월에는 大雄殿 뒤편 藥師磨崖佛 옆 공터에 大規模 瓦佛을 造成, 如法한 氣道處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법보신문)
淸凉山淸凉寺 청량사 (淸凉寺) 淸凉寺는 新羅 文武王 3년(663)에元曉大師가 創建했다고 傳 해지며 松廣寺 16國師의 끝 스님인 法匠 孤峯先師(1351-1426)에 의해 重創된 千年 古刹이다.創建 당시 승당등 33개의 附屬 建物을 갖추었던 大寺刹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庵子 에서는 스님들의 讀經소리가 淸凉山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또한 自然景觀이 秀麗한 淸凉山에는 한때는 新羅의 古刹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등 대소 27개소의 庵子가 있어서 당시 新羅 佛敎의 搖籃을 形成하기도 하였다.하지만 朝鮮時代 佛敎를 抑壓하는 朱子學者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現在는 淸凉寺와 附屬建物인 응진전만이 남아있다.淸凉寺의 法堂인 琉璃寶殿은 創建年代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建築物로 인하여 慶尙北道 有形文化財 제47호로 指定 되었..
感恩寺址三層石塔 감은사지삼층석탑 (感恩寺址三層石塔) 感恩寺址에 있는 統一新羅時代 3층石塔 2기. 國寶 제112호. 높이 13.4m. 동서로 建立된 두 塔의 規模와 形式은 同一하며, 現存하는 石塔 중 거탑(巨塔)에 속한다. 基壇은 上下 이중으로 되어 있고 地臺石·重石·甲石은 12장의 石材로 이루어져 있으며, 下層基壇에는 3개, 上層基壇에는 2개의 탱주(撑柱)를 세웠다. 塔身部의 1층은 우주(隅柱)와 면석(面石)을 다른 돌로, 2층은 각 면을 하나의 돌로, 3층은 전체를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屋蓋石은 비교적 넓고, 落水面 部分과 받침부분이 각각 4장의 돌로 되어 있으며, 상륜은 없어졌고 그것을 끼웠던 3.5m의 철간만이 남아 있다. 上下基壇과 塔身部에 宇宙와 탱주를 表現한 것, 落水面이 경사를 이룬 것 등에서 木造建築樣式..
海東龍宮寺 해동용궁사 (海東龍宮寺) 淸山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貪慾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