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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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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立中央博物館 (統一新羅)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통일신라(統一新羅)    寺寺星張 塔塔䧹行 절들이 별처럼 많았고 탑들이 기러기 처럼 늘어서 있다.  7世紀 中葉 百濟와 高句麗가 滅亡하고 羅唐戰爭을 거치면서 韓半島와 周邊地域의 國際關係는 大同江 ~ 元山만 以南의 統一新羅와 北쪽의 渤海가 共存하는 모습으로 變化했다. 이렇게 成立된 南北國時代는 唐을 中心으로 統一新羅와 渤海,日本이 共存하는 比較的 安定된 國際情勢가 維持된때였다. 統一新羅는 三國을 統一한 後 넓어진 領土를 다스리기 위해 여러가지 制度를 整備 했다. 우선 새로운 國家運營을 위해 官僚制를 整備하여 王敬人과 地方人을 差別하지 않고 官等을 주는 方式을 採擇하고 율렬에 入閣한 强力한 王權 中心의 中央 執權國家를 樹立해 갔다. 行政九譯은 地方을 9주로 나누고 다시 特別區域으..
國立中央博物館 (新 羅)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신 라 (新 羅)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는 591년 (眞平王 13년)新羅 왕정인과 地方民을 動員하여 慶州 南山에 신성을 쌓고 建立한 碑石 이다. 現在까지 10개가 發見되었으며 碑文에는 신해(辛亥) 2월 21일에 南山新城을 쌓을때 法에 따라 쌓은지 3년안에 무너지면 罪로 다스릴것을 널리알려 誓約하게 한다. 라는 誓約 部分으로 始作하여 城을 쌓는것과 關聯된 사람들과 工事한거리 등의 內用이 記錄되어있다.  제1碑 는 1934년에 發見된 것으로 花崗岩의 自然石을 그대로 利用한 悲憤 에는 9행 169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 咸安 一帶의 아랑 (阿郎)村의 地方民이 南山新城 築城에 動員 되었음을 알수있으며 新羅의 地方동지 體制를 살피는데 重要한 資料이다. 금관(金 冠) 金冠은 新羅의 ..
國立中央博物館 (百濟.伽倻)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백 제 (百 濟)  삼국사기(三國史記)記錄에 의하면 百濟는 高句麗 주몽(朱蒙)의 아들인 온조왕(溫祚王)에 의해 建國되었다. 溫祚는 兄인 비류(沸流)와 함께 高句麗에서 南쪽으로 내려와 比類는 미주홀에 溫祚는 하남(河南)위례성(慰禮城)에 定着 하였다. 나라 이름은 십제 (十濟)라 하였으며 그 後 百濟(百濟)로 고쳐 불렀다. 溫祚王 13년 한산(漢山)아래로 慰禮城의 住民을 옮겼는데 한성(漢城)의 位置는 風納土城.夢天土城 등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風納土城에서는 大型 집자리,祭祀關聯 建物地圖로 등이 確認되어 初期 百濟都城의 모습을 確認시켜 준다. 기와(瓦) 百濟의 기와는 甕津 기와 泗沘期를 거치면서 연꽃무늬를 주로 하는 百濟 特有의 樣式이 確立된다. 甕津期에는 傳統的으로 傳해오던 ..
國立中央博物館 (高句麗)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고구려 (高句麗)  高句麗는 鴨綠江 流域에서 일어나 點差周邊 地域을 아우르면서 三國중 가장먼저 古代國家 體制를 갖추었다. 313년 平壤地域의 樂浪郡을 몰아내고 北으로는 中國 랴오허강 에서 지린성(吉林省) 쑹화강(松花江)에 이르고 南으로는 韓半島 中部까지 領域을 넓혀 東아시아의 强者가 되었다. 高句麗는 固有文化를 維持 하면서도 中國과 西域,北方의 外來文化를 積極的으로 받아들여 力動的이고 實用的인 文化를 만들어냈다. 高句麗 文化의 國際性과 先進性은 天文,地理,文化,音樂,舞踊,工藝등 여러 分野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高句麗 文化의 特長은 滿洲의 환런,지안 일태와 평양등 高句麗 옛 都邑地를 中心으로 남아있는 城, 무덤, 宮闕터,절터 그리고 여기에서 出土된 吐器,鐵器,꾸미개등의 遺物에..
國立中央博物館(舊石.新石器.古朝鮮)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구석기(舊石器)  舊石器時代는 人類가 道具를 만들고 불을 利用하기 始作 하면서 이루어 낸 最初의 文化段階이다. 韓半島와 그 周邊 地域에서 사람들이 살기 始作 한것은 플라이 스토세中期 (약 78 ~ 13萬年前)로 推定 된다.그들은 食糧이 豊富한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며 사냥과 採集 生活을 하였다. 江가에 머무르면서 生活에 必要한 多樣한 道具를 만들고 發達시켰다.  주먹도끼 이 주먹도끼는 京畿道 漣川 全谷里 先史 遺跡에서 出土된 것으로 韓半島의 舊石器時代 이른 始期를 代表하는 遺物이다. 東아시아에서 특히 우리나라 全谷里를 비롯하여 全國的으로 주먹도끼가 빈번히 發見됨으로써 西洋은 주먹도끼 文化圈이고 東아시아는 찍게 文化圈 이라는 그 동안 通用 되어온 모비우스 文化圈의 槪念을 廢氣해..
國立中央博物館 (金冠塚.尒斯智王)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금관총과이사지왕(金冠塚尒斯智王)  1921년 무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金冠은 黃金의나라 新羅의 存在를 알리는 重要한 發見이었읍니다. 金冠塚 이라 이름 붙여진 이 무덤이 調査된 이래 92년이 지난 2013년, 國立中央博物館은 金冠과 함께 發見된 고리자루 큰칼을 保存處理하는 科程에서 이자지왕(尒斯智王)이라는 王의 이름을 確認 하였읍니다. 지금까지 古 新羅무덤에서 王의 이름이 確認된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重要한 意味를 갖읍니다. 이번 展示는 그 동안 알려지지않았던 金冠의 發見 및 調査科程을 紹介하고 王의 이름이 새겨진 고리자루 큰칼을 發掘 이래 最初로 公開하는 자리 입니다. 이 展示를 通해 金冠塚의 主人公이 누구인가를 다시한번 想像해 보시기 바랍니다. 금 관 ..
國立中央博物館 (朝鮮陶磁器)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조선도자기(朝鮮陶磁器)粉靑沙器 와 白磁 朝鮮을 代表하는 陶瓷器는 粉靑沙器와 白瓷이다, 粉靑沙器는 高麗末의 象嵌靑瓷에서 變化,發展한 것으로 15세기에서 16세기 中葉까지 만들어졌으며 貴族的인 高麗靑瓷와는 달리 活潑함과 生動感이 돋 보인다. 그런데 1467 ~ 1468년 무렵 경기도 광주(廣州)에 관요 (官窯)가 設置되어 國家가 주로白瓷를 生産하면서 그 影響으로 地方 가마들도 점차 粉靑沙器 대신 白瓷를 만들게 되었다. 朝鮮時代 전 其間에 걸쳐 製作된 白瓷는 純白色의 節製된 아름다움으로 朝鮮陶瓷 文化를 이끌었다. 포도무늬병                   모란무늬병(白磁銅畵葡萄文角甁)               (白磁銅牡丹文角甁) 朝鮮 18 ~ 19世紀 매화새무늬병(白磁靑畵銅畵梅鳥..
國立中央博物館 (韓國의道敎)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한국의도교(韓國의道敎) 韓國의道敎文化 ~  幸福으로 가는길 國立中央博物館은 2013년 마지막 企劃特別展으로 " 韓國의道敎文化 ~  幸福으로 가는길 "을 마련 하였읍니다. 前 近代 時期 韓國의 道敎文化 全般을 綜合的으로 살핀 傳示는 國內外를 通해 이번이 처음이라 할수있읍니다. 道敎를 이루는 宗敎思想的 要所와 신도(信徒)로서의 生活方式은 매우 多樣하지만 그 目的은 不老長生과 財物獲得, 疾病治療와 같은 世俗的이고 現勢的인 幸福의 成就로 要約될수 있읍니다. 물론 韓國에서 道敎는 敎壇宗敎로 成立하지 못하고 文化的 要所로서 存在하였읍니다. 이번 展示는 幸福을 向한 韓國人들의 旅程에서 道敎文化가  取捨選擇된 발자취를 한대모아 살펴보는 자리가 될것 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展示가 韓國道敎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