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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 (朝鮮陶磁器)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朝鮮陶磁器)

粉靑沙器白磁

 

朝鮮을 代表하는 陶瓷器는 粉靑沙器와 白瓷이다, 粉靑沙器는 高麗末의 象嵌靑瓷에서 變化,發展한 것으로 15세기에서 16세기 中葉까지 만들어졌으며 貴族的인 高麗靑瓷와는 달리 活潑함과 生動感이 돋 보인다. 그런데 1467 ~ 1468년 무렵 경기도 광주(廣州)에 관요 (官窯)가 設置되어 國家가 주로白瓷를 生産하면서 그 影響으로 地方 가마들도 점차 粉靑沙器 대신 白瓷를 만들게 되었다. 朝鮮時代 전 其間에 걸쳐 製作된 白瓷는 純白色의 節製된 아름다움으로 朝鮮陶瓷 文化를 이끌었다.

 

포도무늬병                   모란무늬병

(白磁銅畵葡萄文角甁)               (白磁銅牡丹文角甁) 

朝鮮 18 ~ 19世紀

 

매화새무늬병

(白磁靑畵銅畵梅鳥文甁)

朝鮮 19世紀

 

매화무늬병

(白磁靑畵梅畵文角甁)

朝鮮 17 ~ 18世紀

 

풀꽃무늬항아리

白磁靑畵草花文壺

朝鮮 17 ~ 18世紀

 

모란넝쿨무늬항아리

(寶物 240호)

(白磁透刻牡丹唐草文壺)

朝鮮 18 ~ 19 世紀

 

포도무늬항아리

(國寶 93호)

(白磁鐵畵葡萄文壺)

朝鮮 18 ~ 19世紀

 

산수무늬연적

(寶物 1329호)

(白磁靑畵山水文硯滴)

朝鮮 19世紀

 

연꽃넝쿨연당초문대접

(國寶 175호)

(白磁象嵌蓮唐草文大楪)

朝鮮 15 ~ 16 世紀

 

(白磁甁)

 

寶物 1054호

朝鮮 15 ~ 16 世紀

 

매화새무늬항아리

(國寶 170호)

(白磁靑畵梅鳥文壺)

朝鮮 15 ~ 16 世紀)

 

물고기무늬편병

(國寶 178호)

(粉靑沙器彫花魚文扁甁)

朝鮮 15 ~ 16 世紀

 

모란무늬자라병

(國寶 260호)

(粉靑沙器剝地鐵彩牡丹文甁)

朝鮮 15 世紀

 

납작한 몸체에 주둥이가 달린 形態로 자라를 닮아 자라병 이라 불린다. 旅行用 물병이나 술병으로 使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늬가 대범하면서도 白土로 남겨진 部分과 細部를 表現한 技法에 흐트러짐이 없다. 박지된 部分에는 검게 칠하여 視覺 效果를 높였다.

 

구름용무늬항아리

(國寶 259호)

(粉靑沙器象嵌印花雲龍文壺)

朝鮮 15 世紀

 

당당한 量感과 豊滿함이 돋보이는 이 항아리는 朝鮮時代에 들어와 새롭게 만들어졌다. 印畵技法과 象嵌技法이 적절히 調和를 이루며 粉靑沙器의 活氣차고 健康한 味感이 잘드러나 있다. 

 

물고기무늬매병

(寶物 347호)

(粉靑沙器象嵌魚文梅甁)

朝鮮 15 世紀

 

高麗末 朝鮮初에 만들어진 梅甁의 一般的인 形態이다. 畸形은 高麗末 象嵌靑瓷에 보다 가깝지만 무늬를 表現하는데 印畵技法의 比重이 높아졌고 濁했던 釉藥이 向上되어 比較的 밝은색으로 바뀐점이 두드러진다.

 

구름용무늬병

(靑磁象嵌銅畵雲龍文甁))

高麗 14世紀

 

입이 밖으로 벌어지고 同體下部가 豊滿한 形態의 甁이다. 全體에 象嵌技法으로 多樣한 무늬를 백백하게 粧飾하였고 특히 원 안에 位置한 용이 注目된다. 元나라의 影響을 받은 서있는 形態의 龍이 如意珠를 붙들고 있으며 象嵌技法과 童畵技法을 함께 使用하여 華櫚하게 粧飾하였다. 

 

꽃새무늬항아리

(靑磁鐵彩象嵌花鳥文扁壺)

 

칠보무늬향로

(國寶 35호)

(靑磁透刻七寶文香爐)

高麗 12 世紀

 

석류모양주자

(靑磁石榴形注子)

高麗 12世紀

 

귀룡모양주자

(寶物 제452호)

(靑磁龜龍形注子)

高麗 12 世紀

 

물가풍경무늬정병

(寶物 344호)

(靑磁陽刻표柳水禽文淨甁)

高麗 12世紀

 

구름학무늬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甁)

高麗 12 ~ 13 世紀

 

감은사지3층석탑 

(感恩寺址三層石塔) 

 

史蹟 제31호. 〈三國遺事〉에 문무왕(文武王)이 倭兵을 鎭壓하기 위해 歷史를 始作했으나 中道에 죽자 그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卽位해 682년(神文王 2) 完成했으며, 金堂의 基壇 아래에 同鄕한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해룡(海龍)이 된 文武王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또 遺書에 따라 골(骨)을 埋葬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大王岩)이라고 記錄되어 있다. 절의 이름은 本來 나라를 지킨다는 意味에서 진국사(鎭國寺)였으나 神文王이 父王의 護國忠情에 감사해 감은사(感恩寺)로 고쳐 불렀다.

 

감은사터동탑사리갖춤 

(感恩寺址東三層石塔舍利具)

 

感恩寺는 신문왕(神文王)이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의 冥福을 빌기위해 682년에 지은 절이다. 現在 절터에는 東西로 나란이 三層石塔이 남아 있다. 이 舍利갖춤은 1996년 感恩寺 銅塔 (국보 112호)三層 塔身의 解體 修理時 出土된것으로서 統一新羅 文化의 獨創性과 金屬工藝의 優秀性을 잘드러내는 傑作이다. 金銅四覺 外函의 네 面에는 各各의 防衛를 守護하는 四天王像이 粧飾되어있다. 舍利外函 안에는 집模樣 사리기를 넣고 사리기에 舍利甁을 安置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