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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 (韓國의道敎)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도교

(韓國의道敎)

 

韓國道敎文化幸福으로 가는길

 

國立中央博物館은 2013년 마지막 企劃特別展으로 " 韓國道敎文化幸福으로 가는길 "을 마련 하였읍니다. 前 近代 時期 韓國의 道敎文化 全般을 綜合的으로 살핀 傳示는 國內外를 通해 이번이 처음이라 할수있읍니다. 道敎를 이루는 宗敎思想的 要所와 신도(信徒)로서의 生活方式은 매우 多樣하지만 그 目的은 不老長生과 財物獲得, 疾病治療와 같은 世俗的이고 現勢的인 幸福의 成就로 要約될수 있읍니다. 물론 韓國에서 道敎는 敎壇宗敎로 成立하지 못하고 文化的 要所로서 存在하였읍니다. 이번 展示는 幸福을 向한 韓國人들의 旅程에서 道敎文化가  取捨選擇된 발자취를 한대모아 살펴보는 자리가 될것 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展示가 韓國道敎文化 遺産에대한 이해를 더하고 道敎文化의 現代的 意味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所望 합니다. (國立中央博物館)

 

강서대묘청룡모사도

(江西大墓靑龍模寫圖)

 

北쪽을 象徵하는 玄武는 널방 北壁에 俱現된다. 뱀이 거북을 감은 型式으로 거북과 뱀이 마주보면서 西쪽을 向해가는 모습이다.

 

낙서무늬주전자

(白磁靑華洛書文龜形水注)

 

낙수(洛水)에서 나타난 神靈스런 거북 등에 있었다는 模樣이다. 우(禹)는 낙서(洛書)에 의해 홍법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고 傳해진다. 이 遺物은 거북의 龜甲文 등에는 별자리를 形象化한 것처럼 점무늬가 連結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數를 나타내는것이다. 中央의 5를 基準으로 가로,세로,對角線 등 어느 쪽을 더해도 15가 되는 數로 構成 되어 있다.

 

팔괘무늬연적

(白磁靑華八掛文硯滴)

 

八角形 硯滴이다. 면마다 八卦를 넣었고 硯滴上面에는 어딘가로 떠나가는 배와 배웅하듯 나무아래 두 사람이 서있다. 普通 고사人物무늬의 一種이나 물고기 무늬등이 使用된다.

 

사신무늬거울

(靑銅四神文鏡)

 

 거울에 새겨진 使臣무늬는 高麗時代 石棺이나 壁畵 무덤등에 보이는 使臣의 모습과 거의 一致하고 있어 高麗時代에 日程한 使臣의 紋樣패턴이 定해져서 使用되었던 것으로 推定 된다.

 

십이지상

(靑銅十二支像)

 

땅을지키는 열둘의 신장(神將)이다.

 

사신모양관꾸미개

(金銅棺金具)

 

木棺에 附着했던 것으로 推定되는 棺 粧飾이다. 棺의 네 면에는 각각 金銅제의 白虎 靑龍. 주작,현무틀, 관의 뚜껑에는 봉황무늬를 타출하여 粧飾 이였다. 또 棺의 각 모서리에는  唐草紋으로 粧飾한 金銅 투조 粧飾을 붙였다.

 

도교삼존상

(道敎三尊像)

 

도교사면상

(道敎四面像)

 

노자(老子)로 推定되는 주존(主尊)과 장신의 現示로 이루어진 道敎 三尊像 이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禮)를 묻다.

 

(老子)

 

 

神이된 老子는 草나라 사람으로 性은 이(李) 이고 이름은 이(耳),자(字)는 담(聃)이다. 주(周)나라 王室 圖書館의 管理였지만, 周나라가 衰退하자 隱退를 決心하고 西쪽을 向해 떠났다. 도중에 함곡관 (函谷관)을 지키던 管理 윤희(尹喜)가 가르침을 請하자 도(道)와 덕(德)의 意味를 5천여 자로 남기고 떠났다. 이것이 도덕경(道德經)이다. 初期 道敎에서는 老子를 神格化하여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부르며 最高의 神으로 섬겼다.

 

도교인물모양연적

(靑磁道敎人物形硯滴)

 

두 손으로 정병(淨甁)을 든 人物을 形象化한 硯滴이다. 人物은 관(冠)이나 依報의 모습에서 佛敎의 僧侶나 儒敎  사인(士人)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道敎 儀禮를 執典한 도사(道士)로 推定 된다.

 

도교인물모양주전자

(靑磁道敎人物形注子)

 

두 손에 선도(仙桃)를 받쳐든 人物 模樣의 酒煎子 이다. 衣服과 鳳凰이 粧飾된 관(冠), 仙桃를 받쳐 든 모습에서 人物은 最高 女性的인 것으로 確立되어 있던 점을 勘案할때 道敎 儀禮인 財招를 執典한 도사(道士)일 可能性이 있다.

 

기린모양향로

(靑磁陽刻麒麟形香爐)

 

상상속의 動物 麒麟이 고개를 뒤로 돌려 앉아 있는 모습을 形象化한 香爐이다. 麒麟은 中國 古代 이래 龍,鳳凰,거북과 함께 神靈스런 動物로여겨졌고 道敎에서서도 登場한다. 이 香爐는 高麗時代에 오아실 祭祀나 道敎 재초등의 제의(祭儀)에 使用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철무늬향로

(靑磁陽刻途轍文香爐)

 

기봉과 途轍이 描寫되는 등 全體的인 形態나 文樣에서 中國古代 靑銅器의 影響이 보인다. 宋나라의 例祭를 받아들일때 義妓들도 受容한 結果로 推定된다. 高麗時代에 王室 祭祀나 道敎 재초등의 제의에 使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일(大一)은 하늘의 尊貴한 神으로 한대(漢代)이래

歷代로 떠받들어 자주 상서로운 일들이 있었읍니다.

이 때문에 전조 에서는

復原宮,昭格殿,淨事色 등을 設置 하고도

따로 태청관(太靑觀)을 세우고

또 간(艮)손(巽)곤(坤)건방(乾方)에 該當하는 地域에서

(태일이)머무는 자리를 쫓아 宮官을 지어

초례를 行하였는데 매번 악운 및 災難을 당할 때에는

祈禱를 行하거나 別途로 太淸觀에서

초제를 지냈던 것입니다.

만일 軍隊를 움직이게 될 경우라면

將帥가 太淸觀에 가서 재초를 올리고 떠났습니다.

대게 태일은 인성(仁星)으로 그것이 있는 곳에서는

戰爭과 돌림병이 생기지 않고

나라가 便安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톱니무늬거울

(靑銅鋸齒文鏡)

 

慶州 皇龍寺址 木塔이 心礎石 아래에서 發見된 세 점 銅鏡중 한 점이다. 뉴에는 靑銅고리가 남아있다. 빛이 발하는 모습인 듯한 紋樣은 다뉴경에서 부터 보이는 傳統이다.

 

진단구와동전

(鎭壇具.開元通寶)

 

雁鴨池 西偏 臨海전지로 推定되는 建物들 사이에서 出土된 診斷具 이다. 內部에서 開元通寶 4점 琉璃玉 4점 腐蝕된 뼈彫刻이 出土 되었다. 

 

진묘수

(鎭墓獸)

 

鎭墓獸는 侵入者나 惡鬼를 막고 죽은자의 靈魂을 昇仙시키는 意味로 놓인 것으로 解釋된다. 입과 몸통에는 碧紗의 意味로 붉게 칠해져 있으며 뿔과 몸통의 날개는 죽은이를 승선(昇仙)시키려는 듯 운기문(雲氣文)으로 表現 되어 있다.

 

거울

 (靑銅神獸文鏡)

 

王의 발쪽에 놓여 있던 거울이다. 道敎에서는 요괴임을 確認하는 方法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얼굴을 비춰 確認하는 方法과 발뒤꿈치를 비춰 요괴임을 認識하는 方法이다. 武寧王陵은 王의 얼굴 부근에서 1점 발치 부근에서 1점이 出土되어 두 가지 識別法이 모두 動員 되었음을 確認할수 있다.

 

오수전

(鐵製五銖錢)

 

武寧王陵의 買地權 위에 꾸러미로 놓여 있었으며 그 숫자는 90여 개에 달한다. 買地權에는 이 돈으로 토지신(土地神)에게서 무덤터를 산다는 內容이 적혀있다. 무덤에 돈을 넣는 것은 한대 이래로 流行하던 風俗 이다.

 

고리자루칼

(金銅瓊頭大刀)

 

둥근고리를 이루는 자루 끝粧飾은 2마리의 龍이 엇갈려 감겨있고 그안에 龍을 表現 하였다. 자루의 위와 아래에는 거북동무늬와 鳳凰무늬,인동무늬로 粧飾하였고 자루 中心部에는 金실과 銀실을 交代로 빽빽하게 감았다.

 

사신을새긴석관

(四神文石棺)

 

高麗 中期의 文臣 허재(許載)1062 ~ 1144의 石棺이다.  高麗時代에는 佛敎式 火葬을 하고 남은뼈를 修習하여 石棺에 넣는 風習이 流行하였다. 石棺의 바깥면에는 죽은이를 지키는 守護神의 意味로 사신(四神)을 새기는 일이 많았고 이 石棺처럼 十二支神이나 墓誌銘까지 함께 새기는 일도 있었다.

 

거울

(惶丕昌天銘靑銅鏡)

 

황비창천(惶丕昌天)이라는 銘文과 함께 波濤가 일렁이는 바다를 航海하고 있는 船舶과 日常,月像,龍 등의 무늬를 새겨 놓았다. 바다의 신산(神山)을 찿아가는 모습을 表現한 것이거나, 無事航海를 祈願하기 위해 製作한 것으로 보인다.

 

긴목항아리와그릇받침

 

扶安 죽막동 遺跡에서 出土된 항아리와 그릇 받침으로 깨진 채 遺跡에 뿌려져 있었다. 당시 토기를 깨 바다神에게 祭祀지내던 모습을 보여 준다.

  

본뜬석기와청동거울

(模形石器靑銅鏡)

 

칼이나 거울 등을 대신해 돌로 간단하게 縮小,模造한 것으로 몸체의 中央이나  끝부분에 小型 구멍이 1 ~ 2개 뚷려 있다. 작경 3 m 범위에서 집주적으로 出土된 점으로 볼 때 祭祀 지낼때 神에게 바치려는 目的으로 製作된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릉묘지석

(武寧王陵墓誌石 王,王妃)

 

王陵의 넘김 入口에 놓여있던 2장의 誌石이다. 그 위에서 오수라는 글씨가 새겨진 寢殿이 發見 되었는데 土地神에게 무덤터를 사기위해 돈을 무덤안에 넣은 것으로 中國 道敎 思想의 影響으로 보인다. 王妃 誌石 뒷면은 529년 8월 12일에 돈 1만매로 사마王이 地神 에게서 土地를 買入 하였다는 內容의 買地勸 이다. 

 

 

 

道敎에서 물 신(神)은 수관해액대제(水官解厄大帝)로 불리며

厄을 풀어주는 神으로 여겨졌다.

厄을 풀어주는 물 神에게는 보다 具體的이고

現實的인 內容의 祈願이 行해졌다.

물의 神은 용(龍)으로 代表되어 祈雨祭의 對象이 된다거나

厄을 除去하고 邪惡함을 씻어내기 위해

江, 바다, 우물 제사의 對象이 되었다.

또한 花王山城 出土 人形 木幹등에 보이듯

厄을 막고 治病活動을 돕는다든지

물의 神性成을 確保하기 위해 行해진 우물祭司의 복숭아처럼

가장 具體的이고 現實的인 祈願들을 들어주는 對象이었다.

  

 

제천의식( 祭天儀式)古代人들의 主要한 宗敎行事 이자

共同製의 安寧을 위한 가장 基本的인 儀式이었다.

소대의 爲政者들은 日月聖神의 異變과 같은 自然現象을

國家와 王室의 運命을 가름하는 尺度로 여겨

하늘 神에게 祭祀를 올리며 王室과 國家의 安寧을 祈願했다.

道敎에서 하느 神인 천관사복대제(天官賜福大帝)는

福을 주는 神으로 여겨졌다.

 

 

땅神 지관(地官) 후토신(后土神)과 連結되며 女性으로 取扱되었다.

罪를 辭海주는 땅 神에게 잘보여야 좋은世上에 간다고 믿고

묘지명(墓誌銘)에 망자(亡者)의 生前에 業績을 잘적어 주었다.

또 땅神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땅 神에게 땅 使用을 許可받는 매지권(買地卷)을 묻어 주거나

압승(壓勝)이 意味로 동전(銅錢)도 함께 묻어주는것도

오랜 기원(祈願)의 形態였음을 確認된다.

道敎에서 땅 신지관(地官)은 지관사죄대제(地官赦罪大帝)불리며

罪를 辭海주는 神으로 여겨졌다.

 

동왕부서왕모새긴거울

(東王父西王母銘靑銅鏡)

 

中國人들이 死後에 가고자 所望했던 世界는 西王母와 東王父가 사는 崑崙山이나, 中國 東쪽바다 가운데 神仙들이 居住한다는 博山등 으로 描寫되었다. 西王母와 東王父 는 崑崙山에 居住하면서 神仙들을 다스리는 神이다.

 

서왕모무늬돌

(西王母畵像塼)

 

일산을 쓰고 龍虎座 위에 앉아있는 西王母가 表現되어 있다. 西王母 主位에 가는 리본처럼 描寫된 것은 일산과 더불어 西王母가 우화등선 (羽化登仙)의 存在임을 表現한 것이다. 주연부에 뇌문이 도려져 있다. 西王母는 다소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描寫되었고 소매가 넓은 모습으로 表現되어 있다. 西王母가 자리한 龍虎座는 四神槪念이 成立되기 以前에 주로 流行하던 것으로 한대(漢代)의 이른 時期에 該當된다.

 

모사도

(龕神塚仙人模寫圖)

 

새를 타고 날아가는 仙人의 모습이다. 이 仙人은 崑崙山의 西王母로 言及되기도 한다.

 

복숭아모양연적

(白磁桃形硯滴)

 

西王母의 반도에서 由來한 복숭아는 長壽를 祝願하는 代表的인 象徵物 이다. 時代를 막론하고 碧紗와 長壽의 象徵으로 사랑받아 陶瓷器나 硯滴등 多樣한 生活 用品에서 繪畵나 工藝品에 이르기까지 日常生活에서 즐겨 使用되었다.

 

신선동방삭

(神仙東方朔)

 

동방삭(東方朔)은 여선(女仙) 西王母의 선도(仙桃) 복숭아를 세 번씩이나 훔쳐먹어 3천 갑자를 살게 되었다고 한다.

 

수막새

 

두꺼비와 토끼무늬 수막새로 西王母 곁에 種種登場하는 토끼와 두꺼비 桂樹나무는 모두 長壽를 象徵한다. 

 

거울

 

큰 나무 아래 4명의 人物과 그 옆에 토끼가 藥을 찧고있는 모습이 描寫 되어 있다.

 

전돌

 

한대(漢代)의 전돌로서 佛寺의 藥을 찧고 있는 토끼가 두꺼비와 함께 浮彫되어 있다. 당시에 이미 神仙 世界에 대한 信仰이 매우 두터웠음을 確認 할수있다.

 

백제금동대향로

(百濟金銅大香爐)

 

百濟金銅大香爐는 1993년 12월12일 百濟羅城과 百濟王陵院 中央칸 西쪽의 한구덩이에서 出土된 이 香爐는 높이 61.8 cm 무게 11.8kg의 대형香爐로 몸체와 뚜껑으로 區分되어 있으며 위에 附着한 鳳凰과 받침대를 包含하며 뚜껑에는 피리와 소비파,현금,북들을 演奏하는 5인의 樂士와 各種 武人像,騎馬狩獵像등 16인의 人物像과 鳳凰,龍을비롯한 動物을이 表現되어있다 百濟時代의 工藝와 美術文化,宗敎,思想,製造技術까지도 파악케하는 貴重한 文化財이다 (國寶제287호)

 

은잔

(銀盞)

 

公州 百濟 武寧王陵 發掘시 王妃의 머리쪽에서 發見된 銀盞과 靑銅製 받침이다. 銀盞은 굽이 있으며 연꽃, 산봉우리, 새, 용, 사슴, 나무등이 새겨져 있다. 굽이 달린 접시 模樣의 받침에는 中央에 연꽃무늬, 가장자리에 거치무늬(鋸齒文)를 돌리고 그 사이에 인면조(人面鳥), 용,  사슴, 새,  나무등을 表現하였다.

 

전돌

(文樣塼)

 

산수(山水)무늬르 表現한 百濟屍臺 전돌이다. 아랫부분에는 수면을 中間의 넓은 部分에는 신산(神山)을 웟부분에는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表現하였다. 산악의 中央 아랫부분과 그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建物과 導師로 보이는 人物이 描寫되어 있다.

 

연적

(硯滴)

 

산 模樣硯滴

  

도사봉황무늬거울 

(靑銅篇史舞鳳文鏡)

 

한쪽에는 丹頂한 姿勢로 생황을 불고 있는 神仙이 앉아있고 그 반대 편에는 仙人의 音樂에 빠져 춤을추는 鳳凰이 描寫되어 있다. 仙人의 뒷편으로 描寫된 숲과 鳳凰 앞 쪽으로 펼쳐진 연못 등으로 깊은 山中에서 鳳凰과 交感하는 神仙의 日常이 表現 된것으로 보인다.

 

수막새

(上林銘互當)

 

한대의 銘文 막새 중에서 그 막새가 使用된 建物의 名稱이 새겨진것들이 있는데 宮殿 혹은 官廳의 이름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상림(上林)명 막새는 상림원(上林苑)에 세워진 建築物에 使用된 것으로 半圓막새와 수막새가 함께 發見 되었다.

 

나막신

 

 扶餘 陵山里 寺址 出土

 

신선들

(群仙圖)

 

등에 黃庭經을 매고 붉은 영지를 들고 있으며 허리에 毫釐甁을 차고 있으니 묻지않아도 청오자임을 알수있다. 沒骨사의 빠른 筆致의 句法이 俗世를 활발히 벗어났으니 청오술이 能히 大敵할수 있겠는가.  김홍도가 그렸다.

 

향합

(香盒)

 

神仙들의 한가한 모습을 새긴 향합(香盒)이다. 뚜껑에는 나무아래에 두 이야기 그림을 들소 서있고 神仙이 이를 感想하는 모스을 表現하였다.  또 몸체에는 나무 아래서 두 神仙이 바둑을 두고 그 곁에 시중드는 아이가 서 있는 光景을 描寫하였다.

 

노리개

 

밀화(密華)粧飾에 매드을 단 노리개이다. 密華 粧飾의 앞면에는 神仙과 사슴무늬 뒷면에는 각각구름, 鶴, 수품, 거북, 소나무, 山, 水, 영지, 해, 사슴을 뜻하는 漢字들이 새겨져 있다.

 

神仙무늬化粧品그릇

 

일월오봉도

(日月五峯圖)

 

神仙世界의복숭아

 

詩를새긴靑瓷甁

 

3. 거북과구름무늬접시 2.산수무늬합 1.칠보무늬합

 

구름과 歸龍의 무늬가 있는 접시다. 산과구름,귀룡이 그려진 盒이다. 뚜껑에 七寶紋이 配置한 白瓷盒이다.

 

5 十長生무늬筆筒 6, 十長生무늬眼鏡集  

 

신령스러운동물무늬화로

(火爐)

 

몸체 네면에 十長生을 組合하여 나타내고 뚜껑에  八卦무늬와 박쥐무늬를 베풀었다. 餘白이 없이 各種 幾何學的인 무늬를 入射로 表現 하였다.

 

십장생무늬담배합

(鐵製銀入絲十長生文煙草盒)

 

은입사(銀入絲) 技法으로 粧飾한 담배합이다.  뚜껑에는 圖案化된 수(壽) 자를넣고 周邊을 幾何화문으로 빽빽하게 粧飾하였다. 몸체의 中央에 둥근띠를 配置하고 그 안에 사슴, 鶴, 거북, 소나무, 不老草 등을 臨時로 粧飾 했다.

 

굽다리접시

 

皇南大塚에서 出土된 金製 굽다리 접시와 銀製접시는 吐器 굽다리 접시와 模樣이 똑 같다.

 

칠기쟁반과칠기그릇

 

흙으로 만든 七氣錚盤과 漆器 그릇으로 朱漆이 되었다. 朱漆은 永生不死와 등선(登仙) 그리고 碧紗의 意味를 담고있다.

 

향로

(香爐)

 

香爐는 도교과의(道敎科儀)에서 가장 重要한 法器의 하나로서 道家들은 선경(仙境)과 태상노군(太上老君)이 居處하는 곳이 香爐와 같다고 認識 하였다. 아울러 이 香爐들은 古代에 단악(丹樂)을 만들던 단청(丹鼎)의 形態를 띄고 있다.

 

상부선사를새긴거울

(祥符銑瑞銘靑銅鏡)

 

팔옆 뉴좌를 가진 거울이다. 內口에 蓮花紋이 있고 각 판에는 銘文이 있다. 外口에는 八卦를 配置하고 그 사이에 상부선서(祥符銑瑞)를등 銘文을 두었다.

 

사인검

(四寅劒)

 

年, 月, 時가 모두 인(寅)일때 만드는 칼이다. 칼날의 한 面에는 北斗七星과 28수 天文圖가 다른면에는 검결(劒缺) 27자가 篆書體로 金入社 되어있다.

 

십이지별전

(十二支別錢)

 

한 면에 12支像과 文字를 陽刻한 靑銅 別錢으로 모두 原型의 구멍을 뚫었다. 둿면에는 五斗米道의 創始者인 長天價 새겨져 있고 神仙文이나 별자리 등이 새겨져 있다.

 

문창제군보고

(文昌帝君寶誥)

 

文昌帝君의 귀한 가르침이란 뜻의 道敎經傳을 靑華白瓷에 담은 것이다. 이 內容은 "三聖訓經"에도 收錄되어 있다. 앞부분의 文昌帝君권효문(文昌帝君勸孝文)에는 효(孝)가 사람사는데 가장 重要한 일임을 强調하고 있다.

 

칠성여래

(七星如來)

 

道敎와 占星術의 影響으로 佛敎에서는 일월성신(日月星晨)을 부처로 擬人化 하여 信仰하였고 그 影響이 佛畵에 投影되었다. 佛畵에서는 高麗時代 치성광여래도(幟盛光如來圖)에 北斗七星을 비롯한 여러별들의 尊尙이 表現되었고 朝鮮後期에는 民間信仰과 結合되어 福을 求하고 得男을 念願하는 七星神仰의 盛行과 함께 북두칠성(北斗七星)과 하늘의 여러별들의 尊尙이 表現되었고 朝鮮後期에는 民間信仰과 結合되어 福을 求하고 得男을 念願하고 七星神仰과 北斗七星과 하늘의 여러 별들을 그린 七星圖가 多數造成 되었다. 

 

성황신

(城隍神)

 

慶南 密陽 秋花山의 城隍寺에 모시던 손긍훈(孫兢訓)神聖 이다, 原來 道敎에서 城郭이나 都市의 守護神이던 성황신(城隍神)은 우리 土着의 마을共同體 信仰과 習合하여 점차 民間信仰化한 것으로 보인다. 손긍훈은 新羅末 高麗初 密陽을 支配하던 豪族으로 推定되는 人物인데 당시의 豪族들은 地域의 統治者이자 共同體의 守護者로 認識되어 훗날 손긍훈처럼 地域 城隍神으로 모셔지기도 하였다.

 

도묘치성병을새긴병

(白磁東廟致誠甁)銘甁

 

東關王廟에서 致誠을 드릴때 使用하던 白瓷甁이다. 몸체 上段部에 돋을 새김으로 東廟致誠甁 경진삼월일(庚辰三月日)이라는 銘文이 있어 이 白瓷 甁의 用途를 알수있다. 또한 理由 물의 製作技法과 基形을 苦慮해 보면 銘文중의 경진(庚辰)은 1820년(純祖20)이거나 1880 (高宗17)으로 推定된다.

 

관우,유비,장비상

 

부적과점

(符籍占)

 

民間에서는 福을 求하는것과 厄을 막는것이 가장 열렬한 呼應을 받았다. 福받는 삶을 위해서 厄을 피하고 神의 뜻을 살피는 點服이 先史時代로 부터 꾸준히 行해졌다. 이와 더블어 神의 뜻을 傳達하고 鬼神을 부리는 부록 또한 流行했는데 부는 노란종이에 붉은색으로 쓴다. 반면 록은 여러簿籍 사이에 쓰는 碑文이다.

 

세화판

(歲畵板)

 

歲畵는 한 해동안 疾病이나 災難등의 不幸을 事前에 豫防하고 幸運이 깃들기를 祈願하는 그림이다. 새해 첫날 여러사람에게 좋은 뜻을 傳해주고자 木板으로 製作한 것으로 보인다. 이 板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등의 길상(吉祥) 文字와 吉祥 문늬가 함께 時文되어 있다.

 

삼재부적

(三災符籍)

 

사람에게 12년중 3년은 세가지 災殃이 드는데 이를 삼재(三災)라 한다. 三災가 닥치면 머리가 셋이고 몸은 하나인 매를 붉은 물감으로 그려서 房門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녀 厄을 막았다.

 

당사주

(唐四柱)

 

平生運勢를 글과 그림으로 說明해 놓은 冊이다. 周易점에 비해 쉽고 揷畵가 있어 朝鮮後記 이래 民間에서 많은 板本이 刊行되었다.

 

옥추보경

(玉樞寶經)

 

굿을할때 읽는 經文 중에서 가장 重要한것이다. 經國大典에는 도류(道流)가 이를 읽는다고 하여 도서(道書)라고 傳하고 있었으나 위서(僞書)라는 見解가 優勢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류들이 이를 읽었던것은 事實로 보인다. 주로 病굿이나 神굿과 같은 큰굿에서 읽는데 이 經을 읽으면 千里 鬼神이 다 움직인다.

 

점도구

(占具)

 

점을 칠때 거북점 통속通俗에든 葉錢으로 양효, 음효 6개로된 주역의 64괘를 뽑아 점을치는 道具이다. 거북등에는 낙서 혹은 별자리 무늬를 表現 하였다.

 

부뚜막모양부장품

 

부엌의 神인 조왕신(窕王神)은 불 의신 혹은 부뚜막의 神으로 여겨졌다.

 

팔각간주석

(八角間柱石)

 

統一新羅때 만든 石燈의 間柱石에 朝鮮時代 사람들이 이 글을 새긴것이다. 東方朔은 中國 漢나라때의 傳說的인 人物로 不老長生을 象徵한다. 一說에는 동방삭(東方朔)우물을 파고 地下世界로 내려가 영지초(靈芝草)를 먹었으며 神秘한 世界에 오래 머물다 나왔다고 한다.

 

 

甲辰六月初七日午時東方朔出於此井中鄭氏祝願所

갑진년 유월 초칠일 오시에 동방삭이 우물에서 나왔다. 정씨의 축원소이다.

 

광성제군도

(關聖帝君圖)

 

勇猛하고 義理있는 將帥였던 관우(關羽)는 故鄕인 산서성(山西省)의 商人들에 의해 재물신(財物神)으로 모셔졌다. 원대(元代)를 거쳐 明靑代에 關羽의 人氣가 높아지자 戰爭의 神이자 商人들의 財物神으로 各 地域에서 崇拜되었다. 

 

문창제군

(文昌帝君)

 

文昌帝君은 北斗七星의 國子 여러 바깥쪽에 位置한 여섯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 文昌星을 神格化한것으로 文化,敎育 學文의 神이며 특히 科擧를 치르는 사람들의 守護神으로 여겨졌다.

 

태극(太極)은 음양(陰陽)을 낳고 陰陽은 사상(四象)을 낳고 四象은 팔괘(八卦)를 낳고 八卦는 길흉(吉凶)을 定하고

吉凶은 대업(大業)을 낳는다.  ★ 周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