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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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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立中央博物館 (朝鮮白瓷)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조선백자 (朝鮮白瓷) 朝鮮의 仁 과 禮 예를 담다. 白瓷항아리 朝鮮의 인(仁)과 예 (禮)를담다. 는 白瓷항아리를 主材로 朝鮮時代의 性格과 特旨을 照明하고자 磨鍊하였읍니다, 白瓷항아리는 單純한 貯藏容器 以上으로 거기에는 朝鮮時代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읍니다. 性理學을 社會秩序의 根本으로 삼은 朝鮮은 모든王室 儀禮를 法度와 節次에 따라試行 하였고 거기에 使用하는 그릇 또한 法式에 맞게 만들어 使用하였읍니다. 그 중 特殊한 쓰임새를 目的으로 만들어진 태 (胎) 항아리와 명기 (明器) 용준 (龍樽)은 朝鮮 王室의 陶瓷文化의 特性과 美意識을 알려주는 좋은資料 입니다. 이번展示를 통해 白瓷항아리의 造型的 아름다움 너머에 存在하는 歷史的 價値와 意味를 發見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
國立中央博物館 (高麗,朝鮮粉靑沙器)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분청사기 (粉靑沙器) 분청사기(粉靑沙器) 또는 분청자기(粉靑磁器)는 분장청자(粉粧靑磁)의 약칭으로 사기(沙器), 혹은 일본인들이 미지마데(三島手:刷毛目)라고 부르는 자기류의 총칭으로 고유섭(高裕燮)씨가 처음 이름붙인 것이다. 이 분청사기는 청자기의 표면에 상감(象嵌), 박지(剝地), 백토분장(白土粉粧), 각화(刻畵), 철화(鐵畵) 등으로 장식한 것을 전부 포함하는데 편의상 상감분청계(象嵌粉靑系:인화분청, 감화분청)와 백토분청계(白土粉靑系:백토분청, 박지분청, 철화분청)로 구분된다.
國立中央博物館 (高麗靑瓷)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고려청자 (高麗靑瓷) 高麗靑瓷는 고려문종(文宗) 前後에 송(宋)의 華南 浙江省 월주요(華南浙江省越州窯)의 影向을 받고 일어난 것으로서 그 變天은 靑瓷의 發生에서 衰退까지 각 其間을 3기, 300년으로 區分하는 것이 가장 他黨한 方法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時代 區分과 該當 기간 중의 靑瓷의 特色과는 密接한 聯關을 갖게 된다. 初期의 靑瓷는 매우 素朴한 데서 出發하여 漸次 技術이 熟練됨에 따라 예종(睿宗)· 인종(仁宗) 때에 이르러 이른바 비색청자시대(翡色靑磁時代)를 이루며 高麗靑瓷의 眞面目을 보이는 象嵌靑瓷를 낳는데 이는 純全히 高麗人의 創意力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象嵌靑瓷가 다시 동철기(銅鐵器)에 접목(接木)되어 은동상감기(銀銅象嵌器)를 낳고 高麗 末期에 이..
國立中央博物館 (新安海底遺物龍天靑瓷)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의문의함선 신안선은 어떻게 발굴되었을까? (新安海底遺物龍天靑瓷) 1975년 어느날 한 漁夫가 우연히 新安 바다 밑에서 靑瓷花甁을 끌어 올렸다. 이를 계기로 新安船은 650 여년간의 깊은잠 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1차례 進行된 水中發掘 期間동안 바닷속에서 끌어올린 全體 遺物은 陶瓷器類 金屬 石製品등 3 萬여점 銅錢 28톤 자단목 1,999여본 船體편 720여점등 方臺한 量에 이른다. 향문화용천청자 東아시아에 佛敎가 傳來되면서 향 文化도 함께 發展하였고 이러한 文化는 陶瓷文化의 擴散을 이어졌다. 向은 점차 宗敎的인 意味를 벗어나 個人的인 심미의 目的으로도 使用되었으며 室內에 向을 피워 周邊을 淸潔하게 하거나 向을 個人的으로 携帶 하기도 하였다. ..
國立中央博物館 (墓誌銘)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삶그리고죽음 묘지명 (墓誌銘) 슬프다 서러운지고 아프다 서러운지고 평생을살며 좋은시절살다가 가엾은 그대가떠나니 이제는 조금도 좋은일이 없네 영조후궁영빈이씨묘지명 (御製映嬪李氏白磁墓誌銘) 英祖 임금의 後宮 映嬪李氏의 墓誌이다. 後宮이란 왕의 正實 夫人인 王妃를 除外한 王의 女人 즉 王의 첩을 말한다. 映嬪에서 嬪 이란 後宮 가운데 가장 높은 品階人 政 1 品의 이름이다. 映嬪 李氏는 6살에 宮女가 되어 以後 英祖임금의 後宮으로 思悼世子를 비롯한 1남 6녀를 낳았으며 英祖임금으로 부터 매우깊은 사랑을 받았다. 자찬묘지명 (自撰墓誌銘) 丁若鏞은 억울하게 流配生活을 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學問에 힘써 業績을 남기는 등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다. 묘지명 (墓誌銘)이란 죽은이에 대해 ..
國立中央博物館 (日本)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일 본 (日本) 와 (瓦) 日本世紀의 記錄에 의하면 日本의 첫 기와는 588년 百濟에서 건너간 匠人들이 나라 아스카데라를 지을때 만든것이라 한다. 따라서 古代 아스카 나라 時代의 기와는 韓半島의 기와와 類似한 점이 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 文化前半에 걸친 日本의 形成에 따라 기와도 점차 獨自的인 發展을 이루게 된다. 색회자기 (色繪磁器) 日本의 彩色 陶瓷器가 發展하기 始作 한것은 16세기 以後 큐슈地方에서 活躍한 朝鮮의 陶工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당시中國의 政治的 混亂으로 生産이 中斷되어 있었던 景德鎭의 瓷器를 代身하여 큐슈이 彩色 陶瓷器들이 유럽에 輸出되기 始作하였다. 당시 輸出에 利用되었던 港口가 큐슈 시가현 이마라로 그 地名을 따라 이마리 陶瓷器라는 名稱이 태어났다..
國立中央博物館 (國寶,寶物)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국보,보물 (國寶,寶物) 白瓷와 粉靑沙器는 朝鮮을 代表하는 陶瓷器이다. 粉靑沙器가 약 150년간 製作된데 비해 白瓷는 朝鮮時代 全 其間에 걸쳐 꾸준히 만들어지고 使用되었다. 順受와 節製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白瓷는 儒敎의 理念을 追求한 새 王祖와 士大夫層이 愛用했기 때문에 그들의 思想과 就養을 담고있다. 朝鮮白瓷의 歷史는 王室과 中央 官廳用 白瓷를 製作한 가마인 관요 (官窯)를 中心으로 살펴볼수 있다. 官窯는 京畿道 광주(廣州)에 設置된 사옹원 (司瓮院)소속의 분원(分院)을 말하는 것으로 分院官窯의 設置와 運用에 다라 크게 初期.前期.中期.後期로 區分된다. 初期는 京畿道 廣州에 官窯가 設置되지 않은 時期로 全國의 가마에서 製作된 最高級 白瓷를 王室과 中央官廳에서 使用하였다..
國立中央博物館 (Gandhara art)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간다라미술 (Gandhara 美術) 넓은意味의 간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에 束하는 페샤와르분지,스와트,탁살라,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의 카불 분지와 잘랄라바드 일대를 포괄한다. 이 地域은 서아시아,남아시아,중앙아시아를 잇는 交通의 要衝地로 여러 王祖의 進出과 交易活動을 通해 일찍부터 多樣한 文化가 紹介되었다. 이 地域에서 紀元後 1 ~ 5세기에 製作된 美術을 "간다라美術" 간다라는 마투라 (Mathurm) 地域과 더불어 人間의 모습을 한 불상 (佛像)이 처음으로 製作된 곳이라는 점에서 重要한 歷史的 意味를 지닌다. 東西文化 交流의 中心地답게 이 地域의 佛像은 인도,헬레니즘,로마,파르티아적인 要所가 複合된 樣相을 보인다. 간다라 地方은 오래전 부터 文明의 交叉路였다. 아쇼카 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