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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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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祖山覺願寺 태조산각원사 (太祖山覺願寺) 忠淸南道 天安市 안서동에 자리한 覺願寺는 主旨스님이신 경해법인(境海法印) 큰 스님의 願力으로 1975년 創建되어 大韓佛敎曹溪宗 제1敎區에 該當하는 直轄敎區에 登錄된 사찰(寺刹)이다.경해법인 큰스님께서는 오랫동안 敎學과 수행정진과정(修行精進科定)에서 각연 김영조(覺然 金永祚 부인 정정자)거사의 施主로 1977년5월9일 南北統一 紀元을 위해 청동대불(阿彌陀佛)을 太祖山 中峯에 봉안(奉安)하고, 아래의 大作佛寺를 통해 覺願寺는 太祖山의 風光과 僧伽의 調和속에 祈禱道場으로서그 연륜(年輪)을 더해가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를 탐구(探究)하고 修行精進과 불교대학(佛敎大學) 運營을 通해 信徒의 체계적 (體係的)敎育과 社會奉仕活動을 통한 포교(布敎)등 佛敎문화창..
玉浦 (海戰全勝地) 옥포해전전승지 (玉浦海戰全勝地)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泰山같이 沈着하게 行動하라" 옥포공원 (玉浦公園) 壬辰倭亂 發發 以後 忠武公 李舜臣 將軍이 첫 勝戰한 玉浦海戰을 記念하고 忠武公 精神을 後世에 길이 係承하기 위해 유서 깊은 玉浦灣 이 내려다 보이는 玉浦洞 山1番地 일대에 33,037坪 規模로 造成한 記念公園이다. 1991년 12월에 起工式을 가지고 높이 30m의 記念塔과 參拜團, 玉浦樓, 八角亭, 展示館 등을 建立해 1996년 6월에 竣工하였다. 玉浦樓에 오르면 正面으로 보이는 玉浦灣 의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 옥포해전 (玉浦海戰) 李舜臣 將軍이 타고 있던 板屋船上에 前方의 斥候船으로부터 玉浦船艙에 敵船이 있음을 알리는 神機箭이 날아 들었다. 李舜臣 將軍은 여러 將兵들에게 敵船의 發見을 알림과..
伽倻山海印寺 해인사 (海印寺) 海印寺는 新羅時代에 그 도도한 華嚴宗의 精神的인 基盤을 擴充하고 宣揚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伽藍이다. 華嚴宗의 근본 慶典인 華嚴經은 4세기 무렵에 中央아시아에서 成立된 代僧 慶典의 最高峯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東洋文化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慶典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句節이 나오는데, 海印寺 이름은 바로 이 '海印三昧'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사 (海印寺) 新羅伽倻山海印寺선안주원벽기 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伽倻山海印寺固積〉에 의하면, 신림(神林)의 弟子인 순응(順應)이 766년(惠空왕 2) 中國에 건너가서 法을 傳授받고 歸國한 뒤 802년(애장왕 3) 伽倻山에 海印寺를 創建하다가 갑자기 죽자 이정(利貞)이 그의..
頂竹山傳燈寺 전등사 (傳燈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교구 本寺인 曹溪寺의 末寺이다. 중창기문(重創記文)에는 381년(小獸林王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創建한 절로, 1266년(원종 7)에 重創된 이래 3, 4차례의 重修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記錄에 의하면 現存하는 우리나라 寺刹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確實하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創建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1282년(忠烈王 8) 忠烈王의 비인 정화公主가 僧侶 인기(印奇)를 中國 宋나라에 보내 大藏經을 가져오게 하고, 이 大藏經과 함께 옥등(玉燈)을 이 절에 獻納한 後로 傳燈寺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現在 이 옥등은 傳하지 않고 있다. 1337(忠肅王 6), 1341년(忠惠王 2)에 각각 重修되었다고 하나 당시 傳燈寺의 歷史..
俗離山法住寺 법주사 (法住寺) 553년(眞興王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創建했으며, 法住寺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佛經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說話에서 由來된 것이다. 776년(惠恭王 12)에 金山寺를 創建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重創했고 그의 弟子 영심(永深) 등에 의해 彌勒信仰 의 衆心道場이 되었다. 그후 法住寺는 王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重修를 거쳐 60여 개의 建物과 70여 개의 庵子를 갖춘 大刹이 되었다. 高麗 肅宗이 1101년 그의 아우 大覺國師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僧侶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規模를 짐작할 수 있으며, 朝鮮時代에 太祖와 世祖도 이곳에서 法會를 열었다고 傳한다. 壬辰倭亂으로 모든 全閣이 消失된 것을 1624년(仁祖 ..
飛龍山長安寺 비룡산장안사 (飛龍山長安寺) 天上의 定氣 서린 곳에 비룡(飛龍)이 꿈틀거리는 長安寺. 千年 新羅에 鶴이 춤을 추듯 뭇 峰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飛龍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頂上 가까이에 長安寺가 있다. 新羅가 三國을 統一한 뒤 國泰民安을 念願하여 全國 세 곳의 名山에 長安寺를 세웠는데, 金剛山 長安寺, 梁山 長安寺, 그리고 國土의 中間인 이곳 龍宮面 龍宮理 飛龍山 長安寺가 그 하나이다. 1300여년의 오랜 歷史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古刹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의 장안사(長安寺)는 허물어질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로 全國을 行脚하던 중 이곳 長安寺의 빼어난 山勢를 ..
鳳凰山浮石寺 부석사 (浮石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6교구 本社인 고운사(孤雲寺)의 末寺이다. 〈三國史記〉·〈三國遺事〉에 의하면 義湘大師가 新羅 文武王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創建하고 華嚴宗을 널리 傳했다고 한다.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義湘과 선묘, 浮石寺 創建에 관한 說話가 자세히 적혀 있다. 高麗時代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浮石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義湘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華嚴宗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名稱에서 由來된 것이다. 義湘 以後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新羅 武烈王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高僧들이 排出되었다. 晩年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大藏經을 印刷했는데..
德崇山修德寺 덕숭산수덕사 (德崇山修德寺) 文獻에 나타난 百濟 寺刹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寺) 등 12개 寺刹이 傳하지만 修德寺만이 唯一하게 오늘날까지 그 命脈을 維持하고 있다. 百濟寺刹인 修德寺의 創建에 관한 正確한 文獻 記錄은 現在 남아있지 않으나, 學界에서는 代替的으로 百濟 위덕왕(威德王 ,554~597) 在位시에 創建된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또한 修德寺 境內 옛 절터에서 發見된 百濟瓦當은 百濟時代 창건설을 傍證할 수 있는 資料이다. 文獻에 修德寺가 最初로 登場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百濟의 高僧 혜현(惠現)이 修德寺에서 主席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