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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歷 史 物

扶餘 (扶蘇山城)

(扶餘扶蘇山城)


 

白馬江 南쪽 扶蘇山을 감싸고 쌓은 山城으로 泗沘時代의 都城 이다.『三國史記』「百濟本記」에는 泗沘城· 所扶理城으로 記錄되어 있으나, 城이 位置한 山의 이름을 따서 扶蘇山城이라 부른다. 熊津(지금의 公州)에서 泗沘(지금의 扶餘)로 首道를 옮기던 時期인 百濟 成王 16년(538)에 王宮을 守護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東城王 22년(500)경에 이미 山 頂上을 둘러쌓은 테뫼  식 山城이 있던 것을 武王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完成한 것으로 짐작되어 百濟 城郭 發達史를  보여주는데 城郭의 形式은 山봉우리를 重心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混合된 複合式 山城이다. 東·西·南門 터가 남아 있으며, 北門터에는 金江으로 向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水口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부소산성

(扶蘇山城)

 

史蹟 제5호. 둘레 2,200m, 面積 약 74만㎡. 扶餘 西쪽을 반달 模樣으로 휘어감으며 흐르는 白馬江에 접해 있는 扶蘇山의 山城을 中心으로 테뫼식 山城을 1차로 築造하고, 다시 그 周圍에 포곡식 山城을 築造한 複合式 山城이다. 〈三國史記〉 百濟本記에는 泗沘城· 所夫里城으로 記錄되어 있다. 이곳은 538년(成王 16) 熊津:지금의 公州)에서 泗沘(지금의 扶餘)로 遷都하여 滅亡할 때까지 123년 동안 國道를 守護한 中心山城이었다

  

 

계백

[Gyebaek]

 

660년  羅唐聯合軍이 百濟를 代代的으로 侵攻하자, 唐慌한 百濟 조정은 羅唐聯合軍을 成功的으로 防禦하지 못하였고, 결국 계백으로 하여금 5,000여명의 決死隊를 이끌게 하였다. 계백은 出征하기 前 그 妻子食이 唐과 新羅軍의 奴隸가 되지 않도록 모두 죽였다. 그리고 月나라 王 九千이 5千 軍事로 오나라 70萬을 쳐부순 古史를 豫로 들어 軍事들을 激勵하였다.계백과 5,000여명의 決死隊는 黃山伐에서 新羅軍을 네 차례 몰아냈으나 結局 重過不的으로 다섯 번째 戰鬪에서 敗하였고 그 自身도 戰死하였다. 黃山伐 戰鬪에서 敗北한 百濟는 結局  滅亡하고 말았다.扶餘의 浮山書院과 忠谷書院에 祭享되었다.

 

 

영일루

(迎日樓)

 

지금은 迎日樓와 半月樓가 있다. 扶蘇山에서 가장 높은 표고 106m 지점 泗沘樓 부근에 약 700m 둘레의 테뫼식 山城이 있는데, 여기에는 泗沘樓와 望樓址가 남아 있다.

 

 

군창지

(軍倉址)

 

1915년 불에 탄 쌀이 發見된 軍倉 자리와 百濟式 伽藍의 방형 建物터가 있으며, 劉仁願紀功碑도 이곳에 있다가 扶餘博物館으로 옮겨졌다. 지금은 迎日樓와 半月樓가 있다. 扶蘇山에서 가장 높은 표고 106m 지점 泗沘樓 부근에 약 700m 둘레의 테뫼식 山城이 있는데, 여기에는 泗沘樓와 望樓址가 남아 있다. 이 두 테뫼식 山城의 外廓線을 포곡식 山城이 連結하고 있어 百濟의 독특한 山城樣式을 보여주고 있다. 城內에는 東·西·南門지가 있으며, 北쪽 골짜기에 北門과 水口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낙화암

(落花巖)

 

羅唐聯合軍이 百濟를 侵略하자 百濟의 3,000 宮女가 白馬江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傳說이 傳하는 곳이다. 百濟 滅亡 以後 墮死巖을 美化하여 落花巖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三國遺事〉에 따르면 百濟古記에는 扶餘城 北쪽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 江물을 임하였는데 義慈王과 모든 後宮이 함께 禍를 면치 못할 줄 알고 차라리 自殺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고 서로 이끌고 와서 江에 投信하여 죽었다 하여 墮死巖이라 하였다고 傳해진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義慈王은  熊津城에서 降伏한 後, 唐에 押送된 後 病으로 죽었다. 3,000 宮女도 扶餘城이 陷落된 後 唐의 軍事들을 被害 逃亡치던 兒女子들이 었다는 說이 說得力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백마강

(白馬江)

 

四泚河· 白江· 馬江 이라고도 한다. 그 範圍는 正確하지 않지만 靑陽郡 長平面과 扶餘郡 硅巖面 境界를 따라 흐르는 錦江川:또는 金剛川이 金剛에 合流하는 地點에서부터 扶餘郡 石城面 위쪽까지를 白馬江이라 부른다. 扶蘇山을 끼고 北東쪽에서 南西쪽으로 심하게 曲流하는 사행河川이다. 扶蘇山의 北쪽 사면을 侵食하여 絶壁을 이루고 扶餘邑  南部 一帶에 넓은 堆積沙面을 發達시켰다. 攻擊砂面인 扶蘇山에는 落花巖이라 하는 높이 약 10m 가량의 浸蝕崖가 있으며, 落花巖 上流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江 가운데 釣龍臺라 하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천년송

(千年松)

 

 

백화정

(白花亭)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傳說이 傳한다. 唐나라 將軍 蘇定方이 敵을 쫓아 金江을 건너려 할 때 江물 속에 蛟龍이 妨害하므로 蛟龍이 좋아하는 흰 말을 미끼로 釣龍臺 바위 위에서 잡아올렸다고 하여 江 이름을 白馬江, 낚시했던 바위를 釣龍臺라 했다고 한다. 663년(文武王 3)에 百濟와 羅唐聯合軍과 日本의 水軍이 激戰을 벌였던 白村江의 싸움터가 白馬江이라는 說이 있다. 白馬江의 南部에는 넓은 충적지가 形成되어 있으나 河上이 높아 氾濫이 잦은 洪水 常習地域이다. 따라서 洪水被害를 막고 경지의 效率性을 增大시켜야 하며, 白馬江의 自然景觀은 百濟權의 文化觀光資源과 함께 開發되어야 할 것이다.

 

 

바위면에 '落花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바위 위에는 百花亭 이라는 亭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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