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 史 旅 行 2 (298) 썸네일형 리스트형 俗離山法住寺 법주사 (法住寺) 553년(眞興王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創建했으며, 法住寺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佛經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說話에서 由來된 것이다. 776년(惠恭王 12)에 金山寺를 創建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重創했고 그의 弟子 영심(永深) 등에 의해 彌勒信仰 의 衆心道場이 되었다. 그후 法住寺는 王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重修를 거쳐 60여 개의 建物과 70여 개의 庵子를 갖춘 大刹이 되었다. 高麗 肅宗이 1101년 그의 아우 大覺國師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僧侶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規模를 짐작할 수 있으며, 朝鮮時代에 太祖와 世祖도 이곳에서 法會를 열었다고 傳한다. 壬辰倭亂으로 모든 全閣이 消失된 것을 1624년(仁.. 飛龍山長安寺 비룡산장안사(飛龍山長安寺) 天上의 定氣 서린 곳에 비룡(飛龍)이 꿈틀거리는 長安寺. 千年 新羅에 鶴이 춤을 추듯 뭇 峰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飛龍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頂上 가까이에 長安寺가 있다. 新羅가 三國을 統一한 뒤 國泰民安을 念願하여 全國 세 곳의 名山에 長安寺를 세웠는데, 金剛山 長安寺, 梁山 長安寺, 그리고 國土의 中間인 이곳 龍宮面 龍宮理 飛龍山 長安寺가 그 하나이다. 1300여년의 오랜 歷史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古刹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의 장안사(長安寺)는 허물어질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로 全國을 行脚하던 중 이곳 長安寺의 빼어난 山勢를.. 鳳凰山浮石寺 부석사(浮石寺) 大韓佛敎曹溪宗 제16교구 本社인 고운사(孤雲寺)의 末寺이다. 〈三國史記〉·〈三國遺事〉에 의하면 義湘大師가 新羅 文武王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創建하고 華嚴宗을 널리 傳했다고 한다.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義湘과 선묘, 浮石寺 創建에 관한 說話가 자세히 적혀 있다. 高麗時代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浮石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義湘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華嚴宗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名稱에서 由來된 것이다. 義湘 以後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新羅 武烈王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高僧들이 排出되었다. 晩年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大藏經을 印刷했는.. 德崇山修德寺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 文獻에 나타난 百濟 寺刹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寺) 등 12개 寺刹이 傳하지만 修德寺만이 唯一하게 오늘날까지 그 命脈을 維持하고 있다. 百濟寺刹인 修德寺의 創建에 관한 正確한 文獻 記錄은 現在 남아있지 않으나, 學界에서는 代替的으로 百濟 위덕왕(威德王 ,554~597) 在位시에 創建된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또한 修德寺 境內 옛 절터에서 發見된 百濟瓦當은 百濟時代 창건설을 傍證할 수 있는 資料이다. 文獻에 修德寺가 最初로 登場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百濟의 高僧 혜현(惠現)이 修德寺에서 主席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 牙山/顯忠祠 현충사(顯忠祠) 史蹟 제155호. 1704년(肅宗 30) 牙山산의 地方 儒生들이 忠武公 李舜臣의 戰功을 기리기 위해 祠堂建立을 上訴함에 따라 1706년에 建立했으며, 그 이듬해 '顯忠祠'로 賜額되었다. 1865년(高宗 2) 大院君의 書院撤廢令 以後 荒廢化되었다가, 1932년 6월 李忠武公遺跡保存會와 東亞日報社가 誠金을 모아 重建하여 影幀을 奉安 했다. 1962년 3월 1일 忠淸南道에서 境內를 擴張하고, 遺物展示館을 新築했다. 1967년 3월 18일 顯忠祠를 史蹟 제155호로 指定했고, 이때 保護區域의 面積은 10萬 6,577坪이었다. 그후 1973년 5월 顯忠祠 史蹟保護區域을 21萬 6,137坪으로 擴張·指定했으며, 1974년 4월 42萬 4,880坪으로 다시 擴張했다. 경역면적은 現在 16萬 3,0.. 江陵 (烏竹軒) 오죽헌(烏竹軒) 寶物 제165호. 이 建物은 1452년(文宗 2)에 登第하여 大司憲까지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古宅에 딸린 別堂으로, 1536년(中宗 31) 李珥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平面構造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일(一)자집이며 大靑·온돌방·툇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李珥가 태어난 房은 몽룡실(夢龍室)이라고 한다. 커다란 長臺石으로 쌓은 斷層 기단 위에 막돌礎石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結構했으며,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익공(翼工)으로 處理한 이익공(二翼工)집이다. 앞면에는 띠살窓戶를, 옆면에는 骨板門을 달았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 建物은 韓國住宅史에서 現存하는 유구(遺構)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重要하다. 그러나 房과 大靑으로만 構成된 別.. 江陵 (船橋莊) 선교장(船橋莊) 重要民俗資料 제5호. 烏竹軒으로부터 東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位置해 있다. 주위가 시루봉에서 뻗어내린 부드러운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家屋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며, 멀리 案山과 朝山이 보이는 明堂에 자리잡고 있다. 孝寧大君의 11대 孫인 李乃蕃이 집터를 잡은 후 사랑채인 悅話堂을 비롯하여 活來亭 東·西 別堂 등이 後孫들에 의해 지어졌다. 6·25 戰爭 以後 一部 建物이 流失되었으나 안채·사랑채·東別堂·西別堂·家廟·행랑채를 비롯하여 亭子까지 갖추고 있어 朝鮮時代 四大夫의 生活相을 엿볼 수 있는 代表的인 住宅이다 강릉선교장(江陵船橋莊) 집의 配置는 西南向이며 前面에 긴 행랑채가 있다. 행랑채에는 中央部와 東쪽 끝에 門이 있는데, 하나는 솟을 大門이고 다른 하나는 平大門이다.. 雪岳山洛山寺 낙산사(洛山寺) 大韓佛敎曹溪宗 제3敎區 本社인 신흥사(神興寺)의 末寺로서 海邊에 位置하며 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힌다. 洛山은 산스크리트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由來한 말이며 觀世音菩薩이 항상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觀音祈禱 道場의 하나인 洛山寺는 671년(文武王 11) 의상(義湘)이 創建했다고 傳한다. 洛山寺 創建 以後 이 절과 關聯된 〈三國遺事〉의 記錄으로는 원효(元曉), 조신(調信), 사굴산파의 개산조 범일(梵日)의 이야기 등이 傳하고 있다. 이 절은 858년 범일에 의해 重建된 後 여러 차례 불타 重建이 거듭되었으나 6·25戰爭 때 完全히 消失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復舊해서 원통보전(圓通寶殿)·종각(鐘閣)·일주문(一柱門)·선당(禪堂)·승당(僧堂)·객실(客.. 이전 1 ··· 33 34 35 36 37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