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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營 (朴景利記念館) 박경리기념관 (朴景利記念館) 統營은 多島海 附近에 있는 조촐한 漁港이다. 釜山과 麗水사이를 來往하는 航路의 中間支店으로서의 젊은이들은 朝鮮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大部分의 男子들이 바다에 나가서 生鮮 배나 찔러먹고사는 이 고장의 劣惡하고 거친 風土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手工業 (갓,소반,경대,문갑,두석장,나전칠기등 12공방)이 發達한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빛이 고운탓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약국의딸들 이 作品은 한말에서 日帝强占基에 이르기까지 地方의 유족한 한 家庭의 欲望과 運命의 얽힘에 沒落해가는 科程을 그리고 있다. 특히 집안의 沒落이라는 悲劇을 事實的으로 照明함으로써 欲望의 엇갈림과 부(富)가 新興世代로 移動하는 社會的 變動과 女性의 運命이 한데 어울려 ..
江陵 (鏡浦臺海水浴場) 경포대해수욕장 (鏡浦臺海水浴場) 白沙場길이 6㎞, 觀光客 受容能力 15만 名으로 規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海水浴場이다. 물이 맑고 모래가 희고 깨끗하며, 약 4㎞에 이르는 白沙場에 海松林이 屛風처럼 둘러 있다. 특히 곳곳에 핀 海棠花가 아름다운 運置를 더해 주며, 海岸쪽 십리바위와 오리바위 위로 떠오르는 해돋이와 달맞이를 보는 光景은 觀光客을 더욱 魅惑시킨다. 現在 鏡浦臺와 海水浴場 일대는 道立公園으로 指定되어 있다. 觀光호텔을 비롯한 宿泊施設 및 各種 慰樂施設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東海高速道路가 海水浴場 옆을 지나고 있어서 交通이 便利하다. 해마다 여름철에는 하루 平均 10만 명 以上의 海水浴客이 모여든다. 경포대해수욕장 (鏡浦臺海水浴場) 江原道 江陵市 北東쪽에 있는 鏡浦臺와 ..
江陵 (船橋莊) 선교장 (船橋莊) 重要民俗資料 제5호. 烏竹軒으로부터 東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位置해 있다. 周圍가 시루봉에서 뻗어내린 부드러운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家屋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며, 멀리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이 보이는 明堂에 자리잡고 있다. 孝寧大君의 11대손인 이내번(李乃蕃)이 집터를 잡은 후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1815)을 비롯하여 활래정(活來亭:1816), 東·西別堂 등이 後孫들에 의해 지어졌다. 6·25戰爭 以後 一部 建物이 遺失되었으나 안채·사랑채·東別堂·西別堂·家廟·行廊채를 비롯하여 亭子까지 갖추고 있어 朝鮮時代 士大夫의 生活相을 엿볼 수 있는 代表的인 住宅이다 강릉선교장 (江陵船橋莊) 집의 配置는 西南向이며 全面에 긴 행랑채가 있다. 행랑채에는 中央部와 東쪽 끝에 門..
江陵 (許蘭雪軒) 허균,허난설헌기념관 (許均,許蘭雪軒記念館) 江陵 바닷가 泗川과 이어진 蛟龍山 正氣를 타고난 蛟山 許筠과 蘭草香과 눈처럼 깨끗한 性品을 지닌 난 雪軒 許楚姬는 聞香 江陵이 낳은 오누이 文人 이다. 梅泉 皇憲은 이들과 虛封을 가리켜 草堂家門에 세구루 寶配로운 나무 제일의 神仙在住는 "景樊에 속하였네" 라고 찬국조제가 시에서 稱頌하였는데 특히 그중 蘭雪軒의 글재주가 가장 돋보여 詩仙在住를 닮았다고 하였다. 오누이는 아버지 許曄과 장남 虛聲 그리고 虛封과 함께 허씨 5 文章家를 이루어 글 잘짓고 學問하는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江陵땅 草堂에서 살면서 鏡捕湖의 아름다운 風光을 探勝하여 시를 읊고 文學性을 키워 나갔다. 특히 막내 許筠의 시 "鏡浦湖를 그리워하며" 에서 내집은 鏡浦湖 西쪽에 있으니 바위돌 골짜기들이 回..
江陵 (烏竹軒) 오죽헌 (烏竹軒) 寶物 제165호. 이 建物은 1452년(文宗 2)에 登第하여 大司憲까지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古宅에 딸린 別堂으로, 1536년(中宗 31) 李珥가 태어난 遺緖 깊은 곳이다. 平面構造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일(一)자집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이가 태어난 방은 몽룡실(夢龍室)이라고 한다. 커다란 長臺石으로 쌓은 단층 기단 위에 막돌礎石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결구했으며,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익공(翼工)으로 처리한 이익공(二翼工)집이다. 앞면에는 띠살창호를, 옆면에는 골판문을 달았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 建物은 韓國住宅史에서 現存하는 유구(遺構)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重要하다. 그러나 방과 대청으로만 構成된 別..
束草 (大祚榮撮影場) 대조영 (大祚榮) 王號는 고왕(高王). 아버지는 걸걸중상(乞乞仲象)이다. 그러나 그의 家系나 高句麗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社會的 地位에 대해서는 記錄이 一致하지 않는다. 〈구당서 舊唐書〉 발해전(渤海傳)에는 그를 高句麗人의 別種이라고 했고, 〈신당서 新唐書〉 渤海展에는 元來 속말말갈(粟末靺鞨)의 族屬인데 나중에 高句麗에 附屬되었다고 했으며, 유득공(柳得恭)의 〈발해고 渤海考〉를 비롯한 우리의 仙人들은 모두 그를 高句麗人으로 보고 있다. 안시성 (安市城) 水나라 에 이어 中國을 統一한 唐나라는 숙적(宿敵)인 高句麗의 征伐에 나섰다.이세적(李世勣) 장량(張亮) 등이 指揮하는 唐의 大軍은 寶藏王 4년(645년) 봄 요수(遼水)를 건너 玄道城에 이르렀다. 高句麗는 이 一帶의 城을 굳게 지키며 對抗했으나, 唐은 개..
漣川 (臨津나루) 임진나루 (臨津나루) 거북선에 관한 記錄은 朝鮮 初期의 太宗實錄에 처음 보이기 始作한다. 1413년(太宗 13)에 "王이 壬辰江 나루를 지나다가 龜船과 倭船으로 꾸민 배가 海戰演習을 하는 模樣을 보았다"라는 句節이 있고, 또 1415년(太宗 15)에는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龜船의 戰法은 많은 敵과 衝突하더라도 敵이 해칠 수가 없으니 決勝의 良策이라 할 수 있으며, 더욱 堅固하고 精巧하게 만들게 하여 全勝의 道具로 갖추어야 한다"는 뜻을 上訴하고 있다. 壬辰倭亂 당시 李舜臣에 의하여 創作, 構思된 거북선이다. 임진나루 壬辰나루는 옛날 漢陽에서 松島를 거쳐 義州로 가는 國道로서 交通이 빈번한 곳 이었다. 여기에서 뱃사공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을 相對하다 보니 옷차림과 擧動만 보아도 어떠한 사..
雪岳山(白潭寺) 백담사 (雪岳山白潭寺) 雪嶽山 심원사 사적기(雪嶽山尋源寺寺積記)와 韓龍雲의 백담사사적기(百潭寺寺積記)에 의하면 西紀 647년 新羅 제28 대 眞德女王 元年에 煮醬律師가 雪嶽山 港界里에 限界寺로 創建하고 阿彌陀三尊불을 造成, 奉安하였다 한게사로 創建後 775년 (英祖51년)까지 운훙사,尋源寺,선구사,영취사,로 바뀌다가 1457년(世祖3년)과 1783 (正祖7년) 에 최붕과 운담이 百潭寺라 改稱하여 現在까지 傳하고 있다. 傳說에 의하면 百潭寺라는 寺刹의 이름은 雪嶽山 大靑峯에서 절까지 담(潭)이 백개가 있는 支店에 寺刹을 세운대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百潭寺는 內雪岳의 아주 깊은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찿기 힘든 修行處 였다 백담사 (白潭寺) 1775년(英祖 51)에 다시 불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