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船橋莊)
重要民俗資料 제5호. 烏竹軒으로부터 東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位置해 있다. 周圍가 시루봉에서 뻗어내린 부드러운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家屋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며, 멀리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이 보이는 明堂에 자리잡고 있다. 孝寧大君의 11대손인 이내번(李乃蕃)이 집터를 잡은 후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1815)을 비롯하여 활래정(活來亭:1816), 東·西別堂 등이 後孫들에 의해 지어졌다. 6·25戰爭 以後 一部 建物이 遺失되었으나 안채·사랑채·東別堂·西別堂·家廟·行廊채를 비롯하여 亭子까지 갖추고 있어 朝鮮時代 士大夫의 生活相을 엿볼 수 있는 代表的인 住宅이다
강릉선교장
(江陵船橋莊)
집의 配置는 西南向이며 全面에 긴 행랑채가 있다. 행랑채에는 中央部와 東쪽 끝에 門이 있는데, 하나는 솟을大門이고 다른 하나는 平大門이다. 솟을大門을 들어서면 西別堂과 사랑채인 悅話堂으로 通한다. 悅話堂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크기로 거의 一字形 平面이며, 조금 돌출된 작은 대청은 누마루형식을 취하고 있어 運置가 있다. 특히 사랑채 앞쪽에 夕陽을 가리기 위해 遮陽을 假說했는데, 이것은 당시의 住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構造이다.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 순으로 構成되어 있으며, 각 방에는 반침이 딸려 있어 이불 등 살림도구를 넣어 둘 수 있다.
안채
1703년 船橋莊建物중 最初로 建立로서 이씨가의 큰살림을 맡은 女人들의 居處이다. 안채 부엌 앞에 'ㄱ'자형으로 位置하는데 主人이 家族과 함께 生活할 수 있는 空間이다. 또한 행랑채 바깥 마당에는 넓은 방지(方池)를 파고, 못가에 亭子인 活來亭을 세웠다. 방지 가운데에는 삼신선산(三神仙山)을 모방한 가산(假山)을 만들어 老松을 심었다. 活來亭은 연못 속에 돌기둥을 세우고 建物의 一部를 누마루로 만듦으로써 마치 물위에 떠있는 형상으로, 周邊의 風景과 함께 先朝들의 뛰어난 조형미와 조원(造園)技法을 엿볼 수 있다.
동별당
집안의 잔치나 손님맞이에 주로 使用 되었고 방과 마루의 모든벽체가 門으로 되어있어서 豁達하고 開放的인 船橋莊 家族등의 性品과 面貌를 보여준다.
열화당
(悅話堂)
1815년에 建立한 建物로서 船橋莊 주인 男子의 居處이다 一家 親戚이 이곳에서 情談과 기쁨을 함께나누자 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建物앞 테라스는 朝鮮末期 러시아式의 建物로 러시아 公使館에서 膳物로 지어준것이다.
행랑채
身分이 낮은 손님과 主人의 심부름을 하는 執事들의 居處로 使用되었으며 안채로가는 안대문. 사랑채로가는 큰대문이 따로있어서 男女有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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