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坡州三陵(章順王后.孝純王后.恭惠王后)

공.순.영릉

(恭,順,永陵)

 

 

파주삼릉(坡州三陵)은  京畿道 坡州市 조리읍에 位置한 朝鮮時代 王陵群이다. 1970년 5월 26일  史蹟 제205호로 指定되었다.  王陵群의 앞머리를 따서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린다.

 

 

 

(齋室)

 

齋室은 平常時 영(令:종5품) 또는 참봉(參奉:종9품)등이 陵域의 管理를 위해 勤務하는곳이며. 祭禮時는 祭冠들이 머무르면서 재례를 準備하는 空間이다. 主要 施設은 執務室인 再室 외에 祭禮를 準備하는 空間이다. 主要施設은 執務室인 再室 외에 향(香)을 保管하는 安享廳,제기(祭器)를 保管하는 祭基庫, 行廊채 등이 이었으며, 丹靑은 하지 않았다.

 

 

홍살문

(紅箭門)

 

홍살문은 王陵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建築的 裝置로 이곳을 지날때는 몸과 마음가짐을 嚴肅 하고 여기에 모셔진 분들에게 敬虔한 禮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혹은 홍전문 (紅箭門)이라고도 한다.

 

 

정자각

(丁子閣)

 

 

배위

(拜位)

 

홍살문옆 한평정도 땅에 돌을깔아 놓은 곳으로 王이나  祭冠이 절을 하는곳이다. 판위 (板位) 어배석 (御拜石)망릉위 (望陵位)라고도 한다. 

 

 

신 계

(神階) 

 

恭陵의 信戒의 무늬가 아름답고 鮮明하게 남아있다.

 

 

비 각

(碑閣)

 

碑石이나 神道碑를 세워둔 곳으로 신도비 (神道碑)는 主人의 業績을  記錄한 碑石을 말한다.

 

 

 

조선국 : 朝鮮國

 장순왕후공릉 : 章順王后恭陵 

 

 

공 릉

(恭陵)

 

恭陵은 조선 제8대 예종(睿宗)의 원비 (元妃) 장순왕후 (章順王后) 한씨 (韓氏 1445 ~ 1461)의 陵이다. 章順王后는 상당부원군 (上黨府院君) 한명회 (韓明澮)의 딸로 세종 (世宗) 27년 (1445)에 태어나 세조 (世祖) 5년 (1460)에 世子嬪이 되었고 인성대군 (仁城大君)을 낳았다. 그 이듬해 궁밖에서 17세로 돌아가셨다. 성종 (成宗) 3년 (1472)에 王后로 追尊되었다

 

 

장순왕후

(章順王后)

 

본관 청주(淸州), 성 한(韓). 領議政副使 한기(韓起)의 아들 명회(明澮)와, 假晶代父 민대생(閔大生)의 딸 餘興 閔氏 사이에서 셋째로 出生하였다. 1460년 세자빈(世子嬪)으로 簡擇되어 당시 世子였던  睿宗과 嘉禮를 올리고 夫婦가 되었으니 이 때 나이가 16살이었다. 貞淑한 性品에 아름다운 容貌로 시아버지 世祖의 寵愛를 받았다고 한다. 冊奉 이듬해인 1461년 음력 11월, 王室의 嫡統인 元孫(睿宗의 장남인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같은 해 陰曆 12월에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열 일곱의 나이에 散兵으로 撓折했다.  一說에는 그녀와 그녀의 同生 恭惠王后, 媤叔  疑驚世子, 부군(夫君) ‘睿宗’과 아들 ‘引性大君’ 등 世祖의 子孫들이 이른 나이에 腰絶한 것이 단종(端宗)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저주 때문이라고도 한다.

 

 

홍살문

(紅箭門)

 

紅箭門은 王陵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建築的 裝置로 이곳을 지날때는 몸과 마음가짐을 嚴肅히 하고 여기에 모셔진 분들에게 敬虔한 禮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혹은 홍전문 (紅箭門)이라고도 한다.

 

 

배 위

(拜位)

 

紅箭門옆 한평정도 땅에 돌을깔아 놓은 곳으로 王이나 祭冠이 절을 하는곳이다. 판위 (板位) 어배석 (御拜石)망릉위 (望陵位)라고도 한다.

 

 

비 각

(碑閣)

 

碑石이나 神道碑를 세워둔 곳으로 신도비 (神道碑)는 主人의 業績을 記錄한 碑石을 말한다.

 

 

조선국 : 朝鮮國

진종대왕영릉 : 眞宗大王永陵

효순왕후부좌 : 孝順王后祔左

 

 

 

조선국 : 朝鮮國

효장세자묘 : 孝章世子墓

효순현빈부좌 : 孝純賢嬪祔左

 

 

영 릉

(永陵)

 

永陵은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와 그의 妃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 조씨 (趙氏 1715 ~ 1751)의 陵이다. 鎭宗은 영조 (英祖)원년 (1725)에 世子가 되었고 1727년에 婚姻하였으나 그 이듬해 10세로 昌慶宮에서 돌아가셨다. 孝順召皇后는 풍릉부원군 (豊陵府院君) 조문명 (趙文命)의 딸로 영조 (英祖) 3년 (1727)에 世子嬪이 되었으나 英祖 27년 (1751) 37세로 昌慶宮에서 돌아가셨다. 정조 (正祖)가 王位에 오르자 (1776)王后로 追尊하였으며 순종 (純宗) 융희 (隆熙) 2년 (1908) 孝順小王后로 推尊되었다.

 

 

효순소황후

(孝純昭皇后)

 

1715년 조문명의 딸로 태어났으며, 1727년 英祖의 長男 孝章世子와 嘉禮를 올렸다. 그러나 1728년 孝章世子가 10세의 어린 나이에 撓折하였으므로 後事는 없다. 1735 현빈(賢嬪)에 奉해졌고 1751년 病死하였다. 詩號는 효순(孝純)이며 그뒤 男便 眞宗이 英祖에 의해 正祖를 樣子로 삼음에 따라 승통世子嬪의 號를 얻었다가 正祖 즉위 후 王妃로 追崇되어 孝純賢嬪에서 孝純王后가 되었다. 1899년 大韓帝國때 皇后로 追尊되어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가 되었다.

 

 

정자각

(丁子閣)

 

王陵 앞에 祭祀를 지내기 위하여 封墳 앞에 丁자 模樣으로 지은 집.

 

 

비 각

(碑閣)

 

碑石이나 神道碑를 세워둔 곳으로 신도비 (神道碑)는 主人의 業績을 記錄한 碑石을 말한다.

 

 

조선국 : 朝鮮國

진종대왕영릉 : 眞宗大王永陵

효순왕후부좌 : 孝順王后祔左

 

 

 

조선국 : 朝鮮國

효장세자묘 : 孝章世子墓

효순현빈부좌 : 孝純賢嬪祔左

 

 

 

조선국 : 朝鮮國

공혜왕후순릉 : 恭惠王后順陵

 

 

순 릉

(順陵)

 

順陵은 朝鮮 제9대 성종 (成宗)의 王妃 공혜왕후 (恭惠王后) 한씨 (韓氏 1456 ~ 1474)의 陵이다. 恭惠王后는 상당부원군 (上黨府院君) 한명회 (韓明澮)의 딸로 세조 (世祖) 1년 (1456)에 태어나 世祖 12년 (1467)에 婚姻하고 成宗이 王位에 오르자 (1469) 王妃가 되었다. 成宗 5년 (1474) 春秋 19세로 昌德宮에서 子孫없이 돌아가셨다.

 

 

혜왕후

(恭惠王后)

 

공혜왕후 (恭惠王后) 世祖대의 功臣 上黨府院君 韓明澮의 딸로 章順王后와 姉妹 사이다. 1467년 12세나이로 자을산군과 嘉禮를 올려 天安郡 夫人이 되었다. 1469년 成宗이 卽位하자 王妃로 冊奉되었으나 1474년 子女없이 19세 나이로 僧下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