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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泰陵 (文定王后)

(泰陵)

 

 

泰陵은 朝鮮 제11대 중종(中宗)의 계비(繼妃) 문정왕후 (文定王后 1501 ~ 1565)의 陵이다. 文定王后는 파산부원군 (坡山府院君) 윤지임 (尹之任)의 딸로 中宗 12년 (1517)에 王妃가 되었다. 王后는 명종(明宗)이 인종 (仁宗)의 뒤를 이어 12세의 어린나이로 王位에 오르자 王을 大新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王后가 나라를 다스린 8년 동안 윤원형 (尹元衡)등 王后와 親戚이 되는 臣下들이 權力을 잡고 나랏일을 左之右之 하였다. 한편 獨室한 佛敎信者이기도 했던 王后는 僧侶 보우 (普雨)를 信任하여 僧侶가 되는 試驗인 승과(僧科)를 設置 하는등 佛敎振興에 關心을 쏟았다. 그후 明宗 20년 91565)에 65세로 昌德宮 所德堂에서 돌아가셨다. 

 

 

 

문정왕후

(文定王后)

 

文定王后는 1501년 10월 22일 坡山府院君 尹之任의 딸로 태어났다. 中宗의 첫번째 繼妃 章敬王后가 仁宗을 낳은뒤 産後病으로 7일만에 僧下하자 2년 뒤인 17세에 王妃로 冊奉되었다. 당시 仁宗이 世子로 冊奉된 가운데 文定王后가 慶源大君 (明宗)을 낳자 旣存의 世子를 廢 하고 慶源大君을 世子로 冊奉하려는 小尹과 旣存世子를 지키려는 大尹간의 權力싸움이 調定을 어지럽게 하였다.  이 가운데 1544년 11월 15일 中宗이 僧下하고 仁宗이 卽位하여 大尹이 得勢하는걸로 다쟁이 一段落되는듯 싶었으나 仁宗이 在位 8개월만에 僧下하자 政權은 慶源大君의 어머니인 文定王后로 넘어왔다. 1545년 明宗이 12세  어린나이로 卽位하자 文定王后는 8년동안 垂簾聽政을 하면서 모든權力을 손에 쥐었다. 文定王后 오빠인 尹元衡을 포함한 小尹 一派는 大尹勢力을 除去하기위한 乙巳士禍를 일으켰으며 그후 良才驛 壁書事件으로 많은 사람들을 犧牲시켰다. 權勢를 누리던 文定王后는 1565년 4월 7일 昌德宮 所德堂에서 春秋 65세로 僧下 하였다.  

 

 

수렴청정

(垂簾聽政)

 

垂簾聽政에 대한 最初의 記錄은 高句麗 太祖大王이 7세의 나이로 卽位하자 太后가 攝政하였다는 三國史記의 記錄이다.1545년 明宗이 12세  어린나이로 卽位하자 文定王后는 8년동안 垂簾聽政을 하면서 모든權力을 손에 쥐었다. 나이 어린 王이 卽位했을 때 王의 어머니나 할머니, 또는 큰어머니나 작은어머니가 代理로 政治를 맡는 일을 말한다. 말의 語原은 王大妃가 男子인 臣下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王 의 뒤에서 발을 내리고 이야기를 듣던 데에서 비롯하였다. 嚴密히 말해 垂簾聽政과 攝政은 다르지만, 韓國에서는 攝政하는 사람이 女子이면 垂簾聽政으로 여긴다.

 

 

을사사화

(乙巳士禍)

 

朝鮮 明宗 卽位年 (1545)에 일어난 史禍, 仁宗이 죽자 새로 卽位한 明宗의 外叔인 소윤 (小尹)의 거두 尹元衡이 仁宗이 外叔인 대윤 (大尹)의 거두 尹任派를 몰아내는 課程에서 大尹派에 加擔했던 사림 (士林)이 크게 禍를 입었다. 中央官職에 進出했던 政治勢力을 勳舊派와 士林派로 나누는데, 이들 支配階級 內部의 葛藤은 주로 政治權力을 둘러싸고 展開되었다. 史禍는 士林派들이 勳舊派에 의하여 禍를 입은 事件들을 가리키며 '史林의 禍'의 준말이다. 1545년(明宗 즉위)의 乙巳士禍가 있다.

 

 

조선국  : 朝鮮國

 문정왕후태릉 : 文定王后泰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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