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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西五陵 (昭惠.安順.肅宗.仁顯.仁元.仁敬.貞聖)

(敬陵 昌陵 明陵 .翼陵.弘陵)

 

 

西五陵은 王室의 무덤이 集中的으로 造成되어있는 곳으로 陵墓의 形態 構成 모습이 多樣해 한 場所에서 朝鮮 王陵에 대한 理解를 높일수 있다. 아름다운 自然과 歷史가 어우러진 公園으로 山林길이 잘 造成되어 맑은 空氣를 마시며 산책을 즐길수 있다. 西五陵은 경릉 (昭惠王后),창릉 (安順王后),명릉 (肅宗,仁顯王后,仁元王后),익릉 (仁敬王后),홍릉 (貞聖王后)의 능이 모셔져 있어 五陵이라 한다.

 

 

 

수경원

(綏慶園)

 

綏慶園은 朝鮮 제21대 영조 (英祖)의 후궁(後宮)인 영빈 (映嬪) 이씨 (李氏)의 묘소이다. 映嬪李氏는 英祖 11년 (1735)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낳았으며 英祖 40년 (1764)에 69세로 돌아가셨다. 綏慶園은 元來 西大門區 新村에 있었으나 1968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대한 : 大韓

소유영빈수경원 : 昭裕映嬪綏慶園

 

 

영빈김씨

(寧嬪 金氏)

 

영빈 김씨(寧嬪 金氏, 1669년-1735년 陰曆 1월 12일)는 朝鮮 肅宗의 後宮으로 本官은 (신)安東이다. 청음 김상헌의 玄孫이며 領議政 김수항의 從孫女이다. 安東金氏 文政公(상헌)파로 김상헌의 曾孫인 聖泉父師 김창국과 그의 夫人인 全州李氏 사이의 4남 2녀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686년(肅宗 12년) 入闕, 그해 陰曆 3월 28일에 淑儀에 冊奉되어 노비 150명을 何事받았다.  肅宗의 다른 後宮인 禧嬪 장씨(張喜嬪)나 淑嬪 崔氏 등과는 달리 名文家의 女息으로 定式 簡擇되어 入宮한 後宮이었다. 그녀는 淑儀에 冊奉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5월 27일 소의(昭儀)로 진봉되고 곧이어 귀인(貴人)에 奉해졌다. 그러나 그녀의 집안이 仁顯王后와 密接한 關係에 있던 西人 집안이었던 탓에, 仁顯王后가 廢黜되면서 그녀도 같이 大闕에서 쫓겨났다.

 

 

익 릉

(翼陵)

 

翼陵은 操船 제19대 숙종 (肅宗)의 원비 (元妃) 인경왕후 (仁敬王后) 金氏 의 陵이다. 仁敬王后는 광성부원군 (光城府院君) 김만기의 딸로 현종 (顯宗) 12년 (1671)에 世子嬪이 되었으며 肅宗이 王位에 오르면서 (1674) 王妃가 되었다. 肅宗 6년 (1680)에 영희궁 회상전에서 20세에 돌아가셨다.

 

 

 

조선국  : 朝鮮國

 인경왕후익릉  : 仁敬王后翼陵 

 

 

인경왕후

(仁敬王后)

 

仁敬王后는 光城府院君 김만기의 딸로 1671년 11세때 世子嬪이 되었다가 1674년 肅宗이 卽位하면서 王妃가 되었다. 20세때 天然痘를 앓다가 世上을 떳다 슬하에 公主 둘을 두었으나 오래살지 못했다.

 

 

순창원

(順昌園)

 

順昌園은 朝鮮제 13대 명종 (明宗)의 맏아들 순회세자 (順懷世子)와 공희빈 (恭懷嬪)尹氏의 墓所이다. 順懷世子는 明宗 12년 (1577)에 世子가 되었으나 13세에 돌아가셨다. 恭懷嬪 尹氏는 윤옥 (尹玉)의 딸로 선조 (宣祖) 25년 (1592) 3월 3일 돌아가셨다.

 

 

순회세자                                              공희빈

(順懷世子)                                                            (恭懷嬪)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는 朝鮮明宗 과 인순王后의 첫째 아들이다. 7세때인 1557년에 王世子에 冊奉되었고 1559년, 공회빈(恭懷嬪) 윤씨(尹氏)와 婚禮를 올렸으나 1553년, 13세의 나이로 腰絶 하였으며 묘는 京畿道 高陽市 西五陵 境域內에 位置한 순창원(順昌園)으로 夫人인 공회빈(恭懷嬪) 윤씨(尹氏)와 함께 安葬되어 있으나 그녀의 屍身은 壬辰倭亂  발발 당시 불에 타 사라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주(神主)만 安葬되었으나 그마저도 丙子胡亂때 紛失되어 現在는 빈 관만 安葬되어 있다.

 

 

경 릉

(敬陵)

 

敬陵은 덕종(德宗)과 王妃 소혜왕후 (昭惠王后)한씨의 陵이다. 덕종 (德宗)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 (世祖)의 맏아들로 태어나 世祖가 王位에 오르면서 世子가 되었으나 2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1457)뒤에 그의 아들 성종 (成宗)이 王位에 오르면서 德宗으로 推尊하였다. 昭惠王后 漢氏는 서원부원군 (西原府院君) 한확 (韓確)의 딸로 世祖 卽位年 (1455)에 世子嬪이 되어 월산대군 (月山大君)과 성종 (成宗)형제를 낳았으며 成宗이 王位에 오른뒤 王妃로 推尊하면서 昭惠王后라 부르게 되었다 연산군 (燕山君) 10년 (1504)에 68세로 돌아가셨다. 특히 佛經에 조예가 깊었으며 婦女子의 禮儀凡節에 관하여 쓴 내훈 (內訓)이라는 著述을 남겼다.

 

 

 

조선국   : 朝鮮國

  덕종대왕경릉  : 德宗大王敬陵

 소혜왕후부우강  : 昭惠王后祔右岡

 

 

소혜왕후

(昭惠王后)

 

昭惠王后 韓氏는 서원부원군 (西原府院君) 한확 (韓確)의 딸로 世祖 卽位年 (1455)에 世子嬪이 되어 월산대군 (月山大君)과 성종 (成宗)형제를 낳았으며 成宗이 王位에 오른뒤 王妃로 推尊하면서 昭惠王后라 부르게 되었다 연산군 (燕山君) 10년 (1504)에 68세로 돌아가셨다. 특히 불경에 조예가 깊었으며 婦女子의 禮儀凡節에 관하여 쓴 내훈 (內訓)이라는 著述을 남겼다.

 

 

덕 종

(德宗)

 

덕종 (德宗)은 朝鮮 7대 임금인 세조 (世祖)의 맏아들로 태어나 世祖가 王位에 오르면서 世子가 되었으나 2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1457)뒤에 그의 아들 성종 (成宗)이 王位에 오르면서 德宗으로 推尊하였다.

 

 

대빈묘

(大嬪墓)

 

大嬪墓는 朝鮮 제 19대 숙종 (肅宗)의 後宮인 희빈(禧嬪)장씨의 墓所다 肅宗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肅宗 14년 (1688)宮女 장소의 (張昭儀)에게서 王子 윤 (景宗)을 얻었다. 이듬해 尹을 世子로 冊奉하고 場所의에게 禧嬪이라는 品階를 내렸다. 그 후 인현왕후 (仁顯王后) 閔氏를 王妃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張禧嬪을 王妃로 冊奉하였으나 肅宗은 곧 이를 後悔하고 仁顯王后를 復位하고 張禧嬪 에게 死藥을 내렸다.

 

 

장희빈

(張禧嬪)역  이소연

 

 

묘비명

(墓碑名)

 

有明朝鮮國玉山府大嬪張氏之墓

 

 

장희빈

(張禧嬪)

 

宮女였던 張玉貞은 肅宗에 눈에들어 後宮이 되었다, 王子 均을 出産하여 嬉嬪의 자리에 오른 人物이다  肅宗대는 朝鮮王祖를 통틀어  黨派간 政爭이 가장 심했던  時期로 王은 自身의 女子들을 利用해 黨爭속에서 王權의을 强化를 꾀했다. 均을 世子로 冊封하는 課程에서 西人을 擊沈하고 仁顯王后를 廢位 시켰다가 西人들이 閔씨復位를 꾀하는 課程에서 南人들을 除去한다. 王妃까지 되었다가  다시 降等된 張禧嬪은  仁顯王后를詛呪주하기위해 꼭두각시와 動物의 屍體를 通明殿 周圍에 묻어 두었다. 이것이 發覺되어 死藥을 받으니 수많은 風聞과 逸話를 남긴채 43세를 日記로 生을 마감 하였다.

 

 

홍 릉

(弘陵)

 

弘陵은 朝鮮 제21대 영조 (英祖)의 王妃 정성왕후 (貞聖王后)서씨의 陵이다. 王后는 달성부원군 (達城府元君)서종제 (徐宗悌)의 딸로 경종 (景宗)원년 (1721)에 세제빈 (世第嬪)이 되었고 1724년 영조 (英祖)가 王位에 오르자 王妃가 되었다. 王后는 子孫이 없이 英祖 33년 (1757)에 66세로 昌德宮에서 돌아가셨다. 

 

 

 

조선국  : 朝鮮國

 정성왕후홍릉  : 貞聖王后弘陵

 

 

정성왕후

(貞聖王后)

 

1704 연잉군(延仍君)과 婚姻하여 달성군부인(達城郡夫人)으로 冊奉되었고 1721년, 延仍君이 王世弟로 冊奉되자 세제빈(世弟嬪)이 되었으며 1724년 景宗이 昇遐하고 王世弟인 英祖가 卽位하자 王妃로 責奉되었다. 어질고 너그러운 性品을 가졌다고 轉해지며 生前에 영빈이씨의 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親子息처럼 대하였다. 그러나 男便인 英祖가 장수한 탓에 60대에 이르러서도 大妃가 되지 못하다가 1757년, 昌德宮 관리각(觀理閣)에서 66살의 나이로 昇遐하였다. .

 

 

 

1757년, 66살의 나이로 貞聖王后가 昇遐하자 英祖는 정성왕후의 陵을 아버지인 肅宗의 명릉(明陵) 近處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貞聖王后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으나 1776년, 英祖가 昇遐한 뒤 孫子인 正祖는 당시  王大妃였던 英祖의 계비(繼妃)인 貞純王后를 意識하여 현재의  東九陵 位置에 英祖와 貞純王后의 무덤인 元陵을 造成하였고 結局 貞聖王后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洪陵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으며 朝鮮王陵 중에서 唯一하게 옆자리가 비워진 陵으로 남아있다. 1740년, 혜경(惠敬)이라는 尊號가 올려진 뒤 生前에 장신(莊愼), 강선(康宣) 등의 존호가 올려졌고 昇遐 이후인 1772년에는 공익(恭翼)의 尊號가 推尙되었으며 인휘 (仁徽), 소헌(昭獻)이 다시금 推尙되어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의 尊號를 가지게 되었고  1778년 단목장화(端穆章和)의 尊號가 追加되었다.

 

 

창 릉

(昌陵)

 

昌陵은 朝鮮 제8대 예종 (睿宗)과 계비 (繼妃) 안순왕후 (安順王后) 漢氏의 陵이다. 睿宗은 세조 (世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450) 世祖 2년 (1457)에 世子가 되었고 世祖 13년 (1468)에 王位에 올랐다. 그러나 王位에 오른지 13개월 만에 20세로 景福宮에서 돌아 가셨다. (1469) 安順王后는 右義政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한백륜 (韓伯倫)의 딸로 睿宗 卽位年 (1468)에 王妃로 責奉되었으며 연산군 (燕山君) 4년 (1498)에 돌아가셨다.

 

 

 

조선국 : 朝鮮國

예종대왕창릉 : 睿宗大王昌陵

안순왕후부좌강 : 安順王后祔左岡

 

 

예종

(睿宗)

 

일찍이 해양대군(海陽大君)에 奉해졌다가, 1457년(世祖 3) 9월 王世子 장(暲 : 뒤에 德宗으로 追尊됨)이 죽자 뒤를 이어 王世子에 冊奉되었다. 1466년부터 승명대리(承命代理)로 政務를 보아오다 1468년 9월 世祖가 죽기 직전 王位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世祖末부터 신숙주(申叔舟)·한명회·정인지(鄭麟趾)·구치관(具致寬) 등의 훈신(勳臣)들이 承政院에 상시 勤務하면서 政務에 參與할 수 있는 特權이 附與되어 있었고, 睿宗 卽位 後에는 이들 前職 大臣들이 원상(院相)으로 現職 議政府 大臣들보다 더 높은 位置에서 政務를 處決하는 등 實質的 權力을 帳幄했다.

 

 

안순왕후

(安順王后)

 

本官은 청주(淸州), 성은 한(韓). 아버지는 翊戴功臣 3등, 佐理功臣 2등에 制守되고 友誼政 등을 歷任한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백륜(伯倫)이고, 어머니는 西夏부부인 임씨(西河府夫人 任氏)이다.  당시 世子嬪이었던 장순왕후 (章順王后)가 1461년에 腰絶하자, 그 이듬해에 東宮의 종5품 後宮인 소훈(昭訓)에 簡擇되어 世子 時節의 睿宗과 嘉禮를 올렸다. 1468년 世祖가 昇遐하고 睿宗이 王이 되자, 아들을 두고 있던 소훈 한씨가 王妃에 冊奉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安順王后이다. 그러나 睿宗은 保衛에 오른 지 13개월 만에 薨逝하고, 王妃 한씨는 어린 나이로 청상이 되고 만다.

 

 

명 릉

(明陵)

 

明陵은 朝鮮 19대 숙종 (肅宗)과 계비 (繼妃) 인현왕후 (仁顯王后)민씨 그리고 제2 계비 인원왕후 (仁元王后) 金氏의 陵 이다. 肅宗과 仁顯王后는 나란히 자리한 쌍분 (雙墳)으로 쓰고 仁員王后의 陵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언덕에 配置되었다. 肅宗은 王妃를 세번 맞아들였는데 元妃인 인경왕후 (仁敬王后)김씨 의 陵인 익릉 (翼陵)은 서오릉 (西五陵)안에 따로 있다.  肅宗은 제18대 현종 (顯宗)의 아들로태어나 顯宗 8년 (1667)에 世子로 冊奉되었으며 1674년에 王位에 올라 諸位 46년간 많은 業績을 남겼다.  禮儀에 관한 선비들 간의 論爭과 張禧嬪을 中心으로 한때 仁顯王后 閔氏를 몰아낸 事件을 겪어으나 常平通寶를 鑄造하고 白頭山 定界碑를 세웠다. 在位 46년 (1720)에 60세로 돌아가셨다. 仁顯王后 閔氏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 (閔維重)의 딸로 肅宗 7년 (1681)에 肅宗의 繼妃가 되었다. 肅宗 15년 王子 윤(景宗)의 世子 冊奉 問題로 張禧嬪이 謀陷하여 廢位 당하였다. 後에 張禧嬪이 沒落하면서 復位된 뒤 35세로 돌아가셨다. 人元王后 金氏는 경은부원군(慶恩府院軍) 김주신 (金株臣)의 딸로 肅宗 28년 (1702)에 王妃가 되었고 영조 (英祖) 33년 (1757)에 71세로 돌아가셨다.

 

 

 

조선국  : 朝鮮國                                                       조선국 : 朝鮮國

숙종대왕명릉 : 肅宗大王明陵                                                인현왕후부좌 : 仁顯王后祔左  

            인원왕후부우강 : 仁元王后祔右岡

 

숙 종

(肅宗)

 

肅宗은 제18대 현종 (顯宗)의 아들로태어나 顯宗 8년 (1667)에 世子로 冊奉되었으며 1674년에 王位에 올라 帝位 46년간 많은 業績을 남겼다.  禮儀에 관한 선비들 간의 論爭과 張禧嬪을 中心으로 한때 仁顯王后 閔氏를 몰아낸 事件을 겪었으나 常平通寶를 鑄造하고 白頭山 政界碑를 세웠다. 在位 46년 (1720)에 60세로 돌아가셨다.

 

 

인현왕후

(仁顯王后)

 

仁顯王后閔氏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 (閔維重)의 딸로 肅宗 7년 (1681)에 肅宗의 繼妃가 되었다. 肅宗 15년 王子 윤(景宗)의 世子 冊奉 問題로 張禧嬪이 謀陷하여 廢位 당하였다. 後에 張禧嬪이 沒落하면서 復位된 뒤 35세로 돌아가셨다.

   

 

인현왕후

(仁顯王后)역    박 하 선

 

 

인원왕후

(仁元王后)

 

仁元王后 金氏는 경은부원군(慶恩府院軍) 김주신 (金株臣)의 딸로 肅宗 28년 (1702)에 王妃가 되었고 영조 (英祖) 33년 (1757)에 71세로 돌아가셨다.

   

 

인원왕후

(仁元王后)역 오 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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