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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탕탕평평/蕩蕩平平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平 平

그림

 

글은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읍니다.

英祖와 正祖는 글로 어려운 狀況을 克服하고

나아갈 方向을 摸索 했읍니다. 

 

 

 

 

正祖 寡人은 思悼世子의 아들이다.

先王(英祖)께서 宗統을 重히 여겨 내게 큰아버지 孝章世子의 뒤를 잇도록 命하셨다. 

禮를 엄격히 하지 않을수 없지만

人情도 밝히지 않을수 없다.

 

1776 년 3월 正祖가 卽位하고 내린 말

 

감란록

勘亂錄

 

英祖는 穩健派 小論과 함께 國政을 運營하던 중 急進派 小論 이 일으킨 武臣亂(1728)에 直面 했읍니다.  朴文秀등 穩健派   小論武臣亂 을 鎭壓하고 叛亂 主動者와 自身들이 無關 하다고 밝혔읍니다.  英祖 는 이 冊에서 叛亂 의  根本的 原因을 朋黨으로 돌렸읍니다.  冊을 出版해  自身들의  立地를 明確히 하는 方式은 이번이 처음이었읍니다. 

 

인장함

孝孫銀印印盝

 

英祖가 世孫에게 내린 孝孫銀印 을 保管한 函 입니다. 一般的으로 王世孫을 위한 은 검은 칠을 하는데 이 은 붉게 칠해져 있읍니다.   表面의  어필銀印 이라는 글씨가 돋보입니다.  英祖의 글씨가 새겨진 印章인 만큼 임금을  尊重하는 뜻에서 에 붉은 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삽살개

 

털이 복술복술한 삽살개가 고개를 치켜들고 이빨을 드러낸채 사납게 짖고 있읍니다. 삽살개가 이토록 사납게 表現된 理由는 그림 위에 英祖가 직접 쓴 詩에서 알수 있읍니다.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내며 아무때나 짖는 삽살개는 英祖의 눈에 蕩平을 反對하는 臣下들의  모습을 表現 한듯 합니다.

 

백성을 위한 준천사업

 

水門위 王의 자리가 보입니다. 淸溪川 바닥흙을 거더내는 濬川作業을 英祖가 直接 보고 있읍니다. 淸溪川 물이 매년 넘쳐 백성에게 큰 피해를 주었읍니다. 英祖조는 濬川作業 을 成功的으로 마친뒤 관련 글과 그림으로 畵帖을 製作 했읍니다. 이 처럼 王이 自身의 業績을 그리게 한일 은 朝鮮時代에 처음 있는 일이었읍니다.

 

英祖가 꿈꾼 蕩平의 理想을 그리다.

 

1746 년 英祖의 命으로 그려진 이 作品에는 그의 꿈이 담겨 있읍니다. 中國 南宋의 朱熹 (1130 ~ 1200)가  푸젠성 장저우 지사로 있을때 그 後園의 모습을 想像한 그림 입니다.  英祖 는 이 그림을 人間의 欲心을 버리고 純粹한 마음으로 돌아가 工程함에 힘쓰는  뜻을 함께하고자 그렸다고 적었읍니다. 묘암 窓門에 그려진 兌卦( 팔괘의  번째 괘) 와 復卦(육십사괘의 스물네번째괘) 는 疏通과 復興을 뜻합니다.

 

수원능행도병풍

水原陵幸圖

 

이 屛風은 正祖의 아버지 思悼世子(1735~62)와 어머니 惠慶宮 洪氏(1735~1815)의 還甲을 記念하여, 1795년( 正祖  19) 윤2월 9~16일에 思悼世子 의 墓所인 華城의 顯隆園과 宿所인 華城 行宮에서 치러진 일련의 行事 중에서 8개의 行事場面을 골라 도회한 記錄畵이다.  〈園幸乙卯整理儀軌〉의 記錄 을 通해 製作에 參與한 崔得賢· 金得臣· 張漢宗· 李命奎· 尹碩根· 許寔· 李寅文 등 7名의 圖畵院이 밝혀졌다.  (출처: Daum백과)

 

수원능행도병풍

水原陵幸圖

 

宿所인 華城 行宮

 

허목

許穆

 

'미수(眉叟)'라는 는 '눈썹(眉) 늙은이(叟)'라는 뜻인데, 과연 號처럼 눈썹이 非凡하다. 이명기가 그린 肖像畵로, 수염을 强調하려는 意圖였는지 수염을 옆으로 약간 휘날리는 모습으로 그려놓기도 했다.

 

肖像畵로 당신의 功을 잊지 않으리

 

朝鮮時代에 危機에서 나라와 王室을 구한 臣下를 功臣으로 任命하고 肖像畵 를 膳物로 주었읍니다.  1728 년 (英祖4) 武臣亂을 鎭壓한 功臣 을 奮武功臣이라 하고 이때 肖像畵 를 奮武功臣像 이라 합니다.  그런데 22 년이 지난 1750 년 (英祖  26), 朴文秀가 奮武功臣像 을 다시製作 하자고  建議하자 英祖는 이를 許諾 했읍니다.  危機 의 瞬間 도음을 준 功臣들을 數十年이 지나도 잊지 않겠다는 英祖조의 마음이 이 肖像畵 에 담겼읍니다. 

 

朴文秀의 30대  ~  60대

 

所重히 傳해진 肖像畵朴文秀를 記憶하다.

 

朴文秀 의 建議로 奮武功臣像 이 1750년 다시 製作 되었읍니다. 이 때 그려진 肖像畵 는 上半身만 表現된 半身像 입니다. 完成된 肖像畵  중 한부는 帖으로 만들어 집으로 보내고 나머지 한 부는 다른 奮武功臣 半身像과 함께 으로 꾸며 忠勳府에 保管 했읍니다. 朴文秀  38세 肖像에 비해 60세 肖像 에서는 수염이 희어지고 주름이 깊어 졌읍니다.  所重히 保管된 두 肖像畵 로 그의 달라진 모습을 比較 할수 있읍니다.

 

肖像畵 로 政治하는 正祖

 

正祖는 南人系列 領袖 許穆(1595 ~ 1682)의 82세 肖像畵를 가져오라고 하여 당시 뛰어난 肖像畵家에게 그리도록 했읍니다. 先大王의 名臣이었던 許穆  肖像畵를 베껴 그림으로로서 蔡濟恭 (1720 ~ 1799) 및 南人의 支持를 공고히 하는 契機가 되었읍니다.  許穆  肖像畵가 都城으로 들어오고 떠나는 날 南人 들이 모두 모였다고 합니다. 正祖는 黨色을 가리지않고 옛 臣下들의 肖像畵를 가져오라 하여  조정에서 臣下 들과 함께 보고 그 人物을 稱頌하는 글을 지어 내렸읍니다.

 

王位 繼承의 正當함을 冊으로 알리다.

 

武臣亂이 끝난後 에도 一部 小論들은 여전히 英祖의 正統性에 疑問을 가졌고 老論도 不滿이 많았읍니다.  英祖는 老論이 景宗을 해치려한 嫌疑로 처벌된 立言獄事가 거짓이라는 老論의 主張을 들어주었읍니다.  英祖는 自身이 孝宗 ~ 顯宗 ~ 肅宗의 三宗血脈을 이었으며, 景宗의 命으로  王世弟가 되었으므로 本人에게 正統性 이 있음을 이 冊에서 밝혔읍니다.

 

명의록언해

明義錄諺解

 

正祖조는 英祖의 闡義昭鑑을 模範으로 삼아 明義錄을 編纂했읍니다. 闡義昭鑑을 出版할때도 그러했듯 明義錄도 한글로 널리 알리고자 한것입니다.  이 冊은 木活字와 이를 飜刻한 木版本으로 印刷 했읍니다.

 

효손은인

孝孫銀印

 

英祖의 御筆이 새겨진 圖章

 

世孫(훗날正祖)이 代理聽政을 하게된 뒤 英祖에게 上訴를 올려 아버지 思悼世子의 일을 承政院日記 에서 지울것을 請했읍니다. 英祖는 이 뜻을 받아들여  그 記錄을 물에 씻어버리고 孝孫 이라고 直接 쓴 글씨를 새겨 만든 印章을 주었읍니다.

 

1762 年 英祖가 지은 思悼世子 墓地에서

 

小人의 무리들과 허물없이 놀아나니 나라가 亡할 지경에 이르렀도다. 

豊饒로운데서 태어나고도 마음을 잡지못해 미치광이가 되었도다.

 

兵曹官員에게 人事行政의 方針을 내리다.

 

英祖가 軍事業務를 擔當한 官廳인 兵曹의 人事行政 擔當者에게 내린글 입니다.  英祖는 人事行政 에 앞서 兵曹의 人事擔當者에게 工程한 人事行政을 당부하는 글을 내렸읍니다. 바른 人才를 適材適所에 配置하고 싶은 英祖의 마음과 努力이 傳 해집니다.

 

 

正祖大王 陵幸 班次圖

 

華城에서 펼처진 正祖의 理想

 

正祖의 命에 따라 秩序와 和合의 理想을 담은 華城行次 그림을 差備待令 畵院들이  屛風과 簇子로 製作해 宮中에도 保管하고 屛風은 大 과 中으로 區分 製作 이 屛風처럼 높이 151.8 cm 程度의 宮中에 3 건. 현재 8 폭 屛風으로 4 건이 傳해지고 있읍니다.

 

군주쌍교

 

正祖의 女同生인  淸衍公主 郡主가 탄 가마

 

혜경궁가마행렬

 

惠慶宮 洪氏가탄 붉은색 가마 周邊을 軍人과 官員들이 여러겹 으로 護衛하고 있읍니다. 正祖가 탄 말 行列과 함께 班次圖에서 가장 重要한 部分 입니다.

 

寡婦로 憶萬가지 어려움을 무수히 겪으니

옛王妃 중에 나와같은 異常한 身世는 없다.

이 行事는 임금이 孝誠으로

내마음을 慰勞하고자 한 바이니

눈닿는 데마다 知性이 아니미친데가 없다.

行事器物과 차림이 모두整然하여

임금의 敎化가 미치지 않은곳이 없으니

마음속깊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니라.

 

惠慶宮 이 쓴 閑中錄에서

 

외빈

外賓

 

惠慶宮 洪氏 를 위한 回甲宴에 招待된 男子 손님

 

어승인마

御乘引馬

 

임금이 탈 여분의 말

 

수라가거

 

임금의 飮食을 만들材料를 싣고가는 수레

 

 수라가자

 

임금의 飮食을 만들材料를 싣고가는 들것

 

용대기

龍大旗

 

行列 가운데에 두마리 龍이 그려진 노란색 깃발과 붉은 술을 둥굴게 늘어뜨린 長臺가 우뚝 서 있읍니다. 각각 龍大旗 와 頭 이라고 하는데 임금의 行次時에 임금이 行列을 總指揮 한다는 意味로 使用되는 깃발 입니다.

 

 

임금 또는 높은管理의 行次 앞에 세우던 儀仗旗

 

근장군사

近仗軍士

 

宮門을 지키거나 임금이 行次할때  警護를 擔當하는 軍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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