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濟州道旅行

 

濟州民俗村博物館

 

 

濟州民俗村은 朝鮮末期인 1890 년대 濟州道 옛 文化의 歷史를 原形 그대로 生生하게 保存해 놓은곳 입니다.

 

 

촘 항

集水姮

 

물이 貴한 山村이나 물통(우물)이 먼 地域 에서는 잎이 넓은 闊葉樹의 樹木에 촘을 매고 그 밑에 항아리를 두어 흘러내리는 이슬 방울이나 빗물을 모아 食水로 活用했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인데 항아리안에 개구리를 넣어 食水와 썩은물을 區分 하였다.

 

 

통 시

統西

 

濟州의 化粧室은 統西라 하여 뒷간(변소)과  돼지막(돗통)이 함께 造成되어 있다. 統西는 대개 마당에서 보이지 않도록 建物의 한쪽 구석에 位置 하는데 사람의 排泄物을 처리하는 機能 이외에도 飮食 찌거기를 處理하고 自然 堆肥인 돗거름 의 生産 空間 으로서 重要한 技能을 갖기도 한다.

 

 

외기둥집

單柱子房

 

災害에 의해서 어쩔수없이 지었거나  時期가 맞지않아 臨時로 외기둥을 세워 만드는 외기둥집 이라고 했는데 濟州에서는 말코지집 이라고도 하였다. 이것은 住居에 있어서는 原始的인 形態로 보이며 實際로 濟州道 에서는 1950 년대 까지 存在 하였다고 傳 한다.

 

 

제주영문

濟州營門

 

朝鮮時代 濟州牧의 官衙 建物들을 濟州營門이라 하는데 延曦閣. 鄕廳. 營吏廳. 獄 등으로 構成되어 있다. 濟州 營門의 本廳인   延曦閣牧使의 個人 執務處로 濟州를  위한 모든 行政을 펼쳐지기 때문에 濟州사람 安危가 決定된다는 意味로 속칭 上衙東軒 이라고도 불렸다.  本廳앞 왼쪽에 配置된 鄕廳은 留鄕所. 鄕社堂. 이라고도 하는데 牧使의 諮問에 응할뿐 아니라 百姓들의 風俗을 바로잡기 위하여 鄕飮酒禮와 鄕射禮 같은 儀禮도 擧行 하였다.  맞은편에 위치한  營利廳은 吏.  戶.  禮.  兵.  刑.  工 의 6 部 管理들이 戶籍을 管理하고 租稅를 거둬들이고 還穀과 進上品을 管理하는 등의 業務를 遂行 하였다.  또한 罪囚들을 가두었던 獄은 本廳 옆에 초가지붕에 통나무 창살로 칸막이로 만들어 使用하였다. 

 

 

 

어 촌

漁村

 

漢拏山을 中心으로 海拔 100m 以下의 마을을 漁村 이라고 하는데 물이 貴한 濟州에서는 海岸의 自然溶出水를 中心으로 마을이 形成 되었다. 이곳 漁村 住民의 主生業은 半農半漁에 가까운 漁業이라고 할수 있다.  또한 漁村의 돌담과 초가집은 波濤에 둥글게 마모된 바닷돌을 使用하여 山村 또는 中間間村과는 다른 雰圍氣를 엿 볼수있다.

 

 

모로앉은세거리집

橫三街房

 

入口 左側에 안거리가 있고 밖거리는 모로나 있는데 이러한 形態는 濟州道 北쪽보다 南部地域에서 더 많이 確認 된다.  안거리의 상방(마루)에는 봉덕 이라는 火爐가 놓여 있다. 헛간은 안거리의 맞은편에 있어 草家를 中心으로 보면 ㄱ 자 形態를 보인다. 

 

 

박씨삼정문

朴氏三旌門

 

旌門은 朝鮮時代 正祖때 孝子 朴繼昆. 烈女 朴氏, 忠婢高所樂의 三綱(忠.孝.烈)을 기리기 위해 세운 旌門으로 現在 濟州市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旌門을 再現하였다.

 

 

위리안치유배인의집

圍籬安置流配人家

 

圍籬安置는 朝鮮時代에 重罪를 지은 罪人의 行動을 拘束하기 위해 집둘레에 탱자나무 가시덤불로 울타리를 만든집에  罪人을 가두는 刑罰을 말한다. 圍籬安置는 普通 죽음을 가까스로 免한 一種의 政治犯이 받았던 가장 무거운 刑罰 이었다고 할수 있다.

 

 

사 당

祠堂

 

祠堂에는 4 代祖 즉 高祖까지 神位를 모시고 그 以上의 祖上은 時祭(철마다 지내는 宗廟의 祭祀)나 節祀(名節에 지내는祭祀)를 모시게 된다. 子孫들은 家庭의 사소한 일들도 祠堂에 告 하였다. 선주의 配列順序는 高祖, 高祖母, 曾祖, 曾祖母, 祖父母, 父母 이다.  祠堂내부에는 도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濕氣를 防止하기 위해 二重壁을 하는 特徵이 있다.

 

 

연 대

煙台

 

煙台는 불이나 煙氣를 피워 隣近 海岸에 外的의 出現을 알리는 通信手段으로 濟州에는 9진 25 烽火煙台의 防禦體系가 構築되어 있었다.  山頂上에 별다른 施設物 없이 設置 되었던 烽燧와는  달리 海岸에서 敵 과의 戰鬪에 對比 하여야했기 때문에 돌을 쌓아 堅固하게 만들었다.

 

 

연자방아

硏子間

 

硏子방아는 穀食을 찧거나 빻는 방아의 한 가지이다. 연자매라고도 한다. 發動機가 없던 옛날에 말이나 소의 힘을 利用하여 한꺼번에 많은  穀食을 찧거나 빻는 데 使用 하였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서,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서 돌리도록 되어 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연자방아를 갖추어 놓고 共同으로 使用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제주전통옹기

濟州傳統甕器

 

濟州의 甕器는 타 地域의 가마(陶窯)와 形態가 다른 돌가마(石窯)에서 구워진다. 돌가마에서 甕器를 굽기위해 3박 4일 가량 불을 때면 돌가마안의 溫度는 섭씨 1,200도 程度가 되며 이 때 甕器들은 제 몸까지 녹이는 磁化性을 지닌다. 그래서 濟州의 傳統 甕器는 겉은 자연유, 속은 흙 自體라고 말할수 있으며 이러한 性質은 물을 淨化시켜 살아있는 물로 만들고 醱酵食品을 貯藏하면 가장 自然스럽게 醱酵되어 그맛이 살아있어 매우 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