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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國內博物館

月精寺聖寶博物館/月精寺石造供養菩薩坐像


(月精寺聖寶博物館)

 

 

 

삼척영은사괘불

(三陟靈隱寺掛佛)

  

釋迦如來가 靈鷲山에서 第子들을 모아놓고 說法하는 모습을 그린 靈山回想圖로 中央에는 首尾對坐 위에 黃麻觸地印을 하고 있는 釋迦如來像을 크게 表現하였다. 左,右에 文殊菩薩과 普賢菩薩을 下端部에는 金剛劍과 塔을 들고있는 四天王을 配置 하였다. 本尊 周邊으로는 10대第子, 8대 菩薩,法泉과 帝釋天,龍王,龍女,虎溪對神,福德對神등이 左,右에 對稱으로 描寫되어 있다.

 

 

문수동자좌상

(文殊童子坐像)

 

文殊菩薩은 智慧의 和絃 이다. 大知文殊菩薩 올바른 智慧와 判斷力으로 煩惱를 消滅하고 깨달음을 成就시키는 菩薩로서, 右協侍 普賢菩薩과 함께 毘盧遮那佛의 左協侍 菩薩이 되어 三尊佛의 一員을 이루고 있다.

 

 

(佛普薩像과 腹藏遺物)

 

佛像은 佛敎의 궁극적 目標이고 最高의 境地인 깨달음에 이른 存在를 象徵하는 造形物이며 伏寢이란 佛像이나 佛畵를 造成하면서 그 안에 奉安하는 舍利裝置를 말한다. 佛腹藏은 글짜 그대로 눈에 띄지 않게 佛像의 몸속에 여러가지 象徵物 등을 넣는것을 말한다. 腹裝品은 대개 조상경의 法式에 따라 머리와 배의 빈 부분에 넣었는데 대체로 舍利와 候鈴筒, 五穀,이나 모색실, 佛經과 衣服 陀羅尼와 曼陀羅,腹臟旗나 造成旗 등이 發見된다. 이러한 腹藏物은 당시 佛敎 神仰의 傾向 詩經 美術,佛像 造成의 由來,作家 및 發願者의 身分 등을 理解 할수 있는 貴重한 資料이다.

 

 

平昌月精寺中臺獅子庵木造毘盧遮那佛坐像

 

황초폭자

(黃梢幅子)

 

월정사북대고운암목조석가여래좌상복장유물

(月精寺北臺孤雲庵木造釋迦如來坐像服藏遺物)

 

발원문

(發願文)

 

세조의문수동자친견

(世祖의文殊童子親見)

 

조카인 端宗을 몰아내고 王位에 오른 世祖는 피부병을 심하게 앓았다. 以後 治療를 위해 上院寺로 向하던 중 溪谷에서 뭄을 씻다가 童子를 만나게 되고 피부병을 完全히 나았다. 自身이 만난 童子가 文殊菩薩이었음에 感動한 世祖는 文殊童子像을 上院寺에 造成하게 했다.

 

 

보천과효명태자의문수보살친견

(普天과孝明太子의文殊普薩親見)

 

普天과 孝明太子는 新羅 神文王의 아들로 俗世를 벗어나고자 五臺山에 庵子를 지어 修道하며 每日 아침 1만 문구보살 에게 茶를 供養하였다. 以後 臣下들은 五臺山으로 찿아와 普天太子를 王으로 擁立하려 했다. 하지만 普天太子는 王位를 拒絶하고 代身 孝明太子를 王으로 擁立하게 되는데 바로 聖德王 이다.

 

 

오대산의문수보살

(五臺山의文殊普薩)

 

文殊普薩은 智慧의 象徵으로 우리나라에서는 三國時代 新羅의 地藏律師가 最初로 傳해온 이래 盛行 하였다. 江原道 五臺山은 文殊普薩이 常住하는 度量으로 여겨졌으며, 歷史 속에서 佛敎聖地로 큰 役割을 하고 있다.

 

 

의숙공주발원문

(懿淑公主發願文)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 (조선 1466)

 

 

 新興寺板圓覺經

 

 

 

(高麗大藏經)

 

大藏經이란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體系的으로 集大成 한것을 말하며 經章,律章,論章의 三章으로 構成되어 있다. 佛敎를 國敎로 삼았던 高麗時代에는  佛經을 잘모시면 부처님의 힘으로 王祖가 康寧하고 太平天國으로 國民을 便安하게 한다고 믿어 어려운 戰爭中 에도 온 國民들이 一心으로 發願하여 八萬大藏經 板刻을 이룩하였다. 月精寺 八萬大藏經은 海印寺에 所長되어 있는 高麗大藏經 板本으로 1865년 찍어내어 奉安한 것이다.

 

 

월정사팔만대장경

(月精寺八萬大藏經)

 

海印寺司庫 高麗大藏經板本

 

 

오대산사적을본

(五臺山事蹟乙本)

 

은제도금여래입상

(銀製鍍金如來立像)

 

月精寺 八角九層石塔 舍利莊嚴具.

 

오대산월정사중대향각석가모니도

(五臺山月精寺中臺香閣釋迦牟尼圖)

 

上院寺 中臺 香閣에 奉安되었던 毘盧遮那佛이 後佛幀畵로 서울 地域에서 活動했던 代表的 火繩 보암 긍법이 수화사로 造成한 初期 作品이다. 中央에 釋迦牟尼佛과 四臺普薩,四天王,여덟第子 등으로 配置되어 있으며 本尊을 中心으로 挾侍菩薩은 흰 연꽃과 흰 牡丹을 들고 半跏坐 하였다. 挾侍菩薩이 半跏坐로 表現되는것은 19세기 末 以後의 佛畵에서 종종볼수 있는 特徵이다. 宗團에는 地藏菩薩이 合掌하고 있으며 아난과 가섭존자를 포함한 여덟弟子가  經典,動物등과 함께 自由로운 視線으로 位置해 있다.

 

 

 원주구룡사삼장보살도복장유물

(原州龜龍寺三藏菩薩圖腹藏遺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보덕사사성전후불탱화복장유물

(報德寺四聖殿後佛撑畵腹藏遺物)

 

월정사육수관음상

(月精寺六手觀音像)

 

보덕사사성전후불탱화복장유물

(報德寺四聖殿後佛撑畵腹藏遺物)

 

평창월정사북대고운암목조미륵보살좌상

(平昌月精寺北臺孤雲庵木造彌勒菩薩坐像)

 

평창월정사북대지장암목조지장삼존불감

(平昌月精寺南臺地藏庵木造地藏三尊佛龕)

 

적광전

(寂光殿)

 

寂光殿은 釋迦牟尼 부처님을 寶尊佛로 모신 殿閣이다. 白頭大幹의 心臟部인 滿月山을 眞山으로 한 月精寺의 가장 中心에 자리잡고 있으며 正面 5칸 側面 4칸의 팔작지붕 建物로 近代에 新築된 法堂중 가장 으뜸으로 뽑힌다.  원래 이 자리 에는 일곱분의 부처님을 모신 七佛寶殿이 있었으나 6.25 戰爭때 여타殿閣과 함께 全燒되었다. 1969년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때 五臺山에서 自生하는 나무를 使用하여 重建하였다. 

 

 

평창월정사석조보살좌상

(平昌月精寺 石造菩薩坐像)

 

月精寺八角九層石塔을 向해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다리를 세워 塔에 대해 供養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菩薩像으로 國寶 제 48 - 2호로 指定 되었다. 머리에는 높다란 寶冠을 쓰고 있으며 福德具足이 充滿한 微笑가 어려 있다. 두발은 옆으로 길게 느려져 어깨를 덮고 있고 목에는 아주 뚜렸힌 3줄의 주름이 表現 되었다. 영락은 매우 纖細하고 곱게 彫刻되어 粧飾 되었다. 高麗時代 華嚴宗 寺刹에서 만든 特徵을 보여주는 代表的인 예 이며 當代의 時代精神을 잘 살펴볼수 있는 作品으로 높이 平價 된다

 

 

월정사팔각구층석탑

(月精寺八角九層石塔)

 

이 石塔은 우리나라 北쪽지방에 主로 流行하던 多角多層石塔의 하나로 高麗初期 石塔을 代表 하는것이다. 現在 八角의 二層 基壇이 밖으로 드러나 있는데 地表 아래에 基壇部로 짐작되는 施設이 더있는 것으로  調査 되었다.

國寶 第48호로 指定

되었으며  各 多層石塔의 代表的 石塔 이라 할수있다. 塔 앞에는 江陵 新福寺址 石塔과 마찬가지로 供養하는 菩薩坐像을 모셔 놓았다.

 

(月精寺石造供養菩薩坐像)

 

月精寺八角九層石塔을 向해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다리를 세워 塔에 대해 供養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菩薩像으로 國寶 제 48 - 2호로 指定 되었다. 머리에는 높다란 寶冠을 쓰고 있으며 福德具足이 充滿한 微笑가 어려 있다. 두발은 옆으로 길게 느려져 어깨를 덮고 있고 목에는 아주 뚜렸힌 3줄의 주름이 表現 되었다. 영락은 매우 纖細하고 곱게 彫刻되어 粧飾 되었다. 高麗時代 華嚴宗 寺刹에서 만든 特徵을 보여주는 代表的인 예 이며 당대의 時代精神을 잘 살펴볼수 있는 作品으로 높이 評價 된다.

 

 

月精寺石造供養菩薩坐像

國寶 제 48 - 2호로 指定

 

月精寺 境內의 8角 9層塔을 向해서 정중하게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다리를 세워 塔에 대해 供養하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이 1.8m의 菩薩像이다. 머리에는 높다란 冠을 쓰고 있으며 갸름하면서도 복스러운 얼굴에는 만면에 微笑가 어려 있다. 머리칼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어깨를 덮고 있고, 목에는 아주 뚜렷한 3줄의 주름이 表現되어 있다. 목걸이는 매우 纖細하고 곱게 彫刻하여 가슴에까지 늘어지게 粧飾하였다. 菩薩이 입고 있는 옷은 얇고 가벼워 몸에 밀착되어 있고 옷주름은 모두 희미하다. 오른쪽 팔꿈치는 童子像을 받침으로 고이고 있으며 童子像의 머리에 팔꿈치를 올려 놓아 便安한 姿勢를 취하고 있다. 이 石造 菩薩坐像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江陵 新福寺址 石佛坐像(寶物 제84호)과 같은 形式이지만 上體에 비해 下體가 貧弱하여 造形上 다소 不均衡스런 모습이다. 그러나 開泰寺와 新福寺址 塔 供養像과 더불어 高麗時代 華嚴종 系統寺院에서 만든 特徵을 보여주는 代表的인 豫이며, 당대 佛敎思想의 한 斷面을 살펴볼 수 있는 作品으로 높이 評價 된다.

 

 

문수동자좌상

(文殊童子坐像)

 

世祖實錄  38課 五臺山寺跡記 에는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祈禱를 하니 舍利 分身하고 하늘에서 꽃비 甘露가 내리며 속에는

神祕로운 香氣 振動해 그윽한 自炊가 사라지지 않았다. 

 

 

  상원사문수동자좌상복장사리

(上院寺文殊童子坐像腹藏舍利)

 

難治病으로 苦痛받던 世祖의 괘차를 祈願하는 신미대사의 發議로 第子 학렬에 의해 1465년 3월 부터 1466년 윤 3월까지 重建 되었다. 이 重創佛舍 때 世祖와 懿淑公主에 의해 새롭게 造成된 文殊童子坐像 안에 舍利 3과가 奉安 되었다.  朝鮮初는  崇有抑佛의 波高가 높던때로 유서깊은 故刹과 塔들이 헐리면서  三國時代 이래 全來된 많은 舍利들이 露出되던 시기 이므로 奉安된 舍利는 韓國佛敎를 代表하는 有力한 佛舍利로 볼수 있다. 世祖는 1466년 閏 3월 17일에 進行된 上院寺 落成式에 文武百官들을 대동하고 親히 行次 하였다.  이때 文殊菩薩의 이적을 經驗하는데 그 狀況 은?

 

 

 

상원사문수보살좌상복장유물

(上院寺文殊菩薩坐像腹藏遺物)

 

上院寺 文殊菩薩坐像 腹藏遺物은 文殊菩薩坐像의 造成年代가 1661年(顯宗2)임을 밝히는 發願文과 전적, 帿鈴筒 등 많은 遺物을 同伴하고 있으며 의천이 作成한 發願文에는 上院寺의 세번에 걸친 重創 來歷과 義意, 文殊菩薩像의 造成課程 등이 詳細히 밝혀져 있다. 특히 2017년 保存處理 事業을 進行하던중 그동안 開封되지 않았던 帿鈴筒  안에서 비단에 쌓여진 보병과 그 안에 穀食,寶石,金屬類 등이 多數 發見되어 王室과의 깊은 關係性을 보여주고 있다.

 

 

일월도자수홍가사

(日月圖刺繡紅袈)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복장유물

(上院寺木造文殊童子坐像腹藏遺物))

보물 제793호

 

상원사목조문수보살좌상복장유물

(上院寺木造文殊菩薩坐像腹藏遺物))

보물제1811호

 

삼척영은사불연            홍천수타사불연

(三陟靈隱寺佛輦)                     (洪川壽陀寺佛輦)

 

고행상

(苦行像)

 

자수

(刺繡)

 

판치생모

(板齒生毛)

 

明嘘堂大禪師眞影江陵普賢寺華谷堂師眞影江陵普賢寺月巖堂大禪師眞影

江陵普賢寺鏡波堂大禪師眞影 三陟靈隱寺四溟堂大禪師眞影

 

三陟靈隱寺梵日國師眞影

 

금강경

(金剛經)

 

발우

(鉢盂)

 

涅槃이라는 말은 完全한 幸福을 말하고.   

解脫이라는 말은 完全한 自由를 말합니다.

成佛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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