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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統一新羅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統一新羅)

 

 

 

들이 처럼 많았고 탑들이 기러기 처럼 늘어서 있다.

 

 

7世紀 中葉 百濟와 高句麗가 滅亡하고 羅唐戰爭을 거치면서 韓半島와 周邊地域의 國際關係는 大同江 ~ 元山만 以南의 統一新羅와 北쪽의 渤海가 共存하는 모습으로 變化했다. 이렇게 成立된 南北國時代는 唐을 中心으로 統一新羅와 渤海,日本이 共存하는 比較的 安定된 國際情勢가 維持된때였다. 統一新羅는 三國을 統一한 後 넓어진 領土를 다스리기 위해 여러가지 制度를 整備 했다. 우선 새로운 國家運營을 위해 官僚制를 整備하여 王敬人과 地方人을 差別하지 않고 官等을 주는 方式을 採擇하고 율렬에 入閣한 强力한 王權 中心의 中央 執權國家를 樹立해 갔다. 行政九譯은 地方을 9주로 나누고 다시 特別區域으로  5 소정을 두었다. 이러한 制度의 改選과 새로운 行政區域의 改編은 王權을 强化하고 中央 集權 國家의 룰을 完城하는 科程이었으며 새로운 國家의 位相을 强調하기 위한것이다.

 

 

 

 

철 불

(鐵佛)

 

南北國時代 (統一新羅)  8  ~  9 世紀

 

 

사천왕

(四天王)

 

四天王은 古代 印度에서 崇尙했던 神들의 王이었으나 佛敎에 歸意하여 부처님과 佛法을 지키는 守護神이 되었다. 慶州 四天王寺에서 發見된 綠油信藏像은 塔의 基壇을 粧飾하던 것으로 基壇네 面의 階段을 中心으로 左右 3개씩 총 24개가 配置되었다. 一般的으로 持國天王이 東西南北의 防衛를 지키는 形態로 配置되지만 四天王寺 塔의 基壇에는 3 개의 新粧만으로 配置된것이 特徵이다.

 

 

팔부중

(八部衆)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신으로 八部神衆 이라고도 하며 天. 龍. 夜叉. 乾達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喉羅伽가 있다.  여기에 전시된 八部衆은 阿修羅와 乾達婆인데  元來 石塔의 上層 基壇部 面石에 새겨진 것이다. 阿修羅는 元來 싸움의 神이 었으나 부처님에게 感化되어 佛法을 지키는 神이 되었으며 얼굴은 셋, 손과 팔은 여덟개 혹은 여섯개로  表現 된다.  乾達婆는  모두 獅子의 머리 가죽과 같은것을 쓰고 있다. 

 

 

청자잔과잔받침

(靑磁黑白象嵌菊花文盞托)

 

고려  13 세기

 

사리갖춤

 

신라 33 대 聖德王 (재위 702 ~ 737)이 慶州 皇福寺址 三層石塔에 사리갖춤을 奉安 하였다. 사리外函에 새긴글 에 따르면 聖德王은  먼저 世上을 떠난 父母인 31 대 神文王과 神睦王后 그리고 兄인 32 대 孝昭王의 冥福을 빌기 위해 이 사리갖춤을  奉安  하였노라 記錄 하였다.  1942 년 이 石塔을 修理 할때 發見 되었다.

 

 

시가새겨진청자완

(靑磁陰刻詩銘婉盌)

 

 

道  情

정을 말하며

 

世人 臨逼機時休

세상사람들이어

핍박받으며 어느때 쉬려는가

 

從春復至秋

봄부터 다시 가을에이르니

문득 얼굴엔 주름지고 머리는 세었네

 

間君憂連省悟早回頭

그대에게 묻나니 근심스럽지도 않은가?

빨리 깨닫고 일찍 고개 돌리시구려

 

除身某外求

제신일랑 바깥에서 구하진 말게

 

價鏡高貴作公侯箏如修更修

명망얻고 고귀해져 공후가 되는것이

마음을 닦고 또 닦는것과 견줄손가

 

院郞歸

원랑 이여 돌아가게나.

 

 

고대중국청동기를 본뜬향로

(靑磁陽刻防薡形香爐)

 

고려  12 세기

 

구리로만들어금을입힌보살상

(金銅觀世音菩薩坐像)

 

옻칠을 바른뒤 金을 입힌 質樸鍍金 技法이 使用된 菩薩像 이다. 상투를 높게 틀은 머리에는 寶冠을 얹기 위한 턱을 만들고 몸에는 화려한 粧飾을 덧붙였다. 이러한 菩薩像 은 元의 影響을 받았던 考慮 後期 佛像에서 자주 나타난다. 高麗時代 金銅菩薩像 中에서 큰 편에 속하며  粧飾이 纖細하고 狀態 또한 양호해서  高麗時代 金屬工藝와 佛敎 美術의 水準을 잘 보여준다.

 

 

청자참외모양주전자

(靑磁黑白象嵌菊花文瓜形注子)

 

고려  12 세기 

 

 

십이지상

(十二支像)

 

토끼 (卯)통일신라 8 ~ 9 세기  곱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