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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寄贈館

국립중앙

 (國立中央博物館)

이홍근기증

(李洪根寄贈)

 

東垣 李洪根 先生

 

東垣 李洪根 先生은 文化遺産의 保存과 社會還元에 透徹한 意識을 지닌 事業家였다. 先生은 日帝强占期에 우리民族이 文化民族 으로서의 矜持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文化遺産 保存이 重要하다고 생각하여 文化財 收集에 熱情을 쏟았다. 1967년에는 우리나라 最初의 企業美術 관인 동원美術館을 建立하여 그동안 收集온 文化遺産을 一般人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 하였다.

 

 

항아리

(壽福康寧銘白磁靑畵梅蘭文壺)

 

『壽福康寧」이 쓰인 白磁靑畵梅蘭文무늬 항아리.

 

항아리

(白磁鐵畵雲龍文壺)

 

白磁 鐵畵구름 龍무늬 항아리

 

 

분청사기귀얄무늬대접

(粉靑沙器귀양文大楪)

 

백자상감나무무늬병

(白磁象嵌樹木文甁)

 

 

분청사기박지철재모란무늬병

(粉靑沙器剝地鐵彩牡丹文甁)

 

백자산모양향꼿이

(白磁鐵畵竹文扁甁) 

 

 

백자산모양향꼿이

(白磁鐵畵竹文扁甁)

 

 

복수쌍전이새겨진거울

(福壽雙全銘靑銅鏡)

분청사기조화모란무늬편병

(粉靑沙器彫花牡丹文편甁)

 

 

송성문기증

(宋成文寄贈)

 

惠田 宋成文

 

惠田 宋成文 先生은 平生을 敎育과 出版事業에 몸담아온 敎育者 이자 事業家 이다. 1976 년부터는 成文出版社를 經營, 英語學習書 出版分野의 獨步的인 位置에 올랐다.  先生이 文化財에 關心을 갖게 된것은 지난 1960 년대 부터였다. 당시 貴重한 옛 傳籍資料가 疏忽히 다루어지는 現實을 안타깝게 여긴 先生은  古書籍 전문가인 田文 先生의 도움을 받아 印刷 文化와 關聯된 資料를 體系的으로 收集하기 始作하였다. 文化財 保存에 남다른 關心을 기울여온 先生은 2003 년 所藏 文化財를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하였다.  寄贈한 文化財는 國寶 246호 大寶積經 을 비롯한 國寶 4 점과 寶物 1081호 妙法蓮華經 등 寶物 22 점을 包含한 101 점 으로 高麗後期 에서 朝鮮前期에 이르는 古印刷史 의 貴重한 資料 들이다.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蒙山和尙法語略錄)

 

中國 元나라 禪僧인 蒙山 德異(1231 ~ 1308)의 說法중 核心만을 가려 뽑은 禪 遂行 指針書로 우리말로 토를 달고 飜譯한 諺解本 이다. 朝鮮 世祖때 佛書 刊行을 위해 王命으로 設置한 刊經都監 에서 僧侶 信眉가 諺解 해 刊行했다. 現在 傳 하는 蒙山和尙法語略錄 (諺解) 板本 중 製作時期가 가장 빠른것으로 高麗 僧侶 에게 내려준 說法 2 篇을 包含한 6 의 法文과 高麗 僧侶  癩翁 惠勤 (1320 ~ 1376)의 說法이 실려 있다. 특히 우리말 表記중 순경음 ㅂ 등이 사용된 점은 訓民正音의 原形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佛敎史와 國語史 硏究에 貴重한 資料로 評價 받는다.

 

 

춘추

春秋

 

儒敎 經典인 五經 가운데 하나로 經文 1800여 條 1만 6,500자로 이루어진 最初의 編年體 歷史書 이다. 春秋時代 魯나라 隱公 에서 哀公 까지 12공 242 년간의 記錄을 담았다. 春秋經文 은 左氏傳을 基準으로 하는것이 普通 이며 우리나라도 三國時代 이래 春秋左氏傳 을 儒敎의 主要經典 으로 삼았다.  1797년 (正祖 21년) 鑄字所 에서 만든 木活字인 春秋綱字로 刊行된 板本 이다. 

 

 

율곡집

栗谷集

 

이 冊은 朝鮮中期 學者 栗谷 李珥(1536 ~ 1584)가 지은 글 가운데 詩篇을 모아 筆寫한 冊 이다. 栗谷은 그의 號 이다. 처음 五言短律 이란 分類 題目을 始作 으로 栗谷 이 8 세에 지었다고 알려진 詩 花石亭 등 多數 의 詩가 적혀있다.

 

 

花石亭

 

臨津江가에 세워져 있는 亭子로 朝鮮中期의 大學者 栗谷 李珥(栗谷李珥 1536 ~ 1584)가 弟子들과 함께 詩를 짓고 學文을 논하던 곳이다. 世宗 25년 (1443) 栗谷의 5 대조인 李明晨 이 亭子를 建立하는데 成宗 9년 (1478) 李珥의 曾祖父 이의석이 重修하고 이숙함이 花石亭 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壬辰倭亂때 불타 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 있다가 顯宗 14년 (1673)에 後孫들이 復元하였으나 6. 25戰爭때 다시 消失되어 버리고 말았다. 1966년 坡州의 儒林들이 誠金을 모아 다시 復元한 것으로 建築樣式은 八작지붕 겹처마에 初翼工 形態로 朝鮮時代 樣式을 따랐다. 懸板 글씨는 朴正熙 大統領의 揮毫 이다. 

 

花石亭 

(八歲賦詩)

 

栗谷이 8세때 이곳 花石亭 에서 지은 詩

 

林亭秋己晩 (임정추기만)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숲속 亭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詩人 의 詩想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에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丹楓은 햇볕을  向해 붉구나.

 

山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江은 萬里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邊防의 기러기는 어느곳으로 날아가는고 ?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대보적경

大寶積經

 

中國 唐의 菩提流志 가 713 년 佛敎經典 가운데 重要한 것을 모아 49 회로 엮은 것으로 總 120 券으로 이루어져 있다.  初期 小乘學說 부터 密敎 影響을 받은것까지 多樣 한 經典을 收錄 하였다.  各各의 經典은 飜譯을 그대로 使用 한것도 있으며 修正하거나 새롭게 飜譯해 넣기도 하였다. 이 두루마리는  실차난타 飜譯의 文殊師利授記會에 해당하는 部分으로 初彫大大藏經 板本 가운데 일부이다. 

 

 

천병옥기증

 

(千昞玉 寄贈)

 

千昞玉 

 

千昞玉 先生은 女性建築家로서 傳統 韓屋에 관한 硏究와 後進 養成에 힘써왔다.  1960 년대 고 崔淳雨 前 國立中央博物館長의 影響을 받아 朝鮮時代 家口의 멋에 魅了 되었다. 先生은 우리나라 옛 木家具가 우리 周邊에서 점차 사라져가는것을 안타깝게 여겨 木工藝品을 收集하였다. 先生은  1993 년 文化財의 社會 還元과 永久的인 保存을 위하여 愛藏해 오던 收集品 가운데 木家具를 비롯한 遺物들을 寄贈하였다. 先生의 寄贈品들은 그 하나하나가 專門 建築家的인 眼目에서 選別된 것들로 韓國的 造形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게 해준다.

 

 

대삼작노리개

(大三作佩飾)

 

노리개는 韓服 저고리에 고름 또는 치마 허리에 차는 女性 裝身具의 하나로 主體가 되는 佩物과 매듭으로 構成 된다. 가장 크고 豪華로운 大三作노리개는 세개의 佩物이 한벌로 된것으로 주로 宮中에서 佩用했다. 이 외에도 實用的인면을 浮刻하여 항.침.粧刀등을 佩物로 材料는 金,銀,銅의 金屬類를 비롯해 白玉,紅玉,비취,마노,靑鋼石,金鋼石,등의 玉石流,珊瑚,眞珠,琥珀,대모 등의 寶佩類가 使用되었다.

 

 

백정양기증

(白正洋 寄贈)

 

白正洋

 

白正洋(1943 ~    ) 先生은 손거울 收集이 趣味였던 아버지의 影響으로 古美術品을  收集하기 始作하였다.  2004년 先生은 약 35년간 收集하여 愛藏 해오던 文化財 792 점을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하였다.  寄贈  文化財는 구리 거울이 大部分 이며 以外 에도 상투를 여미는데 쓰는 동곳 구리 화살촉 등이 있다.  高麗時代 거울 가운데 아름다운 꽃과 새 한쌍을 무늬로 넣은 瑞花雙鳥文鏡 과 煌丕昌天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거울등은 휘귀품으로 거울 硏究에 貴重한 資料로 評價 된다.

 

 

신영수기증

(申永洙 寄贈)

 

申永洙

 

申永洙 (1555 ~     )先生은 우리 古代 文化와 密接한 聯關을 가지고 있는 中國 北方地域 文化財에 注目하고 이들을 꾸준히 收集해 왔다. 또한 先生인 博物館 設立에도 關心이 높아 2001 년 티벳 博物館 設立을 始作으로  2002년 에는 작은 茶  博物館을  2004 년에는 재미있는 性文化 博物館  아름다운 차 博物館 東洋 火砲 博物館 中國 차 博物館 登山 스키 博物館 등 多樣한 專門博物館 을 運營하면서 博物館 文化 擴散에 남다른 努力을 기울였다.  先生은 自身의 收集品을 國民들과 共有하기 위해 2004 년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하였다. 寄贈한 文化財는 모두 2,117 점으로 中國 北方地域에서 出土된 中國 상대 부터 한대 까지의 靑銅器, 鐵器, 陶器와 土器 등으로 그 種類도 매우 多樣하다, 先生의 寄贈品은 우리 古代 文化의 形成 課程 糾明에 重要한 硏究 資料로 評價된다. 

 

 

서상호기증

(徐相昊 寄贈)

 

 

徐相昊

 

徐相昊 先生(1927 ~  2019)은 6. 25 戰爭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질 뻔한 文化財를 收集하기 始作 하였다. 그리고  2009 년 平生 收集한 陶瓷器와 三國時代 金屬工藝品등 貴重한 文化財 80 여점을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하였으며 이러한 文化財 寄贈의 功勞로 國民文化勳章을 받았다.  先生이 寄贈한 文化財는 韓國 美術文化를 살펴볼수 있는 多樣한 分野의 作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靑瓷, 粉靑沙器, 白瓷가 고루 갖추어진 陶瓷器는 形態와 무늬가 多樣하고 만든 솜씨가 뛰어나 우리 陶瓷器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朝鮮 王室의 出生 儀禮와 關聯된 胎 항아리와 支石은 陶瓷器에 投影된 朝鮮社會의 모습을 알려주는 重要한 資料 이다. 

 

 

김홍기기증

(金鴻基 寄贈)

 

金鴻基

 

鴻山 金鴻基(1921 ~ 1992년) 先生은 오랫동안 企業을 運營한 事業家 였다. 先生은 企業活動을 通 해 모은 財産이라 하더라도 日程 規模 以上이면 私有財産이 아니므로 社會에 還元해야 한다. 는 平素의 所信에 따라 博物館을 建立 하라는 遺言을 남겼다. 그의 遺言에 따라 1992 년 鴻山博物館과 鴻山獎學財團이 設立 되었다.  夫人 엄순녀 女史는 博物館을 運營해 오다가 先生의 뜻을 더욱 기리고자 2004 년 所藏品 1,512 점을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하였다.  寄贈 文化財는 靑銅器時代에서 朝鮮時代까지의 多樣한 土器가 主軸을 이루고 있다. 體系的인 企劃을 通해 收集한 방대한 量의 土器들은 우리나라 古代 文化의 정수를 보여주는 重要한 資料 이다.

 

 

한글을쓴 찻사발

 

개야 짖지마라

밤사람이 모두 도둑인가?

ㅈ 목지*호고려**님이

계신 곳에 다녀올 것이다.

그개도 호고려의 개로다

듣고 잠잠 하는구나.

 

ㅈ목지: 인명또는 지명으로 추정

胡高麗 :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을 현지 일본인이 부르던 호칭" 되 고려사람,오랑캐

고려사람"의 뜻이었으나 어느사이에 이들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가 되었음.

 

 

가야토기

(伽倻土器)

 

伽倻土器는 原三國時代의 土器 製作 技術에 물래,가마등 새로운 技術을 더해만든 洛東江 西쪽地域의 土器를 말한다. 上下 일렬 굽구멍의 굽다리접시,물결무늬가 새겨진 항아리,그릇받침 등에는 新羅,百濟의 土器와 區別되는 伽倻土器만의 特徵이 잘나타난다. 土器에는 金官伽倻,阿羅伽倻,小伽倻,大伽倻,星山伽倻,등 地域別 伽倻의 特色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원삼국토기

(原三國土器)

 

原三國時代에는 以前의 민무土器가 계속 使用되는 한편 굽이 높은 溫度에서 구워내는 瓦質土器도 使用되었다. 또 後期에는 三國時代의典型的인 土器인 硬質土器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原三國時代 土器는 中國 漢나라의 木器나 土器 또는 앞 시기의 민무늬 土器에서 變化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토기

(統一新羅 土器)

 

統一新羅 土器는 新羅土器를 繼承한 것으로 圖章무늬를 새가고 綠釉등 釉藥을 使用하여 華櫚함의 極致를 이룬다. 특히 圖章무늬는 구름이나 새 등의 모습을 본떠 만든 무늬와 圓이나 半圓무늬 점렬무늬 꽃무늬등 多樣하다.代表的인 土器로는 佛敎의影響으로 火葬한 뼈를담는 뼈단지,뚜껑바리,甁등이 있다. 김목병,자라병등은 統一新羅時代에 새로이 나타난 機種으로 實用性이 强調된 것이다. 긴목의 甁은 高麗時代 정병의 形態와 類似하다.

 

 

신라토기

(新羅土器)

 

新羅土器는 洛東江을 中心으로 한 嶺南地方에서 流行한 희청색 硬質土沙와 赤褐色 軟質土器를 말한다. 이를 土器는 慶州와 그 周邊地域 무덤에 넣가 위해 製作된것으로 專門匠人의 集團에서 大量生産 하였다. 新羅土器 중에는 特殊한 目的에 使用하기 위해 만든 象形土器인 오리模樣 土器와 뿔模樣 盞등이 있다.

 

 

김영기기증

(金永基 )

 

金永基  (1911 ~ 2003) 先生은 書畵의 대가인 김규진 (1868  ~  1933)先生의 長男이다.  先生은 東洋의 傳統 藝術을 本格的으로 工夫하기 위해 中國으로 留學 書畵東洋美術史를 硏修하였다.  中國에서 歸國한 後 朝鮮美術展覽會에 入選하고  1946 년에는  韓國畵의 새로운 方向을 摸索하고자 檀丘 美術院의 創立同人으로 參與하였다.  以後 大學에서 韓國 花壇의 活性化와 후진 養成에 힘섰다.  1974 년에는 韓國篆刻協會를 創立하여 많은 圖章들을 直接 製作 하였다.  뿐만아니라 圖章을 收集하는 活動도 旺盛하게 펼쳤다. 先生은 1997 년 愛藏해 오던 文化財와 손수 製作한 圖章들을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하였다. 

 

 

남궁련기증

 

(南宮鍊 寄贈)

 

南宮鍊

 

南宮鍊 (1916 ~ 2006) 先生은 京畿道 楊州 出身으로 우리나라 海運朝鮮業界의 先驅者이다. 文化財 收集이 趣味였던  先生은  1997 년과 1999 년 그리고 2006 년 모두 3 차례에 걸쳐 國立中央博物館에 258 건의 文化財를 寄贈 하였다. 또한 한국 文化財를 세계에 알리고자 英國 브리티시博物館과 미국 메트로폴리탄博物館에도 白瓷와 靑瓷등을 寄贈한바 있다.  先生이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한 文化財에는 보물 제 145 호 짐승얼굴무늬풍로(鬼面靑銅爐)를 비롯해 陶瓷器와 書畵등이 있다. 이 가운데 大多數를 차지하는 陶瓷器는 靑瓷, 粉靑沙器, 白瓷등 그 種類와 畸形이 多樣하며 獨創的인 文樣과 製作方式을 보이고 있어 韓國陶瓷器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수 있는 貴重한 資料이다. 

 

 

김종학기증

(金宗學)

 

 

金宗學 先生의 寄贈 文化財 중 生活 木工藝品은 男性 女性의 生活空間에서 使用한 것으로 나눌수 있다.  家父長의 生活空間인 사랑방에서 使用 한것은 가구부터 生活 小品까지 總網羅 되어 있어 이에 대한 先生의 關心과 愛情을 엿볼수 있다. 특히 書類, 文房具등을 놓아두는 文匣과 작은 冊床인 서안 같은 家口들은 單純 簡潔한 線과 快適한 比例로 사랑방 家口의 特性을 잘 보여준다.  安主人의 生活空間인 안방에서 使用한 장, 농, 등은 衣生活과 關聯된 것이다.  飮食과 그릇을 保管하는 찬착,  찬장, 과같은 부엌家口는 굵고 간결한 比例로 健康美가 强調 된것들 이다. 궤, 반닫이는 羅州地域에서 生産된 素朴 한것이 大部分으로 사랑방 家口의 質樸한 面과 一脈相通 하고 있다. 

 

 

유강열기증

(寄贈)

 

劉康烈 

 

劉康烈 (1920 ~ 1976) 先生은 版畵家이자 弘益大學校 美術大學 敎授로 우리 工藝 美術 發展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夫人 장정순 女史는 先生이 돌아가신 뒤 所重히 保管하던 先生의 收集品과 版畵作品 650 여점을 2000 년과 2004 년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贈 하였다.  三國時代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生活 全般의 遺物들로 이뤄진 先生의 寄贈 文化財는 新羅와 伽倻의 土器 靑瓷, 및 粉靑沙器 民畵를 中心으로 한 옛 그림, 刺繡및 목칠工藝品 등이다. 하나같이 素朴하면서도 멎스러운 이들 收集品은 옛 장인들의 손에 녹아있던 造形 意識을 生生하게 傳 해주는 遺物들로 韓國的인 이미지를 傳統美術에서 求 하고자 할때 더할나위 없이 所重한 資産이 되고있다.

 

 

돌화로

(石火爐)

 

 

필 통

(筆筒)

 

붓을 꽃아두는 筆筒은 朝鮮時代 선비들이 삶에서 빼어놀수 없는 物品이었기에 材料와 形態가 多樣하다 이 筆筒처럼 여러 筒을 붙여 만든것을 兄弟筆筒 이라 하는데 用度와 才質 크기에 따라 붓을 分理하여 넣을수 있었다. 파초,대나무,매호,소나무와 하등  얇게 돋을 새김 했다.

 

 

교 의

(交椅)

 

祭祀를 지낼때 돌아가신 분의 神主를 모시는 다리가긴 倚子이다. 등받이의 가운데 部分은  二段 으로 나누어 上段에는 물결,산,구름과 그 위에 솟은 해를, 下段에는 草花紋을 透刻하였다. 등받이와 팔걸이 아래 部分에는 돌아가면서 안상을 투각하였다. 가로 널과 긴 세로 기둥의 組合 節制된 透刻은 品格있는 均衡美를 이끌어낸다.

 

박영숙기증

(寄贈)

 

朴永淑

 

朴永淑 (1932 ~    )先生은 齒科醫師로서 活動 하면서 우리나라 傳統 안방用品을 收集하는 등 朝鮮時代 閨房文化 保存을 위해 努力 하고있다. 부군인 허동화 韓國刺繡博物館長과 함께 우리 文化財 收集에 熱情을 기울이고 있는 先生은 오랫동안 收集해온 傳統  살림用品을 1996 년과 1998 년 두차례에 걸쳐 國立中央博物館 에 寄贈 하였다. 先生의 寄贈品은 631 점은 大部分 안방用品 으로 여기에는 다듬잇돌 471점이 包含되어 있어 이에 대한 先生의 關心과 愛情을 엿볼수 있다. 

 

 

다듬이

 

다듬이는 옷감의 구김을 두드려서 펴는 道具이다. 다듬이의 윗면은 약간 불록하여 방망이로 두들릴때 힘이 골고루 펴져 옷감이 구김이 잘 펴진다. 옷감에 출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면 光澤이 나서 옷이 고급스러워 보링뿐 아니라 덜상하여 오래 保存 할수있다. 다듬이는 韓國,中國,日本에서 모두 使用하였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곳은 韓國뿐.

 

 

다듬잇돌,다듬이판

(砧石.砧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