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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中央博物館

中央博物館/아스타나古墳/永遠한 삶의집

永遠

아스타나古墳

 

 

무덤 主人의 머리말에는 明器들이 나무받침 위에 놓여 있었다. 투루판 地域의 매우 乾燥한 氣候로 인해 무덤에서 포도, 호두, 밀로 만든 과자등이 썩지 않은채 發見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明器 안에도 그러한 飮食이 담겨 있었을 것으로 推定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마지막 祭祀를 정성껏 올린뒤 무덤 入口를 막으면 그 상차림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永遠히 배부르게 먹을수 있는 盛饌이 되었다.

 

 

 

鎭墓獸머리

 

鎭墓獸(무덤을 지키는 想像의 動物)는  南方 入口에  雙으로 놓여 무덤을  지키므로 相對를 威脅하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있다.  一般的으로 하나는 짐승의 몸과 얼굴 하나는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投球를 쓴  半人半獸의  鎭墓獸 머리이다.  머리위에는 뿔이 잘려나간 痕跡이 있고  목 아래에는 짐승의 털이 그려져 있다.  비슷하게 생긴 히스타나 224호 묘에서 나온 鎭墓獸로 推定해 보면 이 鎭墓獸는 표범 몸에 발굽이 둘로 갈라져 있고 엉덩이는 땅에 붙이고 앞발은 세워 앞을 보는 姿勢였을 것이다. 

 

 

진묘수

(鎭墓獸)

 

무덤을 지키는想像의 動物 투르판의 아스타나 카라호차에 있는 무덤에는 屍身을 安置한 널방 入口에 이와 같은 想像의 動物 한雙이 排置되어 있다. 이들을 鎭墓獸라 하며 널방을 지키는 役割을 한다. 사람또는 짐승의 얼굴을 지닌다.

 

 

구슬무늬토제명기

土製聯珠文明器

 

잔, 사발, 굽다리접시, 항아리등 여러그릇이 한벌로 構成되어 있다. 대부분 물래를 돌려 모양을 만들고 낮은 溫度에서 구운다음 검은색으로 그릇 겉면을 칠하고 그 위에 붉은색과 흰색으로 무늬를  그렸다. 이는 그릇들이 日常用이 아니라 무덤에 묻는 明器였음을 보여준다. 그릇들은 연석구슬무늬로 구몄는데 그중에는 흰색선으로 연꽃잎 模樣을 나누고 그 위에 구슬무늬를 넣은것도 있다. 西Asia의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流行한 吉祥무늬인 連續구슬무늬는 中央Asia와 中國을거쳐 統一新羅에 이르기까지 널리 使用 되었다. 

 

 

무덤의人形

 

살아있는 사람을 屍身과 함께 묻는 殉葬은 中國에서는 동주 時期 中盤부터 人形을 만들어 묻는 方式으로 바뀌었다.  죽은 사람이 現世에서 누렸던 삶이 내세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文人, 武人, 宦官, 女人, 樂士등의 人形을 만들어 널길 양쪽에 마련된 옆방에 넣었다. 이 人形들은 나무 뼈대에 흙을 붙이고 色을 칠해 만들어 었으며 人形 아래로 뾰족하게 나온 나무살을 흙바닥에 박아 세워 두었다.

 

 

간다라미술

Gandkara

 

넓은 意味의 간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에 속하는 페샤와르 盆地, 스와트, 탁실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盆地와 잘랄라바드 일대를 包括 한다. 이 地域은 西Asia, 南Asia, 中央Asia世紀를 잇는 交通의 要衝地로, 여러 王朝의 進出과 交易 活動을 通해 일찍부터 多樣한 文化가 紹介 되었다. 이 地域에서 紀元後 1 世紀부터 5世紀에 걸쳐 製作된 美術을 간다라 美術 이라고 한다. 간다라는 마투라 地域과 더불어 人間의 모습을 한 佛像이 처음으로 製作된 곳이라는 점에서 重要한 意味를 지닌다. 東西文化 交流의 中心地답게 이 地域의 佛像은 인도, 헬레니즘, 로마, 파르티아적인 要素가 複合된 樣相을 보인다.  

 

 

보 살

 

菩薩은 元來 깨달음을 얻기 前의 釋迦牟尼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大勝佛敎가 널리 勢力을 떨치면서  自身의 깨달음을 追求하며 다른 衆生을 救濟하는 存在를 가리키게 되었다. 菩薩은 世俗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차림새를 한 王公 貴族의 모습을  모델로 한다. 이 像은 도리라고 불리는 下衣를 걸치고 上半身에는 숄을 두르고 여러가지 裝身具를 活用 했다.

 

 

미투나,사랑을나누는 남녀

 

한雙의 男女가 애로틱한 姿勢로 表現된 미투나 像은 印度 美術에서 人氣있는 모티프 중 하나로, 豊饒와 吉祥의 意味를 지닌다. 元來 寺院의 壁을 粧飾했던 이 彫刻에서 男性은 女性의 허리끈을 풀고 있고 女性은  男性의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당기고 있다. 男女 모두 도티를 입고 화려한 裝身具를 걸치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과 긴 눈매가 印象的 이다.

 

 

미투나

(Mithuna)

 

한쌍의 男女가 에로티한 姿勢로 表現한 미투나 상은 印度美術에서 人氣있는 모티프중 하나로 豊饒와 吉祥의 意味를 지닌다. 元來 寺院의 壁을 粧飾했던 이 彫刻에서 男性은 女性의 허리끈을 품고있고 女性은 男性의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당기고 있다. 男女 모두 도티(Dhoti)를 입고 華櫚한 裝身具를 걸치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과 긴 눈매가 印象的이다.

 

 

관음보살

(觀音菩薩)

 

네팔의 金銅像은 동의 含量이 높아 靑銅 부분이 어두운 붉은 빛을띄며 表面에 金을 두껍게 입힌것이 特徵이다. 後代의 豫에서는 이 作品처럼 準寶石을 象嵌하여 粧飾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 地域 佛像의 特徵인 넓은 얼굴과 멥리코를 지녔다.

 

 

문수보살

(文洙寶薩)

 

밀교에서 文殊菩薩은 完全한 깨다음을 얻은 智慧의 菩薩로 認識되며 多樣한 存在로 모습을 바꾸어 世上에 나타난다. 그 중 하나가 이 作品에 形象化된 아라빠짜나 (Arapachana) 이다. 이 名稱의 5음절은 佛敎의 5가지 基本 가르침에 該當하는 用語에서 따온 것이다 이 菩薩은 오른손에 智慧의 칼을 들고 무지(無知)의 帳幕을 잘라내어 絶對的인 眞理를 드러낼 準備를 하고있다. 

 

 

서벽벽화

 

西壁은 入口에 들어설때 마주보게 되는 壁으로 가장 重要한 壁畵가 그려진 곳이다. 現存하는 壁畵를 보면 여러 使臣과 武士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들이 向하고 있는 壁의 윗부분에 누가 그려져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意見이 있다. 가운데 부분에 바르후만왕, 돌궐왕, 또는 소그드의 神이 그려져 있었다고 보는 見解와 의 兩側에 바르후만王과 돌궐王, 또는 소그드의 神이 그려져 있었다고 보는 見解兩側에 바르후만王과 돌궐王이 左右對稱으로 配置되었다는 見解가 있다. 오른쪽 끝에는 鳥羽冠을  쓴 古代  韓國人이 登場 한다.

 

 

여 인

 

中央Asia 투루판 地域에서 發見된 彫刻 입니다. 얼굴이 갸름하고 볼과 턱은 둥글어 女性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이마 위로 곧게 뻗은 머리카락은 가운데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있고 나머지는 어깨 아래로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양쪽 가슴 부분에서 對稱을 이룬 소용돌이무늬는 갑옷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彫刻은 투루판 地域 베제클리크 石窟寺院의 壁畵에 그려진 女性과 많이 닮았습니다. 이 女性은 王妃로 推測 되는데, 身分이 높은 女性 佛敎 信者를 表現한 것으로 보입니다.

 

 

천불도

千佛圖

 

베제클리크 石窟寺院 제 18 에서 가져온 千佛圖의 一部이다.  제 18  石窟 中央에 큰 기둥을 配置한 中心 主 이며 千佛圖石窟希朗을 粧飾 했다. 千佛圖에 表現된 各 부처는 가는 흰색선 으로 區劃된 四角形안에 통건 의 法衣를 입고 禪定印을 취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부처의 눈은 比較的 크고 콧날이 뚜렸하다. 얼굴과 목, 손의 輪郭線에 붉은색을 더해 陰影을 주고 背景에는 짙은 色을 칠했다.  陰影表現, 어두운 表現色, 라피스 라줄리 顔料를 使用할 푸른색은 모두 쿠차 地域과의 聯關性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