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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獻 陵/太 宗

 

(獻 陵)

 

 

獻陵은  太宗과 元敬王后)의 封墳이  나란히 놓인  雙陵의 形態다. 다른 朝鮮王 陵에 비해 配置된 文石人 武石人 石馬, 石羊, 石虎 등의 石物이 두배로 많이 웅장한 모습을 보인다.

 

 

 

홍살문

(紅箭門)

 

神聖한 곳을 알리는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 紅箭門. 紅門 이라고도 한다. 화살模樣의 살대는 法度의 곧고 바름을 意味 하며 나라의 威嚴을 象徵한다.  陵域의 들머리에는 紅箭門이 서 있고 祭官들이 찾을때 절을 하는 拜位가 造成되어 있다.  紅箭門에 到着한 祭官은  拜位에 절을 하고 丁字閣에 이르는데 紅箭門과 丁字閣을 連結하던 돌길을 參道 라 하며 가운데 높은 길은 神道라 불러 돌아가신 先王의 魂靈만이 神道로 出入 할수 있을 뿐이다.

 

 

참도

(參道)

 

紅箭門에서 丁字閣까지 이어진길 薄石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이 약간 높은 길은 神 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 (神道)라고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 (御道)라고 한다.

 

 

정자각

(丁字閣) 

 

祭香을 올리는 곳으로 亭子模樣으로 지은집  祭享을 올릴때 王의 神主를 이곳에 모신다. 丁字閣에 오를때에는 東쪽으로 오르고 내려올때는 西쪽으로 내려오는대 이를 일러 동입서출 (東入西出)이라고 한다.

 

 

신계와 어계

(神階.御階)

 

丁字閣으로 올라가는 階段이 있는데 왼쪽은 神의 通路이며 오른쪽은 임금이 오르는 通路이다. 

 

 

비각

(神道碑碑閣)

 

碑閣은 陵 主人의 자취를 記錄한 神道碑나 標石을 세워둔 곳이다. 神道碑는 太祖 대부터 世宗대 까지만 세웠고 以後 에는  王陵에는 세우지 않았다. 顯宗때 부터 다시 세울 必要가 論議되어 肅宗 8년 (1682)에 朝鮮 王陵중 처음으로 寧陵에 標石을 세웠다. 

 

 

신도비

(神道碑)

 

태종헌릉신도비 : 太宗獻陵神道碑

 

 

太宗獻陵神道碑 는 太祖의 다섯째 아들로 朝鮮王朝의 王權을 다졌던 제 3 대 임금 太宗 李芳遠의 生涯와 業績을 기리기 위해  1424 년 에 碑文을 세겨 세운것이다. 碑文은 卞季良이 지었고 글씨는 成槪 가 썼으며 篆額은 權弘이 썼다.  神道碑에 새겨진 글씨는 朝鮮初期의 書藝 文化와 그 傾向을 硏究하는데에 重要한 資料 이다.  이 碑의 龜趺는 壬辰倭亂을 겪으며 毁損 되었지만 이수는 原形이 잘 保存되어 있어 朝鮮初期에 明나라 石碑 彫刻 樣式을 받아들여 새로운 石碑 傳統을 마련해 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헌릉 신도비

(獻陵 神道碑)

 

左) 처음 建立된 (1424) 舊碑

右) 肅宗 21 年 (1695) 重建된 新碑

 

兵禍로 1424 年 建立된 碑에 새긴 글씨가 떨어져 나가 알아보기 어려워 肅宗 21 년 (1695) 元來의 碑옆에 新碑를 設置

 

 

태종헌릉신도비

(太宗獻陵神道碑)보물

 

神道碑는 王과 王碑 등의 生涯의 業績을 기리기 위해 세운 碑石으로 碑身(몸통)과 龜趺(거북이받침) 螭首 (龍을 새긴 머릿돌) 를 갖추고 있다.  獻陵 神道碑는  1424 년 (世宗 6)에 세운 것으로 碑文은 卞季良이 짓고  成槪의 글씨로 썼으며 篆額(篆書體로 쓴 머릿글)은  權弘의 글씨 이다. 歲月이 지나며 글자가 磨耗 되고 碑石이 毁損 되자 1695 년 (肅宗 21) 神道碑를 다시 製作하여 元來 神道碑의 오른쪽에 세웠다.

 

 

이 碑의 龜趺는 壬辰倭亂을 겪으며 毁損 되었지만  螭首 (龍을 새긴 머릿돌) 는 原形이 잘 保存되어 있어 朝鮮初期에 明나라 石碑 彫刻 樣式을 받아들여 새로운 石碑 傳統을 마련해 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태 종

(太 宗)

 

太宗(1367 ~ 1422  在位 140 ~ 1418)은 太祖의 神懿王后 다섯째 아들이다. 아버지를 도와 朝鮮建國에 큰 功을 세웠고 1392 년 ( 太祖 1) 靖安君에 奉 해졌다.  그러나 異腹 동생의 世子冊封 등에 不滿을 품고 王子의 亂을 일으켰으며 以後 反對勢力들을 除去하고 1400년 王位에 올랐다.   在位期間 동안 中央國政 體制와 地方制度, 軍事制度, 土地  租稅制度등 社會全般의 體制를 整備하여 中央執權과 王權을 크게 强化 시켰다.  1418 년 世宗에게 王位를 물려준 後 太上王으로 生活하다가 1422 년 (世宗 4) 56세로 世上을 떠났다.

 

 

원경왕후

(元敬王后)

 

元敬王后 閔氏(1365 ~ 1420) 는 驪興府院君 閔漬의 딸로  1382 년 (高麗 禑王 8) 太宗과 婚姻 하였고 朝鮮建國後 太宗이 王位에 오를수 있게 남동생들과 함께 積極的으로 도왔다. 그러나  太宗이 外戚과 功臣들을 牽制하여 除去하면서 남동생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1418 년 世宗이 王位에 오르자 厚德王大妃가 되었으며 1420 년 (世宗 2) 56세로 世宗을 떠났다.

  

 

재 실

(齋室)

 

齋室은 祭禮에 앞서 祭官들이 미리 到着하여 몸과 마음을 淨化 하고  祭禮를 準備 하는것이다. 평소에는 參奉등 管理가 이곳에 常住 하면서 陵域을 돌보았다. 主要 齋室外에 香을 保管하는 安香廳, 祭禮業務를 主觀하는 典祀廳, 祭器를 保管하는 祭器庫, 行廊채 등이 있으며 丹靑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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