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寧 陵/孝宗

(寧 陵)

 

 

孝宗大王은 仁祖와 仁烈王后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고 자는 靜淵 이다.  1645 년 孝宗大王의 兄인 昭顯世子가 갑작스럽게 죽자 같은해에 王世子로 冊封 되었다가  1649 년  仁祖大王이 돌아가시자  朝鮮의 제 17대 임금으로 卽位하게 된다.  孝宗大王은  재위 10 년동안 戰亂으로 疲弊해진  民生을  復舊하는데 온 힘을  쏟았는데  軍制를 改編하여 軍事訓鍊 强化에 힘썼으며 經濟策으로는 大同法을 實施 하였고  常平通寶를 널리 쓰이게 하는등 業績을 남겼다.

 

 

 

世宗 陵에서 孝宗 陵 으로 가는길

 

홍살문

(紅箭門)

 

 능(陵)·원(園)·묘(廟)·宮殿·官衙 등의 正面 입로(入路)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門.

 

 

홍살문

(紅箭門)

 

神聖한 곳을 알리는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 紅箭門. 紅門 이라고도 한다. 화살模樣의 살대는 法度의 곧고 바름을 意味 하며 나라의 威嚴을 象徵한다.  陵域의 들머리에는 紅箭門이 서 있고 祭官들이 찾을때 절을 하는 拜位가 造成되어 있다.  紅箭門에 到着한 祭官은  拜位에 절을 하고 丁字閣에 이르는데 紅箭門과 丁字閣을 連結하던 돌길을 參道 라 하며 가운데 높은 길은 神道라 불러 돌아가신 先王의 魂靈만이 神道로 出入 할수 있을 뿐이다.

 

 

참도

(參道)

 

홍살문에서 丁字閣까지 이어진길 薄石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이 약간 높은 길은 神 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 (神道)라고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 (御道)라고 한다.

 

 

정자각

(丁字閣) 

 

祭香을 올리는 곳으로 亭子模樣으로 지은집  祭享을 올릴때 王의 神主를 이곳에 모신다. 丁字閣에 오를때에는 東쪽으로 오르고 내려올때는 西쪽으로 내려오는대 이를 일러 동입서출 (東入西出)이라고 한다.

 

 

신계와 어계

(神階.御階)

 

丁字閣으로 올라가는 階段이 있는데 왼쪽은 神의 通路이며 오른쪽은 임금이 오르는 通路이다. 

 

 

효 종

(孝宗)

 

孝宗大王은 仁祖와 仁烈王后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淏 이고 자는 靜淵 이다.  1645 년 孝宗大王의 兄인 昭顯世子가 갑작스럽게 죽자 같은해에 王世子로 冊封 되었다가  1649 년  仁祖大王이 돌아가시자  朝鮮의 제 17대 임금으로 卽位하게 된다.  孝宗大王은  재위 10 년동안 戰亂으로 疲弊해진  民生을  復舊하는데 온 힘을  쏟았는데  軍制를 改編하여 軍事訓鍊 强化에 힘썼으며 經濟策으로는 大同法을 實施 하였고  常平通寶를 널리 쓰이게 하는등 業績을 남겼다.

 

 

孝宗 北伐꿈꾸다

(北 伐)

 

孝宗大王은 大君 時節에 兄인 昭顯世子와 함께 靑나라에 不毛로 끌려가 8 年間 生活하면서 國際 經驗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北伐을 計劃하면서 軍事力을  키우는데 歷程을  두었다. 孝宗의  北伐 意志는  宋時烈의 (己亥獨對)에서 잘 나타내는데 孝宗은  精銳化된 步兵 10萬名을 길러 機會가 있을때 오랑케들을 곧장 攻擊 할것이며 이 일은 10년 안에 推進 할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꿈은 孝宗이 41세때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計劃으로만 남게 된다.

 

 

인선왕후

(仁宣王后)

 

諡號는 인선(仁宣)이며, 사랑을 베풀고 義理에 勝復하는 것을 일러 인(仁), 誠스럽고 착함이 널리 알려진 것을 일러 선(宣)이라 하였다. 尊號와 揮毫를 합친 正式 諡號는 효숙정범경렬명헌인선왕후(孝肅貞範敬烈明獻仁宣王后)이다.

 

 

영릉비각

(寧陵碑閣)

 

碑閣은 陵 主人의 자취를 記錄한 神道碑나 標石을 세워둔 곳이다. 神道碑는 太祖 대부터 世宗대 까지만 세웠고 以後 에는  王陵에는 세우지 않았다. 顯宗때 부터 다시 세울 必要가 論議되어 肅宗 8년 (1682)에 朝鮮 王陵중 처음으로 寧陵에 標石을 세웠다. 標石 앞면의 글은 이정영이 썼고 뒷면 글은 심익현이 썼다. 

 

 

영릉비

(寧陵碑)

 

 

조선국  :  朝鮮國

효종대왕영릉  : 孝宗大王寧陵

 

己亥年 五 月 九日 孝宗  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 薨 (昇遐) 十月二十九日 (丙辰日)

楊州 健元陵 (太祖의陵) 近處 葬事 癸丑年 十 月 七 日 癸卯日 驪州 寧陵 弘濟洞 子坐午向 (南向) 

移葬 甲寅年 二 月 二四 日 戊午日 仁宣王后 張氏 薨 (昇遐) 六 月 四 日 (戊戌日) 大王陵  葬事 

 

 

己亥年 (1659) 5월 9일 (甲子日)에 孝宗  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이 薨 (昇遐)하여 같은해 10월 29일 (丙辰日)에 楊州 健元陵 (太祖의陵) 近處 오른쪽 언덕에 葬事 지냈다.  癸丑年 (1673) 10월 7일 (癸卯日)에 驪州 寧陵 (世宗의陵) 東쪽 弘濟洞 子坐午向 (南向) 언덕으로 移葬 하였다. 다음해 甲寅年 (1674) 2월 24일 (戊午日)에 仁宣王后 張氏가 薨 (昇遐)하여 같은해 6월 4일 (戊戌日)에 (大王)왼쪽 아래에 葬事 지냈다.

 

 

寧陵은 朝鮮 제 17 대 孝宗(1619 ~ 1659) 재위 (1849 ~ 1859)과 仁宣王后 (1618 ~ 1674)의  이다.  孝宗大王이  1659년에 돌아가시자 처음에는  九里市 東九陵에  을 造成 하였으나  屛風石에  틈이 생기는 問題가 일어나자  1673년 顯宗 14 에 지금에 位置로  옮기게 되었다.  1674년 顯宗 15에 孝宗大王의 妃 인 仁宣王后 가 돌아가시자 王后의 무덤을 같은 언덕의 아래에 造成 하여 朝鮮王陵 중 最初로  동원上下陵 形式이 되었다.

 

국장도감의궤

(國葬都監儀軌)

 

儀軌는  나라에서 큰일을 치를때 後世에 參考 하도록 그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經過를 자세하게 적은 冊을 말한다.  지난 2011 년 返還된 外奎章閣儀軌 중 孝宗大王의 妃 인 仁宣王后의 마지막 旅程의 記錄  國葬都監儀軌를 展示하고 있으며 國葬行列을  立體的으로 構成한 映像을 通해 당시의 行列의 規模와 配置등을 確認 할수 있다.

 

 

여주효종영릉재실

(驪州孝宗寧陵齋室)

 

齋室은 陵을 管理하는 參奉이 지내는곳이며 齋官들이 머물며 祭祀 飮食을 만들고 祭器를 保管하는 등  祭祀를 準備 하는 집이다. 孝宗 寧陵 齋室은 元來 顯宗 卽位年(1659) 京畿道 楊州郡에  陵 을 만들때 近處에 지었던것을 顯宗 14년 (1673) 이곳으로 옮기면서 함께 지었으며   安香廳, 祭器庫, 재방, 行廊채가 原形 대로 保存 되어 있다.  現在 남아있는  朝鮮 王陵의 齋室은 大部分 日帝强占期와 韓國戰爭 以後 없어져서 原形이 毁損 되거나 一部만 남아 있던것을 復元한 것이다. 하지만 寧陵 齋室은 朝鮮時代 王陵 齋室의 基本 形態가 가장잘 남아있고 空間 構成과 配置가 뛰어나 朝鮮時代의 代表的인 齋室 建築으로 學術的, 歷史的 價値가 높다. 이 齋室은 2007년 11월 29일 寶物로 指定 되었다. 

 

 

회양목

(淮陽木)

 

淮陽木은 잎이 두껍고 타원형이며 꽃은 4 ~ 5월에 피고 열매는  6 ~ 7월에 갈색으로  잎은 사철 푸른 나무다.  원래 淮陽木은 작고 낮게 자라는 나무인데 이와 같이 크게 자란 나무는 쉽게 찾아 볼수 없을뿐 아니라 孝宗大王 寧陵 齋室에서 300 여년 동안 자라온 나무로 由來와 歷史가 깊어 4 월 30 일에 天然記念物로 指定 되었다.

 

 

 

'歷 史 旅 行 1 > 朝鮮王妃陵' 카테고리의 다른 글

仁 陵/純祖  (0) 2022.06.03
獻 陵/太 宗  (0) 2022.06.02
英 陵/世 宗  (0) 2022.05.26
睿陵/哲宗.哲仁王后.禧陵/章敬王后  (0) 2022.05.08
金浦章陵(元宗.仁獻王后)  (0)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