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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金浦章陵(元宗.仁獻王后)

김포

(金浦章陵)

 

 

宣祖의 아들인 元宗(定遠君)은 첫째 아들 綾陽君(仁祖)이 王位에 오른後 王의 私親으로서 大院君으로 推尊 되었다. 그러나 仁祖에게는 自身의 正統性에 대한 問題가 있었다. 仁祖는 할아버지인 宣祖의 養子로 入跡하여  王位를 繼承 하였는데, 일부에서는 이에 反對하여 仁祖는 宣祖의 아들이 이닌 孫子로 繼承해야 하며 宣祖와 仁祖사이가 비어있으면 안된다는 主張이 提起 되었다. 仁祖와 反正功臣들은 이 主張을 받아들여 定遠大院君을 王으로 推尊해야 한다는 必要性을 느끼고  推尊 事業을 本格化 하였으나 일부 大臣들의 强力한 反對로 어려움을 겪었다. 在位 10년만인 1632년에 仁祖는 아버지 定遠大院君을 元宗大王으로 推尊하고 神主를 宗廟에 奉安 하였다. 이로써 仁祖는 自身의 王統을 宣祖(祖父) - 元宗(父) - 仁祖(子)의 順으로 하여 正統性을 確固하게 다졌다.

 

 

 

王陵으로 가는길

 

재실

(齋室)

 

이 建物은 元宗과 仁獻王后 具氏의 祭享을 準備하는 齋室이다. 齋室은 王陵의 守護와 管理를 위하여 陵參奉이 常住하던곳으로 祭禮시에는 祭官들이 머물면서 祭祀에 관련된 全般的인 準備를 하던 空間이다. 陵參奉의 執務室인 齋室, 香과 祝文을 保管하는 安香廳 祭器를 保管하는 祭器庫와 그 외 附屬 空間인 行廊등으로 構成되어 있다.

 

 

홍살문

(紅箭門)

 

 능(陵)·원(園)·묘(廟)·宮殿·官衙 등의 正面 입로(入路)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門.

 

 

참도

(參道)

 

홍살문에서 丁字閣까지 이어진길 薄石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이 약간 높은 기은 神 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 (神道)라고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 (御道)라고 한다.

 

 

정자각

(丁字閣) 

 

祭香을 올리는 곳으로 亭子模樣으로 지은집  祭享을 올릴때 王의 神主를 이곳에 모신다. 丁字閣에 오를때에는 東쪽으로 오르고 내려올때는 西쪽으로 내려오는대 이를 일러 동입서출 (東入西出)이라고 한다.

 

 

신계와 어계

(神階.御階)

 

丁字閣으로 올라가는 階段이 있는데 왼쪽은 神의 通路이며 오른쪽은 임금이 오르는 通路이다. 

 

 

조선국  :  朝鮮國

 

원종대왕장릉인헌왕후부좌  :  元宗大王章陵 仁獻王后

 

 

장릉비문

 

朝鮮國

元宗大王章陵 仁獻王祔左

元宗恭良敬德仁憲靖穆章孝大王萬曆八年庚辰六月二十二日

誕生己未十二月二十九日昇遐庚申二月葬于楊州群場里

天啓七年丁卯八月二十七日移葬于金浦郡後鋼子坐之原壽

四十丁亥初封定遠君 仁祖卽位推尊大院君崇禎五年壬

申又追崇爲王皇朝賜謁恭良

妃敬懿貞靖仁獻王后具氏萬曆六年戊寅四月十七日誕生天

啓六年丙寅正月十四日昇遐五月十八日葬輿大王陵同原

壽四十九庚寅初封郡夫人仁祖即位進號府夫人崇禎五年

任申追崇爲王后

崇禎紀元一百二十六年立

 

 

육경원 비석 받침돌

 

仁祖의 어머니인 連珠府夫人 具氏(追尊仁獻王后)가 1626년(仁祖4 年)에 昇遐하자 무덤의 이름을 毓慶園 이라하고 이곳 金浦에 豫葬하였다. 다음해(1627년 仁祖 5년)仁祖의 아버지인 定遠大院君 追尊 元宗 의 무덤 興慶園을 楊州 곡촌리에서 毓慶園으로 옮겨와 두원을  합하여 毓慶園으로 하였다. 1632 년(仁祖 10)에 毓慶園을 章陵으로 格上시키면서 종전에 있던 石物들 중 使用하지 않게된 일부를 陵 左側 언덕에 묻었는데 歲月이 지나면서  毓慶園의 碑石 받침돌이 地上으로 노출되어 이 자리로 옮겨서 保管하고 있다. 

 

 

원종.인헌왕후

(元宗.仁獻王后)

 

元宗은 제14대 宣祖의 다섯째 아들로 推尊되기 前의 君號는 定遠君 이다. 첫째아들 綾陽君이 仁祖反正으로 王位에 오르자 大院君에 奉 해졌고 1632년 王 으로 推尊댔다. 어렸을때부터 容貌가 빼어나고 態度가 愼重 했으며 孝誠과 友愛가 남달리 아버지 宣祖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壬辰倭亂 때 避難길에 올라 宣祖를 護踪한 功으로 1604년 護誠功臣에 通해졌다.  仁獻王后는 綾安府院君 具思孟의 딸로 1590년 定遠君과 嘉禮를 올리고 連珠郡夫人에 通해졌다. 1632년 定遠君이 元宗으로 推尊됨에 따라 仁獻王后로 推奉 되었다.

 

 

원종

(元宗)

 

1587년 定遠君에 奉해지고, 1604년 壬辰倭亂 중 王을 扈從하였던 功으로 扈聖功臣 2등에 奉하여졌다. 仁祖反正을 계기로 大院君이 되었다. 死後 1632년 (仁祖 10년) 元宗敬德仁憲靖穆章孝大王, (약칭 元宗)이라 廟號를 定하였으며 夫人은 敬毅貞靖仁獻王后, (약칭 仁獻王后)로 推尊되었다. 1635년(仁祖 13) 宗廟에 祔廟되었다. 諡號는 恭良, 陵戶는 金浦의 章陵이다. (百科事典)

 

 

인헌왕후

(仁獻王后)

 

본관은 綾城. 左贊成 綾安府院君 具思孟의 딸이며, 仁祖의 어머니이다. 1590년(宣祖 23) 宣祖의 다섯째아들인 定遠君과 婚姻하여 連珠郡夫人으로 奉하여졌다가, 仁祖反正으로 仁祖가 卽位하자 府夫人에 進封되고 宮號를 啓運宮이라 하였다.  1632년(仁祖 10) 吏曹判書 李貴의 奏請으로 定遠君이 元宗으로 推尊됨에 따라 仁獻王后로 推尊되었다. 仁祖를 비롯, 綾原大君·綾昌大君을 낳았다. 陵戶는 章陵으로 金浦에 있다. (百科事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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