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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1/朝鮮王妃陵

宣.靖陵(成宗.中宗,貞顯王后)

 

 

(宣 陵)

 

 

 

1592 년 始作된 壬辰倭亂 중에 宣陵靖陵을 파해친 悲慘한 일이 있었읍니다. 1593 년 (宣祖 26) 4월 13일 避難하던 는 京畿道 觀察使에게 倭敵이 宣陵靖陵을 毁損했다는 消息을 들었읍니다. 調査 結果  宣陵은  王의 管까지  파헤쳐서 불에 탄 痕跡이 남았고 靖陵 역시 파헤쳐져 周邊에서 中宗으로 推定되는 屍身까지 發見했다는  報告가 들어왔읍니다.  中宗의  葬禮를 擔當했던 元老 大臣과 宦官,宮女들을 보내 屍身의 身元을 確認하게 했고  屍身은  中宗의 옷가지를 갗추어 宣陵은 1593 년 7월 27일에 靖陵은 8 월 15일에 다시 葬禮를 치렀읍니다.  朝鮮 後期 宣陵靖陵의 陵參奉이 作成한 陵紙를 보면 宣陵을 다시 세울때 破損된 石部材를 그대로 두고 고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理由는 百世토록 怨讐를 잊지 않으려는 뜻을 보이고자 함이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宣陵靖陵朝鮮 時代 사람들에게 壬辰倭亂의 恥辱을 떠올리게 하는 歷史的인 場所가 되었읍니다.

  

성종

 

宣陵은 朝鮮 9 代 王 成宗(1457 ~ 1494, 在位 1469 ~ 1494)의 陵 입니다.  成宗은 7 代 王 世祖의 맏아들인 懿敬世子 (推尊 德宗)의 둘째 아들 입니다.  원래 乽山君으로 불리다가 작은아버지 8 大王 睿宗이 일찍 世上을 떠나자 世祖의 王妃 貞熹王后의 命 으로 王位에 올랐읍니다. 在位期間 에 經國大典과 國朝五禮의 등 法典과 禮典을 펴내면서 國家 運營에 基準이 되는 法과 禮式을 整理 했읍니다. 

 

정자각

(丁字閣) 

 

祭香을 올리는 곳으로 亭子模樣으로 지은집  祭享을 올릴때 王의 神主를 이곳에 모신다. 丁字閣에 오를때에는 東쪽으로 오르고 내려올때는 西쪽으로 내려오는대 이를 일러 동입서출 (東入西出)이라고 한다.

 

신계와 어계

(神階.御階)

 

丁字閣으로 올라가는 階段이 있는데 왼쪽은 神의 通路이며 오른쪽은 임금이 오르는 通路이다. 

 

조선국  :  朝鮮國

성종대왕선릉정현왕후부좌강  :  成宗大王宣陵 .貞顯王后 祔左岡

 

宣陵碑陰記

 

成宗康靖人文憲武欽聖恭孝大王

성종강정인문현무흠성공효대왕은

皇明天順元年丁丑年七月三十日誕生

명나라천순원년(1457년)7월 30일 탄생 하셨다.

辛巳初封者山君成化四年戊者子加封者乙山大君

신사년(1461년)처음으로 자산군에 봉해졌고 성화 4년(1468년) 자을산대군으로 다시 봉해졌으며

己丑十一月卽位弘治七年甲寅十二月二十四一昇遐

기축년(1469년) 11월 즉위 하셨다. 홍치 7년(1494년)12월 24일 승하하시어

乙卯四月六日葬干廣州西學堂洞壬坐之原

을묘년(1495년) 4월6일 광주서학당동의 남남동향 언덕(任坐丙向)에 장사 지냈다.

在位二十五年壽三十八皇朝暘謚康

재위 25년 보령 38세이셨으며 명나라에서는 시호로 강정을 내렸다.

繼妃慈順和惠昭懿欽肅貞顯王后尹氏

계비자순화혜소의흠속정현왕후윤씨는

天順六年壬午六月二十五日誕生成化九年癸巳初封淑儀

천순 6년(1462년) 6월 25일 탄생하시어 성화 9년 (1473년) 처음으로숙의에 봉해졌고

庚子十月冊封王妃嘉靖九年庚寅八月二十二日昇遐

경자년(1480년) 10월 왕비에 책봉 되셨다. 가정 9년 (1530년)8월 22일  69세로 승하하시어

十月二十九日葬干大王陵左岡良坐之原壽六十九

10월 29일대왕릉 좌측언덕의 남서향(良坐坤向)둔덕에장사지냈다.

崇禎紀元後一百二十八年乙亥二月 日立

1755년(영조 31년)2월 세움

 

정현왕후

 

貞顯王后는 1473년 (成宗 4) 成宗의 後宮으로 에 들어왔으며 1479 년 燕山君의 親어머니인 成宗의 두번째 王妃 尹씨가 廢位되자 이듬해 王妃로 冊封 되었읍니다.  1506 년 (燕山君 12) 中宗反正이 일어나자 貞顯王后는 大妃의 權限으로 燕山君廢位하고 아들 中宗이 王位에 오르는것을 허락 했읍니다.  1530년 (中宗 25) 貞顯王后가 世上을 떠나자 成宗의 陵 東쪽 언덕에 陵을 만들어 成宗 陵의 丁字閣과 이름을 함께 쓰게 되었다.

 

난간석주

 

이곳에 露出된 石物인 欄干石柱는 朝鮮 時代 貞顯王后 造成 당시 또는 그 後 保守課程서 破損되어 는 周邊에 묻혀있던 것으로 推定되며 現在의 觀覽路가 新設된 後 土壤이 빗물에 일부 流失되어 露出된 것으로 보입니다. 現在 貞顯王后陵材 形式에 맞게 12개의 欄干로 完全하게 構成되어 있읍니다.

 

 

 

(靖 陵)

 

靖陵은 朝鮮 11 代 王 中宗 (1488 ~ 1544, 在位 1506 ~ 1544)의    입니다. 中宗은 9 成宗貞顯王后 尹氏의 아들로 1506년 燕山君廢位 시키고 中宗으로 올린 中宗反正이 成功하여 의 자리에 올랐읍니다.  在位期間燕山君대의 잘못된 政治와 制度를 없애기 위해 努力하였읍니다. 

 

정자각

(丁字閣) 

 

祭香을 올리는 곳으로 亭子模樣으로 지은집  祭享을 올릴때 王의 神主를 이곳에 모신다. 丁字閣에 오를때에는 東쪽으로 오르고 내려올때는 西쪽으로 내려오는대 이를 일러 동입서출 (東入西出)이라고 한다.

 

신계와 어계

(神階.御階)

 

丁字閣으로 올라가는 階段이 있는데 왼쪽은 神의 通路이며 오른쪽은 임금이 오르는 通路이다. 

 

조선국  :  朝鮮國

중종대왕정릉  :  中宗大王 

 

 碑陰記

 

中宗恭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

중공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은

皇明弘治元年戊申三月五日誕生

명나라홍치원년(1488년) 3월 5일 탄생하셨다.

初封晋城大君正德元年丙寅九月二日卽位

처음에는 진성대군에 봉해졌고, 정덕원년 (1506년) 9월 2일 즉위 하셨다.

嘉靖二十三年甲辰十一月十四日傳位干人宗同十五日昇遐

가정 23년(1544년)11월 14일 인종에게 전위 하시고 같은달 15일 승하하셨다.

乙巳二月葬干高陽禧陵

을사년(1545년)  2월 고양희릉에 장사지냈으나

嘉靖四十一年任戊九月四日移葬干廣州宣陵東岡乾坐之原

가정 41년 (1562년) 9월 4일 광선릉 동쪽 언덕 동남향(건좌익향) 둔덕으로 이장 되었다.

在位三十九年壽五十七皇朝暘謚恭僖

재위 39년 보령 57세 이셨으며, 명나라에서는 시호로 공희를 내렸다.

崇禎紀元後一百二十八年乙亥二月 日立

1755년 (영조 31년) 2월 세움

 

홍살문

(紅箭門)

 

 능(陵)·원(園)·묘(廟)·宮殿·官衙 등의 正面 입로(入路)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門.

참도

(參道)

 

홍살문에서 丁字閣까지 이어진길 薄石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이 약간 높은 기은 神 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 (神道)라고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 (御道)라고 한다.

 

재실

(齋室)

 

이 建物은 成宗中宗,貞顯王后 의 祭享을 準備하는 齋室이다. 齋室은 王陵의 守護와 管理를 위하여 祭官들이 머물면서 祭祀에 관련된  全般的인 準備를 하던 空間 이다.  陵參奉의 執務室인 齋室,香과 祝文을 保管하는 安香廳 祭器를 保管하던 祭器庫와  그 附屬空間인 空間인 行廊 등으로 構成되어 있다.  朝鮮後期의 文獻인 春官通考에 의하면 長陵의 齋室은 典祀廳 8칸  祭器庫 2칸 安香廳  6칸 齋室 5칸으로 構成 되었다고 한다. 

 

보호수

 

銀杏나무 로서 4월에 꽃을 피며 9월에 열매가 익는다.  이 나무는 서울의 代表的 나무라 할수 있고 陵의 守護樹이다. 樹齡은 약 500년으로 높이는  24 m 추산 됩니다.

 

보호수

 

銀杏나무 로서 4월에 꽃을 피며 9월에 열매가 익는다.  이 나무는 서울의 代表的 나무라 할수 있고 陵의 守護樹이다. 樹齡은 약 500년으로 높이는  24 m 추산 됩니다.

 

봉은사

 

선릉과정릉의 원찰

 

 

朝鮮王陵 近處에는 王陵에 모신 과 王妃의 冥福을 빌고 王陵을 지키는 役割을 하는 守護 사찰을 두었읍니다.  이 寺刹을  願刹 또는 陵寺라 부르는데, 王陵에서 祭享을 지낼때 祭床에 올릴 두부를 만는 곳이라 하여 朝晡시 라고도 불렀읍니다. 이는 高麗時代의 願刹 을  繼承한 것입니다.  高麗時代願刹 은  의 肖像畵를 모시고 冥福을 빌며 49재 (죽은뒤 49일째 에 치르는 祭祀)나 遷度齋 (靈魂을 極樂에 보내기  위해 치르는 意識) 와 같이 죽은이의  極樂往生(죽어서 極樂에 다시태어남)을 비는 佛敎意識 등을 맡았읍니다. 朝鮮時代에는 儒敎를 崇尙 했기 때문에  王陵 近處寺刹을  願刹로 利用하기는 했으나 佛敎意識은 첨차 줄이고  管理에 必要한 物資를 供給하는 役割만 맡게  했읍니다. 代表的인 王陵 願刹로는  奉國寺 (太祖妃 神德王后貞陵) 開慶寺(太祖 健元陵) 奉先寺(世祖 光陵)가 있읍니다.  宣陵 의  願刹 은 奉恩寺로 1495년(燕山君1)成宗宣陵을 만들때 奉恩寺에서 成宗의 冥福을 빌면서 因緣이 始作 되었습니다. 奉恩寺의 처음 이름은 見性寺였으며, 見性寺는 統一新羅時代에 세워진 오래된 寺刹 이었읍니다. 見性寺 가까이에 成宗宣陵이 들어서자 大臣들은 寺刹을 없애야 한다고 主張했으나 成宗 貞顯王后가 이곳에서 成宗의  祭 (죽은이의 冥福을 비는 佛敎意識) 를 지내게 했읍니다. 그리고  1498년 에는 見性寺를  宣陵 東쪽으로 옮기며 절을 크게고쳐 지어 이름을 奉恩寺라 고치고 田畓을 내려 주었습니다. 時間이 흘러 1562년 (明宗 17) 文定王后가 주도하여 中宗의 宣陵 쪽으로 옮겨 오자 奉恩寺宣陵願刹 役割을 하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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