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 史 旅 行 2/宗敎施設 (寺)

五峰山(洛山寺)

(洛山寺)

 

에서 묻다

 

 

 

大韓佛敎曹溪宗 第3敎區 本社인 신흥사(神興寺)의 末寺로서 海邊에 位置하며 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힌다. 洛山은 산스크리트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由來한 말이며 觀世音菩薩이 恒常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觀音祈禱 道場의 하나인 洛山寺는 671년(文武王 11) 의상(義湘)이 創建했다고 傳한다. 洛山寺 創建 以後 이 절과 關聯된 〈三國遺事〉의 記錄으로는 원효(元曉), 조신(調信), 私掘産婆의 開山祖 범일(梵日)의 이야기 등이 傳하고 있다. 이 절은 858년 梵日에 의해 重建된 後 여러 차례 불타 重建이 거듭되었으나 6·25戰爭 때 完全히 燒失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復舊해서 원통보전(圓通寶殿)·종각(鐘閣)·일주문(一柱門)·선당(禪堂)·승당(僧堂)·객실(客室) 등의 建物이 있다. 文化財로 指定된 遺物·遺跡은 洛山寺銅鐘(寶物 제479호), 洛山寺7層石塔(寶物 제499호), 洛山寺虹霓門(江原道有形文化財 제33호), 洛山寺原帳(江原道有形文化財 제34호), 洛山寺紅蓮巖(江原道有形文化財 제36호), 襄陽洛山寺舍利塔(江原道有形文化財 제75호) 등이 있다. 1977년에 花崗岩으로 만든 東洋 最大의 해수관음입상(海水觀音立像)이 있으며, 절 앞에는 義湘의 傳說이 담긴 紅蓮庵 등이 있다.

 

 

에서 묻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紅蓮巖으로 가는 길에 본 義湘臺

 

의상대

(義湘臺)

 

新羅의 高僧 義湘大師가 671년 (文武王11)洛山寺를 創建할때 이곳에서 坐禪 한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亭子다. 1925년 당시 住持 만옹스님이 建立하였고 萬海스님이 義湘대기를 지었다. 以後 數차례 重修를 거듭하였으며 2009년 9월 解體復元 하였다. 六角形의 亭子로 二翼工 樣式의 空包에 䩡처마 모임지붕으로 上部에 花崗岩 節甁桶을 올렸다. 周邊의 海松과 岩壁 그리고 東海바다가 어울어진 東海岸의 代表的인 海岸定字로 義湘臺에서 맞는 日出景은 洛山寺의 白眉 이다.

 

 

홍련암

(紅蓮庵)

 

신라< 新羅 > 문무왕< 文武王 > 16년(676)에 낙산사< 洛山寺 >를  의상대사< 義湘大師 >가창건< 創建 >하였다. 洛山寺 創建 以後 이 절과 關聯된 〈三國遺事〉의 원효(元曉), 조신(調信), 私掘産婆의 開山祖 범일(梵日)의 이야기 등이 傳記錄으로는 하고 있다.  觀音普薩의 大慈悲 精神에 依託하면 끝없는 桎梏의 삶으로부터 自由를 얻게 되지만 懇切함이 있어야한다. 그래서 『法華經』 「觀世音菩薩 普門品」에서는 “一心으로 부르면 卽時 解脫의 世界로 引導해주실 것이다”라고 했다. 觀音聖地에서의 祈禱發源이 그 어느 곳보다 懇切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觀音聖地의 始原은 印度 南部의 말나야(Malaya)산 東쪽 丘陵인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이다. 홍련암(紅蓮庵)에 앉아 觀音窟에서 울리는 波濤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오늘이 同志이어서 佛者들이 佛供을 드리는것 같다. 이곳에 施主하시는 스님을 만나 佛敎에대한 올바른 信仰 生活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뜻깊은 날이었다.

 

 

사천왕문

(四天王門)

 

四天王門은 佛法을 修好하고 寺刹을 지키면서 思婦大衆을 돕고 保護하는 役割을 하고 있는 四天王을 모신 門이다. 3칸 規模의 內部에는 琵琶를 演奏하는 東邦 持國天王,長劍을 들고 있는 南方 증창천왕, 龍을 잡고있는 西方 廣目天王, 寶塔과 盞을 들고 있는 北方 多聞天王이 있다. 1914년 問議 重修와 四天王像上의 開金이 이루어졌고 1988년에 補修하였으며 2010년 다시 門의 重修와 四天王像을 開金 하였다. 1950년 6. 25일 戰爭과 2005년 襄陽 山불의 災難속에서도 이門과 四天王像은  被害를 입지 않았다.

 

 

빈일루

(賓日樓)

 

賓日樓는 東海의 日出을 맞이하는 樓閣이란 뜻으로 四天王門과 應響閣 사이에 자리한 樓閣이다. 朝鮮 中期 박종의 紀行文인 東京柳綠에 松月僚와 함께 처음 賓日樓라는 이름이 나온다, 萬海 韓龍雲의 乾鳳寺 級建奉末寺史蹟에 1800年代 後半과 1900년대 初 두번에 걸쳐 重修한 것으로 記錄되었다. 2005년 山불로 毁損된 以後 發掘된 遺構와 金弘道의 洛山寺圖를 參考하여 正面 3칸 側面 3칸 規模로 全面은 팔착지붕 後面은 맞배지붕 型式의 樓閣을 세웠다. 2009년 10월 12일 諾成하였으며 樓閣의 一部 기둥은 지난 2005년 火魔를 견딘 느티나무를 損失해서 세웠다. 懸板은 總務院長을 지낸 指貫스님이 썼다.

 

 

담장

 

圓通寶殿 周邊을 둘러싸고 있는 淡粧으로 朝鮮時代 世祖가 洛山寺를 重創할때 처음 쌓았다고 傳한다. 높이는 약 3.8m 全體길이는 약 220m 로 一部原型이 남아있고 大部分 2005년 山불以後에 連結 補修하였다. 長臺石 基壇이나 自然石 石築 위에 기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고 中間에 原型 花崗石을 박아넣어 造形美가 뛰어난 朝鮮時代 寺刹의 代表的인 淡粧이다 圓通寶殿의 淡粧은 法堂이 聖域 空間임을 區分하면서 原型 花崗石은 短調로운 壁面의 儀裝에 緊張感과 變化를 演出한다.

 

 

원통보전

(圓通寶殿)

 

觀世音菩薩님을 奉引한 洛山寺의 金堂으로 671년 義湘大師가 紅蓮巖 觀音窟에서 21일 기도 끝에 觀世音菩薩님을 親見하고 如意珠 水亭念珠와 함께 寺刹의 建立位置를 傳해 받은곳에 圓通寶殿을 세웠다. 圓通寶殿에 奉安된 建刹觀音菩薩坐床은 高麗時代 後半의 傳統樣式이며 江原조에서는 類例가 없는 乾漆技法으로 造成된 佛像이다. 2005년 襄陽山불로 全燒되었으나 建刹觀音菩薩坐床은 錦曲 丁年스님과 史部對中의 智慧와 原力으로 火魔속에서도 無事할수 있었으며 現 全閣은 2007년 11월에 復原 하였다.

 

 

칠층석탑

(七層石塔)

 

義湘大師가 처음 세울때 3층이던것을 1467년 (世祖13)에 七層으로 만들어 洛山寺의 寶物인 水亭念珠와 如意寶珠를 奉安하였다고 傳한다. 塔의 높이는 6.2 m 로 部分的으로 損傷된곳이 있으나 相輪 까지 原型대로 保存되고 있다. 朝鮮時代 多層石塔의 典型的인 時代別 特徵을 갖고 있어 寶物로 指定된 石塔이다. 基壇部에는 正方形 2단 地臺石이 놓여 있는데 윗면의 24판 겹연꽃 무늬가 트ㅡㄱ징이고 塔身部는 各層의 塔身石 아래 굄돌을 놓고 위에는 3단의 屋蓋받침을 올린 幹略한 構造型式이며 相輪部는 路盤위에 靑銅 復發 寶輪 등을 粧飾 하였다.

 

 

해수관음입상

(海水觀音立像)

 

높이 16m, 둘레 3.3m, 좌대 넓이 6㎡이며, 座臺의 앞부분은 쌍룡상(雙龍像), 양 옆으로는 四天王像이 彫刻되어 있고, 그 위 한 송이 연꽃으로 된 연봉(蓮峰) 위에 觀音普薩像을 安置하였다. 觀音像은 왼손에 甘露水甁을 받쳐들고, 오른손은 천의(天衣) 자락을 살짝 잡고 있으며, 미간에는 백호(白毫)를 박아 온누리에 퍼지는 慈悲의 光明을 象徵하고 있다. 크기와 遠蠻한 상호(相好), 均衡 잡힌 體感美 등이 近來에 보기 드문 秀作이다.

 

 

海水觀音立像 에서 바라본 東海 물치항 全景 입니다.

 

2005년 4월 5일 襄陽산불로 인해 燒失된 洛山寺의 銅鐘 (寶物第 479호)의殘害

 

 

'歷 史 旅 行 2 > 宗敎施設 (寺) ' 카테고리의 다른 글

束草/休休庵  (0) 2019.08.15
古靈山普光寺  (0) 2018.09.25
白巖山 (古佛叢林白羊寺)  (0) 2015.11.19
內藏山 (內藏寺)  (0) 2015.11.19
冠岳山 三幕寺  (0) 201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