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東洋 을 收集 하다.
日帝强占期
아시아 文化財의 收集 과 展示
19世紀末 西區 勢力이 아시아로 進出 하면서 이 地域의 文化는 그들의 異國 취미를 充足 시켜주는 볼거리가 되었다. 古 古學 調査와 더불어 盜掘이 漫然했고 骨董 市場이 繁榮 속에서 一部는 美術 이라는 새로운 帆柱로 編入되어 感想과 硏究의 對象이 되었다. 近代 國家의 形性과 더불어 設立된 博物館은 그러한 움직임이 中心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같은 時代의 흐름에 主體가 될수 없었다. 日本은 스스로 東洋 唯一의 文明國 으로 生角했고 落後된 東洋을 近代化의 世界로 引導할 適任者라 自負하였다. 그들은 自身들의 視線으로 아시아 各國의 歷史를 解釋하고 그것을 博物館에 담았다. 이 땅이 博物館도 우리 文化財 뿐 아니라 中國,中央아시아 ,日本등 아시아 各地의 文化財를 收集했다.
반가사유상
(半跏思帷傷)
이 상의 本尊인 半跏思惟像은 2명의 夾侍와 두그루 나무로 이루어진 光背를 背景으로 登場한다. 나무의 밑동은 龍이 감싸고 있어 未來의 부처인 彌勒이 說法할때 背景이되는 龍華水를 演算시킨다. 부피감 있는 形態 描寫에 關心을 갖기 始作한 北齊 時期의 特徵的인 樣式을 잘 보여주는 作品이다.
띠고리
(帶鉤)
허리띠를 固定하는 裝置로 大邱 라고 한다. 주(周)말기부터 製作되기 始作하여 現代에 널리 使用되었다.
차마구
(車馬具)
古代 中國에서 수레는 높은 身分을 象徵하는 物件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까닭에 높은 身分의 사람이 死亡하면 무덤옆에 말과 수레를 함께 묻었다. 葬禮를 후이 치르는 風俗이 流行했던 戰國時代와 漢代의 무덤에서 말갖춤이나 수레갖춤이 發見되곤 한다. 漢代 遺跡에서는 주로 말머리 꾸미개,재갈, 수레굴대끌,수레에 附着된 日産의 部品인 日産대가리,日産대골등이 發見된다. 말갖춤과 수레갖춤은 平安南道 一帶의 樂浪 무덤에서도 發見되는데 그 가운데는 中國에서 發見되지않는 部屬도 存在한다.
관음보살
(觀音菩薩)
中央에 앉아있는 觀音普薩을 6명의 작은 菩薩이 둘러싸고 있는 그림으로 觀音普薩의 冠에는 작은佛像이 表現되어 있다. 朝鮮總督府 博物館 식부터 注目을 받은 作品중 하나로 박물관진열품도감(博物館陳列品圖鑑) 제9집(1937)등에 收錄 되었다. 最近 國立中央博物館의 調査에서 觀音普薩의 손갖춤(手印)이 修整되고 그림의 가장자리에는 줄무늬 文案臺를 넣었던 痕跡이 確認 되었다.
회화단편
(繪畵斷片)
작은 短篇이지만 3명의 人物이 同一하게 흰옷을 입고 登場 한다는 점에서 興味를 끈다. 이 그림은 朝鮮總督府博物館에 所藏되었던 時期에는 注目을 받지 못했지만 1950년대 中半에 그림 속 人物들이 쓴 두건이 투투판 地域의 出土 資料에 登場하는 미니敎道의 帽子와 다르다는 地積되었다.
말을탄여인
(騎馬女人)
반가사유상
(半跏思帷傷)
윈손으로 턱을 받치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릅에 올려놓은 半跏思惟像 이다.
경당
(經幢)
불비상
(佛碑像)
응시
(凝視)
이 作品은 1929년 제10회 祭典 出品作 이다. 이왕가는 1934년 부터 德壽宮 石造殿 2층 畵廊에서 이 作品을 展示했고 1937년에 購入했다.
무덤석문
(墓門)
구조선총독부건물중앙홀북,남벽벽화
(舊朝鮮總督府建物中央北,南壁壁畵)
朝鮮總督府 建物의 中央홀 北壁과 南壁의 천장 가까이 걸었던 半圓形 壁畵중 北,南쪽이다. 朝鮮總督府 建物은 1916년 着工하여 1926년 完工되었다. 壁畵의 製作은 日本의 畵家 와다 산조가 擔當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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