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조 선
(朝 鮮)
朝鮮의 仁 과 禮 예를 담다.
白瓷항아리 朝鮮의 인(仁)과 예 (禮)를담다. 는 白瓷항아리를 主材로 朝鮮時代의 性格과 特徵을 照明하고자 磨鍊하였읍니다, 白瓷항아리는 單純한 貯藏容器 以上으로 거기에는 朝鮮時代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읍니다. 性理學을 社會秩序의 根本으로 삼은朝鮮은 모든王室 儀禮를 法道와 節次에 따라施行 하였고 거기에 使用하는 그릇 또한 法式에 맞게 만들어 使用하였읍니다. 그 중 特殊한 쓰임새를 目的으로 만들어진 태 (胎) 항아리와 명기 (明器) 용준 (龍樽)은 朝鮮 王室의 陶瓷文化의 特性과 美意識을 알려주는 좋은資料 입니다. 이번展示를 通해 白瓷항아리의 造型的 아름다움 너머에 存在하는 歷史的 價値와 意味를 發見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太祖 李成桂
청동병
(靑銅甁)
海岸君 이라는 한글이 새겨진 靑銅으로 만든 甁이다. 해안군(海安君)이라는 稱號를 가진 人物은 中宗(在位 1506 ~ 1544)의 아들 이희(1511 ~ 1573)와 宣祖 (재위 1567 ~ 1608)의 王孫 李瀷 (1613 ~ 1655)두 명이된다. 甁의 形態로 보아 이 靑銅甁은 中宗의 아들인 海岸君이 使用했을 것으로 推定된다.
허제묘지명
(許擠墓誌銘)
굽이 높은 제기 模樣의 墓誌銘이다. 墓地에는 姓氏,이름,자,本官,墓,位置,世界,어머니,夫人,墓,子孫등이 內用이 담겨져 있다. 특히 굽밑 바닥에는 한우물 許氏가 記錄되어 있는데 한우물(전북 남원시화정동 한우물 마을) 大正里에 있는 오래된 우물 이름이며 마을에 사는 許氏 家門사람이라는 뜻이다.
선조영언
(先祖永言)
동애(東崖) 虛字의 家事와 송호(松湖) 許政의 단가(短歌)및 서호별곡(西湖別曲)을 그 後孫이 筆師한 冊으로 國漢文을 함께 使用하였다. 책머리에 무자(戊子)라는 年紀가 적혀 있지만 正確한 年代는 端正할수 없다.
홍길동전
(洪吉童傳)
許筠이 지은 最初의 한글小說로 적서(嫡庶) 差別에 대한 批判 부폐한 政治에 대한 改革등 著者의 思想이 反映되어 있다. 洪判書의 庶子로 태어나 賤待받고 자라난 吉童이 집을 뛰쳐나와 활빈당(活貧黨)을 組織하고 兩班階級을 괴롭히고 가난한 良民을 돕다가 율도국(栗島國)에 定着해 理想的 王國을 建設한다는 內用이다.
금속활자에담은한글
훈민정음(訓民正音) 頒布 已後에 한글로 飜譯한 諺解本의 刊行이 持續的으로 이루어지면서 한글金屬活字도 製作되었다. 諺解本은 忠臣,孝子,烈女의 模範事例를 모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비롯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등과 같이 朝鮮이 志向한 性理學的 價値를 百姓들이 쉽게 理解하도록 한 內用이 많았다 現在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한글 金屬活字는 世祖 7년 (1401년)刊行한 능엄경언해(稜嚴經諺解)에서 한자로된 活字인 乙亥字(1455)와 갈이 使用된 乙亥字 倂用 한글 活字 이다.
훈민정음
(訓民正音)
世宗과 集賢殿 學者들이 訓民正音을 創製한 뒤 世宗 28년 (1446) 百姓에게 斑布한冊이다. 世宗이 지은 序文에 이어 解釋과 쓰임법인 溶解 鄭麟趾의 解例 序文으로 이루어져 있다. 冊 이름은 訓民正音 이며 解釋과 用例가 함께 있는것이 特徵이므로 普通 혜례본 이라고 부른다. (複製品)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訓民正音이 創製된 후 한글로 엮은 最初의 冊으로 15세기 言語와 文學을 硏究하는데 貴重한 資料이다. 朝鮮王朝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읋은 노래 歌詞와 그 背景說明으로 構成되어 있다. 龍飛御天歌는 宮中演戱에서 불러졌으며 모두 125장 이다. 編纂,刊行 徑爲에 대해서는 鄭麟趾의 序文과 崔恒의 發文에 자세 說明되어 있다.
관상감측우대측우기
(觀象監測雨臺測雨器)
測雨臺는 鐵로만든 圓筒形의 測雨器를 올려놓는 받침돌 이다. 이 測雨臺는 朝鮮時代 天文.地理.歷數 등을 맡아 本 官廳인 觀象監에서 使用되었을 것으로 推定되는 것을 複製한 것이다. 測雨臺 위에 놓여있는 測雨器는 測雨臺의 구멍에 마추어 復元한 것이다.
성리학과사림정치
(性理學/詞林政治)
16세기 性理學 理論에 대한 論爭의 結果로 徐敬德,李滉,曹植,李珥와 같은 卓越한 學者들이 登場하여 學派를 形成하였다. 政局을 主導하게 된 사람은 中宗代 趙光祖가 主張한 도학(道學)政治를 繼承 發展시켜 李滉의 (聖學十圖)잉이의 (聖學輯要)와 같이 성학(聖學)에 대한 理論을 定立하였다. 聖學이란 商人의 學文이라는 뜻으로 國王도 性理學을 工夫하여 政治에 實現해야 한다는 背景에서 强調되었다. 이는 임금과 臣下가 함께 다스리는 군신공치(君臣共治)의 理念을 追求하는 詞林政治의 理論 基盤이 되었다.
초충도
(草蟲圖)
申師任堂이 그렸다고 傳하는 8폭의 草蟲圖 가운데 5폭의 그림이다.
초충도
(草蟲圖)
申師任堂이 그렸다고 傳하는 8폭의 草蟲圖 가운데 5폭의 그림이다.
천자문
(千字文)
名筆 韓濩의 千字文이다. 한문(漢文)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해 敎科書로 쓰이던 冊이다. 우리나라에서는 宣祖 16년(1583) 名筆인 석봉(石峯) 한호(韓濠) (1543 ~ 1605)가 中國 양(梁)나라 주홍사(周興飼)가 지은 천자문(千字文)을 해서로 쓴것이 처음 刊行되었다. 한글로 訓과 陰이 달려있는 이 冊은 처음 刊行된 이래 烏鴉室,官衙,寺刹,個人에 의해 여러차례 刊行되어 초희자의 漢字 工夫와 글씨 練習에 큰 影向을 주었다.
상업과상인
(商業/商人)
朝鮮後期에 商業이 점차 發展하게 되었다. 서울의 여러곳에 큰 市場들이 들어섰고 地方에서는 定期的으로 열리는 場 이 常設市場으로 發展하는 境遇도 있었다. 또 補負商을 相對로 하는 都賣商人으로서 客主와 그 活動空間인 旅閣이 登場하였다. 한편 貨幣의 使用은 仁祖 대 以後 몇 차례 示度되다가 肅宗 4년 (1678)처음 鑄造된 常平通寶가 全國的으로 流通되면서 擴大 되었다.
놀이문화
朝鮮時代 놀이는 餘暇를 즐기기 위한 娛樂의 次元에서 뿐만 아니라 豊年과 多産을 祈願하고 災殃을 除去하여 福을 불러들이는 民間 信仰次元에서도 널리 行해졌다. 庶民들이 즐겨 놀았던 長技나 兩班階層이 즐겼던 바둑,雙六,投壺,勝景圖와 같은 놀이가 있었다.
목민심서
(牧民心書)
정약용(丁若鏞)이 地方官으로서 百姓을 다스리는 道理를 적은冊
휴대용앙부일구
(携帶用仰釜日麔)
1871년 康健이 만든 携帶用 해時計와 羅針盤 이다.
나침반
(羅針盤)
地官들이 方位를 찾기위해 使用하는道具 이다.
침통및침
(針筒附鍼)
韓醫學에서 重要한 治療 機構로 利用되는 침과 그 침을 담은 針筒이다.
암행어사
(暗行御史)
暗行御史 制度는 朝鮮時代의 독특한 管理派遣 制度였다. 在住가 뛰어난 臣下를 國王이 直接 地方에 破見하여 百姓들의 生活과 地方官里들의 市政得失을 몰래 觀察하고 民心을 收拾하여 國定에 反映하였다.
척화비
(斥和碑)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西洋 오랑캐들이 侵犯하는데 싸우지 않는것은 和親하는 것이니
和親을 主張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은는 것이다.
우리子孫에게 길이길이 警戒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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