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雲峴宮)
고종 . 명성후 가례
(高宗.明成后嘉禮)
明成后의 揀擇 課程은 다음과 같이 進行되었다. 1866년 1월 1일에 大王大妃께서 傳敎를 내려 全國의 12 ~ 17세 閨秀에게 禁婚令을 내렸다. 그리고 1월 16일에 別宮을 雲峴宮으로 하라는 敎止를 내리고 雲峴宮을 修理하라는 傳敎를 내렸다. 別宮인 雲峴宮에서 치러진 親迎儀는 王이 親히 王妃의 居所인 雲峴宮에 납시어 王妃를 昌德宮으로 모셔가는 意識으로 嘉禮의 六禮중 가장 重要한 意識이다. 한편 1866년 2월 25일에 昌德宮 重熙當에서 初揀擇을 行하였는데 이 初揀擇에서는 閔致綠의 딸 閔紫英을 포함한 5명의 閨秀가 揀擇되었고 2월 29일에 再揀擇에서 閔紫英을 포함한 3명이 揀擇되었다. 3월 7일에 " 閔致祿의 딸 閔紫英을 朝鮮第 26 代 王의 妃로 맞이한다." 는 詔勅을 庭園에서 發表하였다.
정 사
(正使)
主人(興宣大院君)이 王妃冊封을 위해 大闕에서 나온 政使一行을 迎接함.
왕비등단
(王妃登壇)
王妃가 北벽단에 設置된 冊命을 받을자리에 오름.
교 명
(校命)
王妃가 4 배한후 尙宮이 王妃로 冊封함을 宣布함 王妃가 다시 4 배후 보위에 오름.
國王과 王妃가 北벽단에 오르고 主人은 國王뒤에 主母는 王妃뒤에 各各 자리잡음.
임금 到着前 文武百官 堵列 國王이 主人과 左通例의 인도로 入宮하여 소치로 들어감 宗親과 文武百官도 入宮하여 北벽단에 堵列함.
王妃 冊奉後 임금을 따라 昌慶宮으로 向하는 明聖王后
왕비퇴장
(王妃退場)
王妃가 전모와 보모의 인도를 받으며 물러감.
소치
임금이 行事場에 到着後 잠시 쉬었다 가는 場所.
명성황후
(明成皇后)
朝鮮 高宗의 皇后 여성府院君 閔致祿의 딸이다. 8 살에 父母를 잃었으며 1866년 오척 勢道政治의 勢力 基盤을 없애기위하여 興宣大院君의 夫人인 府大夫人 閔氏의 推薦을 받아 16살에 王妃로 冊奉 되었다. 1895년 日本의 蠻行으로 景福宮에서 弑害 되었고 大韓帝國이 成立된 1897년 皇后로 追從 되었다.
고 종
(高宗)
朝鮮 26 代 國王으로 初諱 載晃 兒名 命福 初子 明夫 자 聖臨 호 珠淵 英祖의 5 대손인 興宣大院君 李昰應의 둘째 아들이다. 後嗣 없이 昇遐한 哲宗의 뒤를 이어 12 세였던 1863 년에 卽位 하였다. 1866년에 明聖王后와 結婚 하였고 1897 년에 國號를 大韓으로 年號를 光武로 고치고 慶運宮 卽祚堂에서 大韓帝國의 初代 皇帝로 卽位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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