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선돌
(寧越立石)
北쪽으로 滿洲땅은 물론 漢江 流域까지 支配하였던 高句麗는 寶藏王 27 年(668 年)에 羅唐 聯合軍과의 戰鬪에서 敗하면서 亡하고 漢江 流域은 新羅의 땅이 되었다. 新羅가 漢江 上流인 東江 流域까지 支配하게 된 것는 6 세기 中般 眞興王 때 부터이다. 東江을 끼고있는 寧越 平昌 정선은 新羅의 三國統一이 完成된 景德王 때 9주 5소경의 하나인 명주군에 束하게 되면서 地名 또한 新羅式으로 大部分 바뀌게 되었다. 東江 周邊의 마을인 수며(水), 갈며(葛), 하며(下) 등은 모두 이 때 생겨난 地名이다. 935년 新羅의 敬順王이 新羅 땅을 高麗에 넘기면서 千年을 넘게 이어 온 三國時代가 막을 내렸다.
선돌
(立石)
선돌은 그대로 奇巖과 怪石이 서있는 돌이란 뜻이다. 거대한 塔 模樣으로 솟아있는 바위는 神仙이 노닐었다는 傳說이 내려오고 있다. 展望施設 아래로 펼처진 莊嚴한 두갈래의 우뚝솟아있는 바위(높이 70 m)를 선돌(立石)이라 불리어 오고있으며 西江의 푸른물과 충암絶壁이 어우러져 마치 韓國畵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하여 일명 神仙巖이라고도 한다.
동 강
(東江)
東江 流域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始作한 것은 언제 부터 일까. 이러한 疑問을 풀기 위해서는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方法 밖에는 없다. 東江은 白頭大幹의 深山溪谷에서 흐르기 始作한 물 줄기가 굽이쳐 흐르면서 곳곳에 堆積地形을 形成해 놓았다.江邊으로 드리워진 넓은 충적 地帶인 모래 언덕과 낮은 丘陵地帶는 先史時代부터 사람들이 居住하기에 더없이 좋은 場所였다.
동 강
(東江)
東江 流域에서 약 2 百萬年前인 舊石器時代에 사람들이 살았는지에 대한 考古學的 硏究結果는 아직까지 없다. 만 1970 년대부터 1980 년대에 이르기까지 東江의 줄기인 南漢江 流域의 忠北 단양군 애곡리 수양개와 도담리 금굴, 상시리 등지와 漢江 中流 地域에서 수많은 舊石器 遺物들이 發掘된 것을 보더라도 東江 流域 또한 舊石器 時代부터 사람들이 居主했을 것이라고 歷史學者들은 조심스럽게 推定하고 있다.
동 강
(東江)
東江의 수운 기능 가운데 뗏목이 强調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東江 물길을 내려가던 뗏목은 대부분 骨只川과 松川이 한데 어우러지는 정선군 북면 아우라지에서 내려오기 始作했다. 上流인 太白山과 五臺山 등지에 至賤으로 널린 아름들이 통나무를 生長活動이 느린 늦가을부터 伐木을해 쌓아 두었다가 雨水 驚蟄이 지나 江물이 불거나 큰 비가 내리면 떼로 엮어 出發하는 것이었다.
한반도지형
(韓半島地形)
한반도
(韓半島)
韓半島는 政治地理學的으로 東아시아에 位置해 있으며, 地形學的으로 아시아 大陸의 東北쪽 끝에 있는 半島이다. 三面이 바다와 맞닿아 있다. 東쪽 바다는 東海(朝鮮東海), 西쪽 바다는 黃海(西海), 南쪽 바다는 南海이다. 北韓, 日本, 中國은 韓半島를 朝鮮半島라고도 부른다. 韓半島는 千年 以上 單一 國家에 의해 支配되어 왔으나 1948년 韓半島의 南쪽과 北쪽에 理念을 달리한 別個의 政府가 세워졌다. 오늘날 休戰線 南쪽에는 大韓民國이, 北쪽에는 朝鮮民主人民共和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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