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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 史 旅 行 2/歷 史 物

洪城 (白冶金佐鎭生家)

 

(白冶金佐鎭將軍)

 

 

大韓帝國 末期의 獨立運動家 였던 白冶  金佐鎭 (1889 ~ 1930) 將軍이 태어나고 成長한 곳이다. 將軍은 1889년 (高宗 26) 김형규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勇猛하고 聰明하였다. 1907년 湖明學校를 세워 新學文을 敎育하였다.  1916년 光復團에 加擔하여 抗日 獨立鬪爭을 展開 하였다. 滿洲로 건너가 北路軍政署를 組織하고 總司令官이 되었다.  1920년 10월 靑山里大捷에서 日本軍을 大破하는 등 民族의 自主獨立에 앞장섰다. 1925년 韓族總聯合會를 組織하고 主席에 올랐다. 1930 년 1월 共産黨 靑年黨員에게 暗殺 당하였다. 1962년 3월 1일 大韓民國 建國功勞勳章 重章을 받았다. 代代로 살아온 이곳에 1991년 부터 聖域化 事業을 推進하여 本體와 門間體,사랑채를 復原하고 展示館을 建立하였다. 

 

김좌진장군생가

(金佐鎭將軍生家)

 

1989년 12월 19일 將軍의 生家地는 忠淸南道 記念物 제 76호로 指定되었다. 이곳은 1991년 부터 聖域化 事業이 推進되어 生家地와 門間體,사랑채의 復原이 推進되었다. 1992년 復原된 生家에는 안채와 사랑채 광이 따로있고 밖에는 馬廐間이이 있다. 안채에는 앞면 8칸 측면 3칸의 기와집으로 西쪽을 向하고 있다. 왼쪽부터 2칸이 부엌이고 아래방과 윗방 각 한칸씩 있으며 통칸의 대청이 있다. 마당 한쪽에 우무이 있으며 밖에 있는 馬廐間은 化粧室과 馬廐를 3칸 집에 만등었다. 

 

 

호명정사

(湖明精舍)

 

白冶  金佐鎭 將軍 행랑채

 

 

행랑주련

(行廊主聯)

 

家奴解放民族春

집안의노예를 해방시켜서 민족에 봄을 불렀고

 

靑山大捷光復身

청산리 큰 승리로 광복을 몸소 이룩하셨네.

 

 

안채주련

(安채主聯)

 

男兒失手難容地

남아로 태어나서 실수를 하면 설땅이 없다.

 

志士偸生更待時

뜻있는 선비가 구차하게 살려는것은 다시 때를 기다리는것이다.

 

 

단장지통

(斷腸之痛)

 

刀頭風動關山月

적막한 달밤 칼머리에 바람은 찬데

 

劍末霜寒故國心

칼끝의 찬서리는 고국생각 돋는구나

 

三千槿域倭何事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고

 

不斷腥秦一掃尋

더러운새상 한칼로 쓸어버릴길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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