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船橋莊)
重要民俗資料 제5호. 烏竹軒으로부터 東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位置해 있다. 주위가 시루봉에서 뻗어내린 부드러운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家屋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며, 멀리 案山과 朝山이 보이는 明堂에 자리잡고 있다. 孝寧大君의 11대 孫인 李乃蕃이 집터를 잡은 후 사랑채인 悅話堂을 비롯하여 活來亭 東·西 別堂 등이 後孫들에 의해 지어졌다. 6·25 戰爭 以後 一部 建物이 流失되었으나 안채·사랑채·東別堂·西別堂·家廟·행랑채를 비롯하여 亭子까지 갖추고 있어 朝鮮時代 四大夫의 生活相을 엿볼 수 있는 代表的인 住宅이다
강릉선교장
(江陵船橋莊)
집의 配置는 西南向이며 前面에 긴 행랑채가 있다. 행랑채에는 中央部와 東쪽 끝에 門이 있는데, 하나는 솟을 大門이고 다른 하나는 平大門이다. 솟을大門을 들어서면 西別堂과 사랑채인 悅話堂으로 通한다. 悅話堂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크기로 거의 일자형 평면이며, 조금 돌출된 작은 대청은 누마루 形式을 취하고 있어 韻致가 있다. 특히 사랑채 앞쪽에 夕陽을 가리기 위해 遮陽을 假說했는데, 이것은 당시의 住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構造이다.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 순으로 構成되어 있으며, 各 房에는 반침이 딸려 있어 이불 등 살림도구를 넣어 둘 수 있다.
강릉선교장
(江陵船橋莊)
안채 부엌 앞에 'ㄱ'자형으로 位置하는데 주인이 家族과 함께 生活할 수 있는 空間이다. 또한 행랑채 바깥 마당에는 넓은 方池를 파고, 못가에 정자인 활래정을 세웠다. 방지 가운데에는 三神仙山을 模倣한 假山을 만들어 老松을 심었다. 활래정은 연못 속에 돌기둥을 세우고 建物의 일부를 누마루로 만듦으로써 마치 물위에 떠있는 形象으로, 周邊의 風景과 함께 先祖들의 뛰어난 造形美와 造園 技法을 엿볼 수 있다.
안채주옥
(安채住屋)
1703년 船橋莊 建物중 最初로 建立로서 李씨가의 큰살림을 맡은 女人들의 居處이다.
강릉선교장
(江陵船橋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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